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 단추

2013.12.10 12:00

이영숙 조회 수:432 추천:26


안경과 단추

인물화를 연습 중이다. 그림을 그리며 사람의 얼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워낙이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눈썰미도 부족한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게 좀 무리긴 하다. 그러나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취미생활이라고 편히 마음먹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람의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하다 문득 마음을 관찰하는 법도 배우고 싶어진다. 사람의 마음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 관찰해서 자세히 묘사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어릴 적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착하게 살아가던 어느 청년이 신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기회가 생겼단다. 신은 안경과 단추를 그 사람에게 보이며 물었다. “안경은 남의 마음을 보는 것이고, 단추는 너의 마음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다. 어느 것을 원하느냐?” 신의 제시는 재미나다. 안경과 단추는 참 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안경은 안에서 밖을 보는 물건이다. 어떠한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다.
  로스앤젤레스의 봄은 자카란다가 화려하다. 아름다운 보랏빛을 지닌 자카란다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시각적으로 재능이 부족하고 어리바리한 나는 몇 년이 지나도록 자카란다가 두 가지 색을 지니고 있는 줄 알았다. 짙은 분홍빛 보라색과 연보라. 그것이 선글라스를 꼈을 때와 벗었을 때의 차이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니 정말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다. 다른 건 괜찮았는데 유독 자카란다만 다르게 보였다. 운전을 할 때 습관처럼 선글라스를 끼는 나는 선글라스를 꼈기에 물건이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생각을 잊었다. 빨간 안경을 끼면 주위가 빨갛게, 파란 안경을 끼면 주위가 파랗게 보인다. 안경의 위력이다.
  단추는 자신을 남에게 보여주는 물건이다. 단추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이 상대에게 다르게 보이게 된다. 하나만 잘못 끼워도 남들 보기에 이상해진다. 끼워야 할 부분을 풀어놓으면 불량해 보인다. 조심성이 많은 나는 블라우스나 남방을 입을 때 가능한 단추를 목까지 끼워서 입기를 잘 한다. 보는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이 답답해 보인단다. 자꾸 제일 위의 단추를 풀어준다. 그럴 때마다 혹시 단정하게 보이지 않을까봐 난 걱정을 하고. 단추 하나로 사람의 됨됨이도, 성품도, 그 사람의 현제의 상황까지 조금은 알아볼 수 있다. 단추 하나의 위력이다.
  신의 제시에 그 청년은 망설임 없이 남의 마음을 보는 안경을 선택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그랬을 거라 생각했다. 남의 마음을 보고 싶다. 남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지금 이 상황에서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남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나나 너나 다 있을 게다.
  그는 신에게 안경을 요구했고 귀한 선물을 받은 그는 기뻤다. 안경을 쓰고 그가 가장먼저 간 곳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도 분명히 그를 사랑하리라 확신 했기에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안경에 비친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다른 남자에게 끌리고 있었다. 너무 실망한 그는 돌아와서 몸져누웠다. 며칠이 지나 기운을 차리고 이웃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과연 어떨까? 그가 본 이웃사람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과 마음이 다른 면을 보았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마음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 그들은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내가 남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은 남들도 나를 속이기 때문이라고. 결코 남을 믿을 수 없으니 그들 또한 그렇게 살아야만 손해 보지 않고 산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들은 청년도 믿지 못했다. 어떠한 말을 해도 말로는 그러냐하고는 마음에는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로 그의 진실한 마음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큰 실망을 안고 그 청년은 다시 신을 찾았다. 안경을 주고 단추를 달라고 요구했다. 단추를 가슴에 단 그는 모두에게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며 살았단다. 그 이후는 듣지 못했지만, 과연 그 이후에 그 청년은 행복했을까?
  사람의 얼굴은 쉽게 관찰할 수 있지만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든 신에게 감사한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 보인다면 참 부끄러울 때도 많을 거다. 가끔은 좀 활짝 열어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많은 부분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게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 누구나 거짓과 진실을 가슴속에 공유하고 살아가고 있음이니.
  진실이라고 소리치며 내 마음을 남에게 보인들 어쩔 것이며, 남의 마음이 어떨지 본들, 보지 못한들 어떠하리.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부분은 그냥 덮어두어 그렇게 살아가자.
  우리에게 남의 마음을 보는 안경도, 내 마음을 보여주는 단추도 없음이 감사한 일이지 않는가.

9/5/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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