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달러의 행복

2014.06.10 07:35

이영숙 조회 수:202 추천:18



땅이 없다. 배란다도 없는 닭장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 그것은 마냥 꿈이었다. 채소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마음. 내가 키운 채소를 먹으며 살고 싶은 꿈이 나에게 있었다. 씨앗을 사러 갔을 때 화원주인 아저씨는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거실에서는 결코 채소가 자랄 수 없단다. 누가 뭐래도 나의 무모한 자신감은 씨앗을 사고, 흙을 사고, 큰 화분을 사서 씨앗을 뿌렸다. 창가에, 햇볕이 많이 들어오는 곳에 자리 잡고 열심히 물주고, 사랑을 베풀고, 정성을 쏟았다.
  그럼에도 믿었던 채소들은 잘 자라지 않았다. 싹을 틔우는 듯하더니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넓은 잎을 피워야 함에도 가느다란 실처럼 올라오는 싹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손가락만큼 자라던 잎들이 시들어가는 모습들을 안타깝게 지켜보며 그래도 잘 자라라고 빌고 또 빌었다. 매일 아침 물을 주다 너무 많이 줬나싶은 생각에 멈추었다 시드는 모습을 보니 너무 적게 줬나? 온갖 생각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섰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결국 시들고 자라지 않고 죽어가는 모든 채소들을 다 뽑아버렸다. 화분도, 흙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채소가 있던 창가 자리는 너무 허전하다.
  텅 빈 자리를 볼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도 같이 허허롭다. 거실에서 채소를 키워보겠다는 게 그렇게도 무모한 일이었을까? 잘 자라주었으면 좀 좋았을까. 아쉽지만 지울 건 빨리 지워야지. 다시 화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화초를 샀다. 이것저것 크고 작은 화초를 세 개 샀다. 화원에서는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화분에 겨우 몸 하나 비집고 앉아있는 가여운 화초들. 집에 있는 넓은 화분에 바꿔 심고 흙을 더 담아주었다. 채소가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원래 있던 화초들과 잘 조화를 이루어 비치해 놓았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 건 아니다. 그냥 푸른 잎을 활짝 펼치고 있는 모습이 자유롭고 아름답다. 거실을 오가며 내 눈은 그 곳에 한참을 머물러 선다. 그 자리에 머물러 설 때마다 얼굴에선 웃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는 행복이 솟아오른다. 마음은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 층 방에 있다가 문득 화초가 보고 싶어 거실로 내려간다. 그들을 바라보며 그냥 혼자서 웃는다. 더러운 것이 묻지 않았음에도 자꾸자꾸 잎을 닦고, 너무 자주 주면 안 된다고 들었기에 달력을 보고 손가락 꼽으며 조심스레 물주고, 잎을 세보는 것으로 살짝 만지며 사랑을 표현한다.
  내가 싫어하는 초저녁, 어스름녁에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을 느낄 때 화초들 앞에 서면 외로움이 사라진다. 한밤중 자다 깨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에도 화초들 앞에서 그들의 잎을 만지고 흙이 마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시든 잎은 없는지 둘러보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한낮 입이 마르는 듯 대화가 그리울 때, 화초들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눈다. 참 좋은 것이, 내 말을 모두 들어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어떤 종류의 이야기를 해도 묵묵히 듣고 밝은 미소로 응대한다. 남을 욕할 때도, 화를 낼 때도, 슬퍼하며 울적한 마음을 그냥 열어 보일 때도 가만히 곁에서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준다. 한번도 나를 나무란 적이 없다. 욕을 한다고 교양 없다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보인다고 헤프다 말하지 않는다. 별것 아닌 일에 기뻐 뛴다고 실없다 나무라지 않는다. 얼마나 고마운 화초들인가.
  30달러로 세상에 어떤 행복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걸로 뭘 먹을까? 그 돈으로 뭘 살까?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 30달러로. 이 무한한 행복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돈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어떤 이는 삼만 달러로도 얻지 못하는 행복을 겨우 30달러로 얻고 있음이 감사하다. 더 무엇을 바라랴. 그저 살아가면서 이정도의 화초를 거실에 두고 살아갈 수 있는 정도로만 살수 있다면 무한 행복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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