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

2013.10.13 14:09

이영숙 조회 수:180 추천:25

다르다

인물화를 연습한다. 요즘 시간이 한가해서 여가활용으로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다 시작한 것이다. 책에서 말하기를 그림 중에 인물화가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단다. 우선 단순하니까 시작하기는 쉽지만 잘 그리기는 어렵다는 말이겠지. 가장 큰 문제가 닮게 그리는 거다. 물론 나에게는 아직 불가능하다.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닮게 그릴지 알 수 없다. 잘 그려서 친구나 아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원래 그림에 재능도 없으니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면서 신경을 많이 쓰는지 한두 시간 이상을 그리기 힘들다. 체력도 약한 탓에 쉬 몸살이 난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쑤셔오니 어느 정도 하고는 쉬어야 한다.
  처음 연습하면서 부분적으로 그렸다. 눈을 그리는 연습, 코를, 입술을 그리는 연습을 따로 했다. 코와 눈과 입술의 모양이 여러 가지라는 걸 그리면서 알았다. 참 여러 가지 모양이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부분 연습을 마치고 얼굴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몇 가지 예를 연습하여 그렸지만 그것은 정말 예에 불과했다. 사람을 그리려니 천 사람, 만 사람의 모양이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쩌면 다들 그렇게 다를까. 신은 정말 대단하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오는 수백억의 사람이 하나도 닮지 않게 다 다르게 만든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눈을 크게 뜨고 사람들을 유심히 뜯어보는 거다. 이제는 사람을 볼 때 그냥 봐지지가 않는다. 눈도, 코도, 입술도 얼굴형도 모두 다른 그 모습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머리카락 한 올도 무심코 보지 않는다. 어떤 모양으로 구부러졌는지, 바람에 날리는 모습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
  전에는 각 사람의 코가 어떻게 생겼는지, 눈이 어떤 모양으로 다른지 알지 못했다. 이마가 어떠한지, 입모습은, 턱은 어떤지 관심도 없었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몇 번을 만난 사람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냐고 누군가 물으면 한참을 생각해도 그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눈앞에 있으면 알겠는데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린다. 오죽하면 처녀 때 절대로 혼자 선보러 가지 말라고 가족들이 윽박질렀다. 사람을 만나고 온 후 궁금한 식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청문회를 열었다. 그러나 한번도 자세히 상대방을 묘사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 대답은 언제나 몰라,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난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니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다. 그 뿐이다. 도대체 외모에는 관심이 없다. 나 자신도, 상대방에 대해서도.
  그러던 내가 이제 사람의 얼굴을 한 부분씩 관심 있게 보게 됐다. 막상 사람의 얼굴을 관찰해보니 그것도 재미있다. 미간의 넓이도, 코의 길이도, 인중의 차이도 다 다르다. 사람은 대부분 눈의 모양이 똑같은 줄 알았는데, 코는 코지 뭐가 다를까 생각했는데 아니다. 참 신기하고 새롭다. 이렇게 다른 게 인간이구나.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 코는 이런 모양인데 너의 코는 다르게 생겼으니 틀렸다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얼굴이 각각 다르듯이 생각도, 성격도, 마음씀씀이도 다 다르니 그저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는 게 옳은 일일 거다. 그러고 보면 다툴 일도 없고 서운할 일도 없지 않는가. 내가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 듯한데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말이 투박하여 스치듯 지나는 말에 작지만 마음에 상처 주는 사람을 무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거짓말로 상황을 뒤집는 사람에게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와 다른 것뿐이지 않는가.
  잊자. 나와 ‘다름’이 ‘틀림’은 아니니. 나의 모든 모습이 다 옳은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상황이 그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니. 사람의 다른 얼굴은 이해하면서 성품이 각각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하다.
  인물화를 좀 더 열심히 연습하자. 각 사람을 자세히 그리며 얼굴과 마음을 함께 이해하도록 해야겠다.  

9/3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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