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비
이 월란
텅빈 들판
허상의 참새떼 날아오면
바람타고 날으는 꽃가루에조차
생명을 잉태하리라 실었던 소망
누구에게 배우며 살아왔던가
멀리 있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이라고
곁을 지키는 분신도
멀어지면 지체없이 날아와
화살처럼 꽂힐 그리움인 것을
생명불어 빚어주신 토기장이
은혜 밖에 없다는데
나의 발 디딘 땅
보듬어 안고 입맞춰 볼 것을
허상 좇던 365일 인심쓰듯 하루 빌어와
남의 허물 가리키던 무례한 손가락 굽혀
밤을 세워 헤아려도 모자랄
감사해야 마땅할 것들
하나 하나 세어 볼 것을
가파르게 숨을 조이던 생의 오르막
눈으로만 배출되던 오장육부의 배설물이 지겨워
물조차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철없던 투정
들판에 세워진 허아비도 제 구실을 한다는데
바람불면 흔들리는 허아비의 종소리
나의 귓전에 흔들려
허상의 참새떼를 쫓나니
이제 막 추수를 끝낸
텅빈 들판같은 삶에라도
허상 쫓는 허아비
하나쯤 세워둘 것을
2007-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