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기
이월란(10/01/20)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 검사는 공공연한 숙제였다
나는 가끔씩 그럴듯한 거짓말로 동화를 써재꼈다
아버지는 동화 속 주인공으로 둔갑시켰고
나는 종종 해피엔딩의 담벼락에
포스터처럼 붙어 있곤 했다
그 담벼락 밑에 꽃처럼 피어 있곤 했다
참 잘 했어요 라는 스마일 도장밥을 이마에 찍고서야
타박타박 현실의 대문으로 들어가곤 했던 것이다
나의 일기를 훔쳐 본 언니는 다툴 때마다 빈정거렸다
아버지가 언제 그랬냐고, 네가 언제 그랬냐고
죽도록 미웠던 언니는
지금은 죽도록 그리워
내가 여시와 야시를 오가는 동안
곰과 소 사이를 오가던 순둥이 언니가
지금은 죽도록 그리워
나의 시가 종종 그 때의 일기를 쏙 빼닮아 있는데도
가난한 살림을 불리느라 지금은
공개되어버린 나의 일기장을
더 이상 읽어주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