고향은 여전히 거기에
2014.07.16 09:37
고향은 꿈이 아니다. 가보면 항상 거기 그대로 있다. 50대 후반에 있는 나에게 앞뒤 수식어 다 빼버리고 편안하게 영숙이 왔구나! 라고 할 수 있는 곳. 대학생 자녀를 둔, 40대 후반의 중년들에게 너희들은 잘 지냈니? 라고 함부로 말 할 수 있는 곳이 고향이다. 교양을 갖출 필요도 없고, 억지로 꾸미고 다듬을 필요도 전혀 없다.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아주고, 반겨주는 곳이다.
산천은 의구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아니다, 산천은 변했다. 물이 옛적 물이 아니다. 넘치도록 콸콸 흘러내리던 강이 줄어서 조금만 흐르고 있다. 어릴 때 강에서 빨래도 하고, 멱도 감고, 그 강 좀 깊이 들어가 떠온 물로 밥도 짓고 마시기도 하던 그 강물은 어디에도 없다. 고기가 노닐고, 체를 들고 고기잡이에 열을 올리며 옷이 다 젖는 줄 모르고 풍덩거리던 그 강이 결코 아니다. 오염되어 더러워져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뿐더러 하이얀 옷을 빨 수 없는 물이 되었다. 이제 고기들은 그 곳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모두 떠났다. 그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라고 판단한 게다.
집을 나서 뒤돌아 댓 발자국만 걸으면 내 몸은 벌써 산에 들어 서 있던 그런 산은 이제 없다. 큰 바위에 내 이름 써놓고, 어느 나무를 지정하여 나의 것이라 칭하였던 산이 내 눈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 산 주인이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내 돌이요, 내 나무라 지정해 놓으면 그것은 언제나 내 것이며 아무 때나 찾아가도 나를 반겨주던 것들인데 이제 사라졌다. 울고 싶을 때는 함께 울어주고, 기뻐할 때는 같이 춤추며 웃어주던 그 바위도, 나무도 더 이상 그 자리에 서 있지 않다. 집을 나서 한참을 걸어도, 다리가 아프다 느끼며 지루함에 짜증이 나도록 걸어도 산은 아직 내 발아래 닫지 않는다.
눈 오는 날, 논과 밭으로 다니며 깨끗한 눈에 내 발자국을 내며 신나하던 그 논과 밭이 이제 없다. 어릴 때 시를 좋아해 내 머리에는 항상 시가 수십 편이 들어있었다. 혼자서 시를 읊으며 아무도 딛지 않은 정갈한 곳을 내가 정복하여 온통 내 것으로 만들며 뿌듯한 행복감으로 발자국 난 모습을 뒤돌아보고 만족해하던 그 들판은 이제 없다. 옹기종기 모여 조그마한 촌락을 이루어 저녁이면 집집마다 연기를 뿜던 그 마을이 아니다. 솟아오른 아파트의 중압감에 마을은 벌써 알아차리고 다 떠나버렸다.
산 중턱이 깎여 집들이 들어서고, 강가에도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다. 아늑하던 동네는 변하여 화려하고 활기 넘치는 마을이 되었다. 농업과 어업이 중심이던 그 곳이 상업이 성행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제 그들의 삶은 푸근하고 여유로운, 더하여 따뜻한 농군이나 어민이 아니다. 빤질빤질 잇속을 챙기는 장사꾼의 삶이다.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사람이다. 그들은 여전히 그 모습이다. 어느 작가는 ‘어머, 어쩜 그렇게 변하지 않았니? 30년 전 그대로야.’라는 말을 꾸며진 감탄사며 서러움을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재미난 표현을 썼다. 하지만 짜고 치는 고스톱이 결코 아니다. 정말 변하지 않았다. 30년 전 그대로 맞다. 그 옛날 고등학교 졸업반에 있던, 내가 가르치던 교회 학생들을 만났다. 지금은 그때의 자기들 보다 더 큰, 대학생 아이를 두고 있음에도 내 눈에는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도 내가 그때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즐겁게 뛰놀고, 같이 고민하던 교사의 모습 그대로란다. “쌤요, 어쩌면 30년 전 그대로네요.” 그들의 말에 나는 거짓이 없다고 믿는다. 내 눈에 비친 그들도 그러하니까. 회 한 접시 놓고 마주앉은 우리는 그대로 30년 전 모습으로 돌아가 대화할 수 있었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기에 팽팽하던 얼굴에 주름이 좀 생겼더라도, 살이 붙어 날씬하던 개미허리가 좀 둥그스름해 졌더라도, 피부가 늘어져 탱글탱글하던 모습이 탄력을 잃었더라도 그 모습은 변함없다. 그랬기에, 그 모습 그대로기에 40대 후반의 중년들에게 너무나 편안하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얘들아’하고 부를 수 있는 게다. 타지에 나가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그들의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너무 감사하고 좋아 너희들이 있어 고향이 여기에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내 선배 언니들도 나를 향해‘영숙이가 살찐 걸 처음 본다. 늘 빼빼마른 영숙이가 살이 오르니 보기가 더 났네.’라며 부담 없이 이름을 부른다. 50대 후반의 나에게 말이다.
이곳 미국에서는, 객지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고향이기에 가능한 모습이다. 변하지 않은 고향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고향은 항상 거기 있다. 결코 변하지 않고 거기 그대로 있다. 30년,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있는 한 고향은 언제나 거기 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41 | 시원하고 허전하고 | 이영숙 | 2015.09.07 | 140 |
140 | 커피 한 잔 | 이영숙 | 2014.11.29 | 178 |
139 | 멕시코 선교 다녀와서 | 이영숙 | 2014.07.24 | 130 |
» | 고향은 여전히 거기에 | 이영숙 | 2014.07.16 | 264 |
137 | 한국이 맛있다 | 이영숙 | 2014.03.14 | 297 |
136 | 농군(農軍)이 되다 | 이영숙 | 2014.03.14 | 421 |
135 | 안경과 단추 | 이영숙 | 2013.12.10 | 432 |
134 | 세잎클로버와 네잎클로버 | 이영숙 | 2013.12.10 | 641 |
133 | 30달러의 행복 | 이영숙 | 2014.06.10 | 205 |
132 | 조청 | 이영숙 | 2014.03.14 | 280 |
131 | 다르다 | 이영숙 | 2013.10.13 | 181 |
130 | 40도와 43도의 차이 | 이영숙 | 2013.09.12 | 395 |
129 | 응답 | 이영숙 | 2013.07.10 | 277 |
128 | 비워진 화분 | 이영숙 | 2013.05.08 | 303 |
127 | 9년을 기다려 온 편지 | 이영숙 | 2013.06.08 | 342 |
126 | 버려지기 싫어서 | 이영숙 | 2013.04.12 | 256 |
125 | 모처럼의 외출 | 이영숙 | 2013.03.13 | 295 |
124 | 거울 | 이영숙 | 2013.01.01 | 460 |
123 | 합작품 | 이영숙 | 2012.10.29 | 358 |
122 | 그는 모른다 | 이영숙 | 2012.09.24 | 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