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ㅡ가을에/정한모

2011.03.23 20:52

박영숙영 조회 수:406 추천:104

맑은 햇빛으로 빤짝빤짝 물 들이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소중한 꿈을
꼭 안아지케게 해 주십시오

- <여백을 위한 서정>(1959) -

[개관정리]

◆ 성격 : 기구적(祈求的), 휴머니즘적, 고백적
◆ 표현 : 절대자를 향한 간절한 기도의 형식을 취함.
             경어체를 통해 경건하고 간곡한 호소의 분위기를 자아냄.

             대조적 의미의 시어 사용
                 (나뭇잎, 미소, 아가의 작은 손아귀, 할머니의 말씀, 소중한 꿈 ↔ 해저, 공포의 기억)

             대립적 이분 구조(공포의 이미지<큰 것> ↔ 순수의 이미지<작고 여린 것>)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나뭇잎, 반짝이는 미소 → 비록 미약하지만 너무도 인간적인 것(인간들 간의 사랑, 믿음, 진실 등)

    * 커다란 세계 →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어둠의 세계(전쟁의 상황을 연상)

    *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 믿게 해 주십시오

         → 나뭇잎과도 같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들의 작은 진실(사랑)로도 이 거대한 세상에 침몰당하지

                        않고 지탱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시오.

    *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 청각의 시각화(공감각적 이미지)

    * 아가 → 순진무구, 평화, 즐거움, 안식 등의 이미지

                   어둠과 폭력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성과 순수성을 잃지 않은 존재

    *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 비정한 세계에 놓여진 보잘것없는 인간 존재 상징

    *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 해저 같은 그날

                → 바닷속 깊은 심연의 암흑과도 같은 아득하고 혼미한 종말의 시대 표상

    * 4연의 동화적 요소

        → 동화는 순진한 꿈과 인간적 진실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순수한 세계에 대한 소망을 잃어 버리지

    않을 수 있기를 염원함.(현대의 물질문명과 폭력성에 의한 인간 상실의 비애와 원초적인 생의 순수함 염원)

    *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 이 무서운 진리  
        → 어린 시절 병석에서 느꼈던 공포가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임.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해 비인간적인 것이 범람하는 50년대의 공포스러운 현실, 즉 피비린내나는

                                 전쟁과 폭력을 의미함.

◆ 제재 : 아가의 기도
◆ 주제 : 순수 인간성으로 세계의 폭력과 공포를 극복하려는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미약하지만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적인 세계를 떠받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기원

◆ 2연 : 절대자에 대한 믿음 기원
◆ 3연 : 인간의 종말에 대한 부정
◆ 4연 : 인간적 진실과 순수한 꿈의 세계에 대한 믿음 기원
◆ 5연 : 공포스러운 세계로부터 인간적인 꿈을 간직하게 해달라고 기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생명의 소중함, 인간적인 순수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이분 구조로 되어 있다. 선과 악의 대결, 평화와 폭력의 대결 구도가 그것이다. 즉 현실은 폭력이 난무하고 거대한 횡포 속에서 작은 평화는 무참히 깨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런 현실은 순진성을 앗아 가고 아름다운 꿈을 짓밟는다. 천진한 미소의 세계로 불의의 세계를 물리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화자는 안타까워한다. 달에 계수나무가 박혀있다고 믿는 어린 날의 이 천진하고 아름다운 꿈도 현실은 단호히 거부한다.

오로지 공포와 불의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화자는 고통받으며, 그러한 세계가 물러가기를 소망한다. 이 소망은 행동적이지 않다. 역사 의식에 투철한 현실 개혁적 의지가 표출되는 것도 아니다.

이 폭력의 세계를 타파하는 것은 오로지 순수 인간성의 구현뿐이라는 것이 화자의 믿음이다. 따라서 이 시는 휴머니즘 정신을 토대로 순수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그러므로 자기 고백적 어조에 실려 소망이 드러난다.

정한모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아가'의 이미지는 그의 시의 주제를 암시한다. 1950년대의 시대상에 좌절과 공포와 절망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어둠과 폭력성 속에서도 인간주의와 순수주의가 파괴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기원의 심정을 '아가'라는 이미지로 표상하여 드러낸다.

'아가'의 이미지는 퇴영적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과거지향, 유년으로의 회귀, 현실 도피, 모성애에의 귀착' 등이 그러한 속성을 대변한다. 또한 '아가'의 의미는 순진무구, 평화, 순수한 사랑 등이 있는데, 현실이 포악하고 살벌할수록 그런 속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시인은 순수성과 밝음, 소망 등을 표상하는 아가의 이미지를 통하여 전쟁과 같은 현실의 어두움, 참혹함에 대립시키는 방식을 그의 시적 특징으로 많이 제시해 왔으며, 이 작품도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기초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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