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이월란(10/01/13)
모니터 앞에 몇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다 오더니
이 남자, 포르노만 진탕 보고 온 것인가 물이 올라 있다
나도 덩달아 물이 올라 기가 막힌 시상이 떠오르는데
손 뻗으면 머리맡에 메모첩과 펜이 놓여 있는데
이 몽둥이 같은 물건이 번데기로 진화라도 해 버린다면
이 남자, 날 가만 두지 않을 기세다
내 강아지에게 침을 뱉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겠다
낮에 쌓이는 건 밤에 풀리지만 밤에 쌓이는 건 낮에 풀리지
않는다는 신앙을 철저히 믿고 사는 이 남자
내가 풀 수 없는 너의 히스테리는 없어
어느 제목 아래 들어가야 하는 행간이더라
지금 받아 놓지 않으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건 기정사실
사랑한다는 말은 세컨드 랭귀지로 하지마
가만, 바디 랭귀지가 먼저였나 한국말이 먼저였나
어디에라도 받아 적어 놓아야 한다
이 남자는 아직 나의 시를 단 한 개도 읽어보지 않았다
내 몸에 갈겨놓은 시들만 유독 잘 읽어낸다
데리고 살기엔 안성맞춤이다
난 길고 가는 것보다 짧고 굵은 인생이 더 좋아
그래야 오래 오래 아프지 않아
나의 집중력이 정교한 키스에 있다는 건 죽어서도 잊지마
스타카토 보다는 리타르단도가 좋아
클리토리스와 G스팟은 아르페지오로 연주해 줘
눈 속에 있는 악상기호를 제대로 읽어야 해
온음의 쉼표쯤은 오른쪽 귓불에다 찍어주고
갑자기 포르티시모로 날 놀래켜도 나쁘지 않아
그래, 거기, 거기에라도 써 둬야겠어
아, 거기
쓰면 지우고 쓰면 지워버리는 이 남자
돈도 되지 않는 시 같은 건 뭐하러 쓰니
절정의 순간들을 매일밤 새겨 두고 자고 싶어
더 깊숙이 날 건드리면 포르노 작가가 되는 수가 있어
어, 거기
어,
등짝 가득 열 손톱으로 붉은 점자책을 만들어 버렸더니
쓰지 말랬잖아
나를 아예 엎어버리는, 이 남자
[시평] 미주문학 2010년 가을호 ------------- 나희덕
이월란의 「이 남자」는 상당히 긴 편이지만 언어의 긴장이 끝까지 유지되고 있다. 시인은 사랑의 행위와 시를 쓰는 행위를 겹쳐 놓으면서 양자의 의미를 설명적인 방식이 아니라 극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여성화자인 ‘나’는 기가 막힌 시상을 떠올리고, ‘이 남자’는 물이 올라 육체적 결합을 원하는 절묘한 상황은 대담한 시어와 구어체에 힘입어 생생하게 전달된다.
모니터 앞에 몇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다 오더니
이 남자, 포르노만 진탕 보고 온 것인가 물이 올라 있다
나도 덩달아 물이 올라 기가 막힌 시상이 떠오르는데
손 뻗으면 머리맡에 메모첩과 펜이 놓여 있는데
이 몽둥이 같은 물건이 번데기로 진화라도 해 버린다면
이 남자, 날 가만 두지 않을 기세다
내 강아지에게 침을 뱉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겠다
낮에 쌓이는 건 밤에 풀리지만 밤에 쌓이는 건 낮에 풀리지
않는다는 신앙을 철저히 믿고 사는 이 남자
내가 풀 수 없는 너의 히스테리는 없어
어느 제목 아래 들어가야 하는 행간이더라
지금 받아 놓지 않으면 깡그리 잊어버리는 건 기정사실
사랑한다는 말은 세컨드 랭귀지로 하지마
가만, 바디 랭귀지가 먼저였나 한국말이 먼저였나
어디에라도 받아 적어 놓아야 한다
이 남자는 아직 나의 시를 단 한 개도 읽어보지 않았다
내 몸에 갈겨놓은 시들만 유독 잘 읽어낸다
(중략)
그래, 거기, 거기에라도 써 둬야겠어
아, 거기
쓰면 지우고 쓰면 지워버리는 이 남자
돈도 되지 않는 시 같은 건 뭐하러 쓰니
절정의 순간들을 매일밤 새겨 두고 자고 싶어
더 깊숙이 날 건드리면 포르노 작가가 되는 수가 있어
어, 거기
어,
등짝 가득 열 손톱으로 붉은 점자책을 만들어 버렸더니
쓰지 말랬잖아
나를 아예 엎어버리는, 이 남자
-이월란,「이 남자」부분
사랑의 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몸에 시를 쓰고 ‘이 남자’는 그 시를 계속 지운다. 이때 ‘몸’은 ‘쓰다’라는 동사와 ‘지우다’라는 동사가 만나는 전쟁터가 된다. “돈도 되지 않는 시 같은 건 뭐 하러 쓰니”라든가 “쓰지 말랬잖아” 등 남자의 말에서는 시쓰기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나’에게 시쓰기는 “절정의 순간들을 매일 밤 새겨두”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말은 세컨드 랭귀지로 하지 마”라는 주문처럼 한국어(모국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화자인 ‘나’에게 시와 사랑, 말과 몸은 대립적인 것도,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가지 유비관계가 다양한 변주를 이루면서 경쾌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사랑과 그리움을 우리는 흔히 추상적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기금까지 읽은 시들을 통해 그 감정이나 관념들이 몸의 물리적 감각들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위장이 기억해낸 감정, 밥통에 코를 쳐 박을 때의 감정, 머리카락의 이탈이 빚어낸 감정, 물이 오른 육체가 유발하는 감정 등은 모두 몸에서 읽어낸 것이며, 몸이 읽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표현은 몸이 또 다른 몸 위에 쓰는 살아 있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