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윤, 정호승, 이해인 시집을 읽고

2002.11.14 09:29

길버트 한 조회 수:441 추천:6

미래사에서 나온 서정윤 님의 '소망의 시' 중 30쪽과 31쪽에 있는 작품을 첫 번째로 꼽았다.

스쳐 지나는 단 한순간도
나의 것이 아니고
내 만나는 어떤 사람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야
바람이 분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햇빛조차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살아 있음이
어떤 죽음의 일부이듯이
죽음 또한 살아 있음의 연속인가,
어디서 시작된지도
어떻게 끝날지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생명을 끈질기게,
지켜 보아왔다.
누군가,
우리 영혼을 거두어갈 때
구름 낮은 데 버려질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도 안타깝지 않은
오늘의 하늘, 나는
이 하늘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소망의 시2 전문>
이시는 내 머리에서 오랫동안 남아 맴돌게 했다. 윤동주님의 시 '서시'에 뒤 이어 비교되거나 다시 읽혀지게 하는 시로 남아 있으면서 낭송만이 아니라 그 시구들을 의미해 보면 시의 살과 뼈가 만져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어쩌면 불교적 종교관이 바탕이 될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살고 죽음의 인간의 깊은 내면의 번뇌를 가지고 지금의 하늘을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순응의 자세로 아름다운 인간애를 그린 작품이라고 본다. 시인이 바라보는 어려운 현실을 체념하듯 어쩔 수 없는 가슴의 폐허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현실에 항거이며 용기라고 나는 해석했다.

두 번째 시는 현대문학북스에서 출간한 정호승 님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라는 시집에서 뽑아 봤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전문
이 시에서 그늘이라는 소재가 두 가지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한가지는 자연으로 나무의 그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보는 얼굴에서 대하는 외형적인 겉치장보다 진솔한 마음의 내면적 깊이로 사람을 대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다. 문명의 발달이 오늘날 풍요와 향락을 줄지는 모르나 점점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잃어 가는 세태이다. 기계적인 생활로 사무적이기만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대면 할 수 없다는 강한 메시지로 읽었다. 아프고 쓰라린 상처의 삶을 서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런 그늘진 구석까지 위로하며 껴않을 수 있을 때 비로써 사랑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1~3행의 그늘과 사랑의 대조적인 상징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맑고 눈부심에서 7행 감탄보다는 독자에게 반문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고 안 되고는 이 시를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눈물을 흘려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듯 따뜻한 인류애를 가지고 살아가자는 시인의 말에 감동적이다.

세 번째 시는 박우사에서 출간한 이해인 님의 '다시 바다에서' 이라는 시집에서 골라 봤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 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江)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야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영토(領土) 전문>
이 시를 말하기에 앞서 시인부터 먼저 말하고 싶다. 이해인 시인은 수녀님이시다. 일반인과는 다른 종교적 삶이 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수녀님이자 시인으로 생각과 감정을 옮겨 놓고 있으면서 1976년부터 5권의 시집을 냈지만 그 중에서 엄선해서 2001년 영역시집으로 다시 나온 시집이다.
처음에 이 시의 제목을 보고 시인의 말하는 민들레 영토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가 영토보다 더 중요한 구원의 기다림과 기도하는 마음을 읽고 숙연해 진다.
작품 속에서의 뛰어난 은유가 돋보이고 있다. 기도는 음악이라고 했고, 사랑은 성스러운 깃발이었다. 그밖에 고독의 진주를 캐는 행동과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이곳이라는 서화적 모습이 아름답다. 어쩌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긴 강가에 서 있는 듯한 형용은 저절로 감탄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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