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러지
이월란(10/01/23)
꿈틀꿈틀 어젠 벌레가 되었어요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세상을 밀어내려 버럭질 하듯 땅을 연주했고요 간질간질 날개는 낙엽처럼 떨어지고 홑눈이 닿은 소실점 위에 집을 짓고 말았고요 몰캉한 살갗을 모래섬들이 긁고 지나갈 때면 계절따라 변색하는 열대어가 되어 헤엄치는 꿈에 시달리곤 했지요 수축과 이완이 뱃살을 늘일 때마다 날개 아래 바둥거리며 비상하는 날짐승들의 바람 앞에서 눈이 멀곤 했지요 키작은 꽃들이 하늘을 씹고 있는데 고만고만한 꽃자리마다 취한 듯 꿈틀대며 기어가다 보면 떨어진 꽃잎에 꽃트림하듯 나를 오염시키고 마는 것이었지요 땅속 죽은 뼈들이 다닥다닥 귀를 맞추며 일어서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리면 흐물흐물 뼈를 그리던 넋도 한 번씩은 직립의 꿈으로 벌떡벌떡 일어섰지요 그래도 난 알았어요 그 순간마저도 그냥, 삐딱이 기울어진 허공을 기어올라가고 있었을 뿐이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