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과 나무
2003.03.28 11:48
제 1부 근대 이후 한국문학사의 반성적 성찰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근대적 문학 제도의 형성
다른 여러 나라의 문학, 곧 세계문학의 제도와 비교 검토될 수 있도록 한국문학의 제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강제적 규정력을 가지게 된다. 근대를 공통적으로 내세운 만큼, 근대의 성격문제와 근대 문학의 기점 문제를 선취적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으며, 근대성의 시각에 의거하여 몇 가지 항목별로 근대적 문학 제도를 고찰해 나가야 할 형편이다.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근대 사회와 근대 문학의 형성기를 주된 연구시기로 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의 문학과 문학의 제도 문제는 다른 기회로 그 관심의 유발을 미루어두는 셈이다. 근대적 문학 제도에 관한 각 나라별 언어 영역별 편차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효율적인 비교 검토가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사전 준비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근대성 modernity)이란 용어는 근대의 시대 구분에 따른 논의와 시각에 따른 (현대성)으로 치환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근대성)은 현재 모더니티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이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모더니티 전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시하는 입장인 반면, (현대성)은 모더니티의 현재적 영향력과 당위성을 부각시키는 입장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용어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의미의 두 측면은 그런 점에서 (당대적 contemporary)이란 용어의 의미와 구별된다. 근대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근대 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살펴보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문학의 외형과 외곽을 구성하는 문학 제도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 역사적 의미의 근대성을 중심으로 논의 할 수밖에 없다. 근대성이란 문자 그대로 근대 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인데, 서구의 경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지리적 발견과 상업의 발전 등 큰 변화들이 일어나는 16세기를 그 출현 시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근대성을 반영하고 있는 근대 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1) 경제적 측면: 특권층(신분)이나 특권 단체(동업조합)가 소멸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사회구성원이 됨, (3) 정치적 측면: 개인의 기본인권이 보장되는 입헌의회 정치가 확립되며 국민적 통일을 바탕으로 한 국민국가가 성립됨, (4) 문화적 측면: 문화. 사상.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사상계를 지배하며 과학기술을 생산 과정에 응용함으로써 기아와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 성취됨 등의 특성이 제시되고 있다. 근대 사회의 특성과 근대성의 개념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 이전의 사회사적 경과를 중심으로 한 것이며, 특히 서구의 역사 과정에 따른 경험적 중심으로 한 것이며, 특히 서구의 역사 과정에 따른 경험적 사실들을 토대로 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또는 근대성이란 개념 자체가 구체적 사실, 이를테면 문학에 있어 작품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 검토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우리의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그 개념의 적용을 문제 삼는 것이 응당한 절차일 수밖에 없다. 주변국 또는 주변 역사의 상황에 맞물려 있는 형편으로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은 근대 한일관계의 기원이라거나, 근대와 타자의 문제라는 논의들이 이의 예증에 해당한다. 우리 문학의 근대 및 근대성의 전개와 경과 과정이 일제 치하 식민 시대의 상황을 중요한 시기로 하며 그와 밀접한 상관성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를 한일관계사의 측면에서, 우리의 (근대)는 개항 이후 서수 사조의 도입, 일제의 식민 수탈, 그리고 그 결과로 뒤이은 분단 시대의 전개라는 역사적 실상들을 그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가 표방한 개인적 자각과 자의식보다는 국가적 위기 의식과 공동체적 인식이 더 비중 있게 작용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문학의 근대성을 살펴보는 눈에 있어서는 우리의 시대사적 체험과 그에 걸 맞는 관찰의 방식이 적용되어야 마땅할 것으로 본다. 근대성의 지표를 올바로 설정하기 위해서 제국주의적 담론인 비교문학적 시각과 반제국주의적 담론인 비교문학적 시각과 반제국주의적 담론인 내재적 발전론을 넘어 국제적 시각의 도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 의로의 확장 가능성을 예비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근대 문학의 기점에 대한 논의는 근대성이 문학적으로 반영된 사실을 실제적 역사 과정 속에 정초하는 일이 된다. 좀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근대 이전과 이후 등속의 시대 구분은 그 내용적 의미의 범주화를 구체화된 삶의 영역 가운데 설정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이 (근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특히 문학이라는 특정한 부문에 있어서의 그것은 근대화와 식민지화의 중첩이라는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의 근대적 삶이 극히 혼란스러웠던 만큼 그 구분 자체가 명료한 외양을 보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한 측면은 또한 (근대)를 분기점으로 한 문학사의 시대 구분 논의가 다양한 층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로 인해 널리 확산된 논리이다. 식민사관의 극복과 갑오경장 기점설의 비주체성을 극복하고 (언어 의식의 대두)와 같은 형식 문제에까지 시각을 넓힌 장점이 있으나, 문학사 자체 내부의 발생론적 관점보다는 정치. 경제사적 논리를 앞세운 점, 그리하여 작품의 실체가 미처 이에 뒤따르지 못하는 단점을 보여준다. 문학사의 구체적 내용, 특히 (한중록)을 거론하면서 이의를 제기한 김용직이나 한국문학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대안의 부재를 지적한 김주연, 그리고 민족문학론의 큰 틀에서 문제점을 제기한 백낙청과 염무웅의 견해를 주목할 만하다.
영. 정조 시대 소급론의 문제점과 갑오경장 기점론의 타율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특히 개항을 전후한 사회. 경제적 인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중 황패강의 경우, 민중 운동의 근대성과 봉건체제의 변화가 근대적 시민 사회로의 변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역시 실제의 문학작품을 통한 뒷받침에는 무력한 편이다.
임화이래 종래 문학사의 통설에 해당하며 갑오경장의 역사적 성격을 문학의 영역에 연장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근대성의 본지로서 민중 의식, 서민 의식의 성장과 갑오경장의 외면적이고 사대주의적인 개혁의 성격이 불화한 만큼,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는 관점이다. 이는 이 관점의 시발에 해당하는 임화부터 신문학사는 이식문학의 역사라는 논리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반성적 성찰 없이 일치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동시에 이는 우리 고전 문학사에 관한 인식 문학의 역사라는 논리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반성적 성찰 없이 일치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동시에 이는 우리 고전 문학사에 관한 인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문학사적 통시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 백철과 조연현의 경우는 사조사와 분단사를 중심으로, 우리 문학의 내재적인 계기를 들여다보지 않은 속류 이식문학론 이라 볼 수 있다.
이광수의(무정)이 보여준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그 이전의 문학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조선 초유의 양과 질을 지닌 작가)라는 평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작품의 성과만이 아니라 그 작품과 그 작가로 대변되는바 문학다운 문학의 시대가 개막되었다는 판단을 촉발한다. 1910년대를 기점으로 보는 논자들이 작품의 입지 점을 내세운 만큼, 시에 있어서는 대체로 1908년대(소년)의 발간 연대를 선택하고 있다. 근대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문학, 특히 우리문학 제도의 근대성에 의거한 시대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데 그 의도가 있다.
근대 문학의 기점을 어디에 두든지 간에 구체적인 작품으로 근대성을 드러낸 시가 문학은 개화기 시가에서 시발된다는 것이 그 동안의 일반적인 통설이었다. 이때의 개화기는 대체로 1876년 개항을 기점으로 1894년 갑오경장을 지나 1910년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개화기 시가는(독립신문)의 독립. 애국가류를 비롯하여 가사(개화가사). 시조. 한시 등 전통적 시가 형태와 창가. 신체시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시가 형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당대 간행되었던 신문. 잡지들을 통해 발표되었다. 특히 신체시는 개하기 시가를 대표하는 특징적 양식으로서, 의식적 측면에서 강한 외래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서구 문명의 충격에 의한 사회 개혁의 열의를 담고 있다. 신체시의 계몽주의적 측면, 그리고 형태적으로 새로운 문체적 특성 등은 곧 근대 정신이 우리 문학에 수용되기 시작한 구체적인 범례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개항과 함께 여러 나라의 언어와 문장들이 유입, 수용되었고 그 충격과 주변 여건은 새로운 문체를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신체시는 1910년대 중. 후반에 이르러 다시 새로운 시적 각성을 앞세운 세대들에 의해 보다 발전적 면모를 띤 형태로 변모, 극복되고 본격적인 근대시로서의 성격을 확립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적 성격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계몽적 목적 의식을 앞세우기보다는 새로운 형식적 틀을 통해 개인의 개성적 반응을 노래한 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설에 있어서도 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근대 문학의 기점 문제가 근대성을 함의하는 작품의 산출 문제와 조화롭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근대 소설을 논의하는 마당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곧 (신소설)이다. 신소설이 새롭다는 것은 과거의 고대 소설과 내용도 다르고 표현 형태도 다르다는 뜻이다. 이 (새로운)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연구가 곧 근대 개화기 소설 연구이다. 발전기는 (1)이광수의 (무정)으로 대표되는 본격적 근대 소설의 출발, (2)문예지의 등장, (3)경향소설과 카프계열 소설의 출현 등으로 설명된다. 해체기는 문학 후의 1930년대 순수 문학의 시기와 1940년대 문학적 공백기로서, 1930년대의 순수 문학은 일제의 탄압에 대한 자구책으로, 그리고 8.15 해방 이전의 1940년대 문학은 모국어의 멸실과 전면적인 파산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설명되고 있다.
근대 비평의 형성 과정 역시 여러 가지 가치들의 혼재와 논란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근대 비평사의 시대 구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사정인데, 윤병로, 김윤식, 김영민 등 1)개화기 비평 2)근. 현대 문학 초창기 비평 3)프로 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의 대립기 4)1930년대 이후 모더니즘 문학론 시기로 나누어진다. 근대 비평의 형성은 궁극적으로 근대적 문학작품의 후속 작업으로서 프로 문학 운동의 경우에는 이념적 성격이 문학의 산출을 앞서가는 새로운 현상을 조정하기도 했다. 비록 작품의 실제가 그 이념성을 뒤따르지는 못했지만, 그 원론적 이념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정신은 그것대로 하나의 근대적 정신의 표현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동력으로 하여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는데 유효한 관점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실 (문학 제도)는 동시대의 문학을 형성하는 기반이면서, 동시대의 문학으로부터 그 성격을 규정받는 범주라는 양가적 의미를 갖고 있다. (문학)과 (문학 제도)를 통괄하여 살펴보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며, 이 양자에 대한 연구가 별개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종국에는 하나의 시각으로 통어해 나가는 노력이 없이는 균형 있는 관찰의 성과에 도달하기 어려울 터이다. 그와 같은 노력은 문학사와 사회. 경제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며 이들을 상관시키는 큰 작업의 얼개 아래에 있어야하며, 이 발효에서 그처럼 무거운 역할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까닭으로 여기서는 소략하게 우리의 근대적 문학제도의 문제를 (1)작가의 위상과 사회적 지위, (2)문학 형성과 등단 제도, (3)문학적 평가 및 호상 제도, (4)문학 저널리즘으로서의 신문. 잡지, (5)개화기와 일제하의 문학 교육 제도 등 소기의 목적에 도달해 보려 한다.
근대성의 개념과 더불어 우리 근대 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검토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 않았다. 근대성 개념의 적용 방향을 칼리네수쿠Calinescu가 구분한 바(사회. 역사적 근대성)에 두고,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분단 시대를 예정하는 근대의 시대사적 실상을 문화 및 문학 현상에, 또 문학 제도에 대입해 보는 시도였다. 그러한 까닭으로 여기에서는 개인적 자각과 자의식, 문학의 개별적 가치와 성과보다는 전체적이고 공동체적인 시각을 통시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성, 근대적 정신, 근대 문학의 특징적 성격에 연관된 근대적 문학 제도는 작가의 사회적 지위, 문단 형성과 등단 제도, 문학적 평가와 포상 제도, 문학 저널리즘으로서의 신문. 잡지, 개화기와 일제하의 문학 교육 제도 등 모두 5개 항목에 걸쳐 고찰되었다.
제 2부 우리문학의 새로운 영역과 방향성
새로운 문학의 양식, 하이퍼텍스트 소설의 도전
문학의 장르 개념을 비롯하여 서술 방식이나 태도 등에 분명한 의미가 부여되고 그 의미가 질서정연하게 분화되던 시대이다. 일찍이 문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꿀과 담배)의 양분법으로, 곧 생색과 화식의 예각적인 대비로 자연과 문명의 양 극단을 설명하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 양자가 함께 얼크러지고 그 접촉과 환류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회색지대, 회색 공간 gray zone이 오히려 가치와 생산성을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테면 일과 놀이, 생업과 문화 향수가 동일한 코드로 소통되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놀이)의 생산성을 부정하는 태도가 경직되고 의고적인 것임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나라마다 있는 저 오랜 개미와 베짱이의 민담 가운데, 베짱이의 노래가 재화로 치환되는 발상의 전환이 문화 산업의 모티브를 이룬다거나, 더 직접적으로 영화한 편이 자동차 수식만 대의 수출에 필적한다거나 하는 등속의 논의가 일상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문학의 생산과 소비를 형성하는 두 축으로서 작가와 독자, 창작과 독서의 관계도 그렇다. 서사학narratology에서 영상 언어 visual language로, 디지털 매체의 양방향성interactivity, 비선형성nonlinarity, 통합성audio-visuality등의 개념이 일반화되는 형식으로 문학의 경계가 확대되면서, 종이책만을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남겨두던 고집은 전 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기실 이러한 상황에 따른 도의적 판단이나 주제론적 평가는 새로운 논의를 필요로 하거니와, 바로 지금 서사 구조의 현실이 진출해 있는 그 전방 지점을 부인할 길은 없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가 와해되고 그 소통의 관계가 새로운 모델을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새로운 조명을 필요로 한다. 이 방식으로 만나는 작가와 독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일종의 데이터 제공자로서 일정한 순서로 인터넷상의 웹사이트에 소설의 길을 열어놓지만, 독자는 작가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 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부시의 생각은 1960년경 테오도르 넬슨에 의해 본격적인 실용의 단계로 들어선다. 그는 자료의 저장 또는 자료의 활용이 고정된 장소 개념을 넘어서는, 비선형적 텍스트 개념으로 (하이퍼텍스트hypertext)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것이 문학의 한 형식이 되었을 때 마치 새로운 (의식의 흐름)과도 같이 다양한 가능성, 창의적 상상력을 크게 떨칠 수 있다. 작가와 독자는 근본적으로 지금까지의 문학작품에서와는 다른 창작 문법 아래에 있고, 심지어 작품의 생산은 기본 골격에 해당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의 생산은 기본 골격에 해당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의 감상에 독자가 참여함으로써 바로서 작품을 완성해 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이퍼덱스트 문학은 필연적으로 디지털 매체의 네트워크 기능과 손잡고 있다. 신세대가 중심인 네티즌의 감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용의 수준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뚜렷하다. 최근에 등장한 전자 책 e-book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화 매에가 기업적 경영의 추구하고 있고, 문학 관련자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괄목할 만한 환경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근자에 본격적인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산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주목을 요하는 일이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국내 첫 시도는 정과리 교수를 중심으로 진행된 문화관광부 산하의(새천년 예술) 하이퍼 시 사이트(언어의 새벽, http://eos.mct.go.kr) 프로젝트였다. 100여 명의 시인이 동원된 이 프로젝트는 문자 매체의 지위 하락과 영상 매체의 영향력 확산을 받아들이면서 문자. 영상. 소리의 혼합에 의한, 다시 말하면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의 통합에 의한 통합 매체의 가능성을 시연해 보인 바 있다. 시범적 작업에 대해 신범순 교수가 비판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리고 그 유형의 개념을 소설 양식으로 옮겨간 것이, 최혜실 교수가 주도하여 창작한 하이퍼텍스트 소설 (디지털 구보 2001) 이다. 이 작품을 두고 비판의 언설을 세우자면 바로 이 대목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일부의 격앙이 앞선, 매체 양식의 성격에 관한 포괄적 비판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경우이다.
디지털 시대, 사이버 문화, 하이퍼텍스트 문학, 시대는 이렇게 흘러가고 그것은 이제 인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도저한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제작에 보조 작가로 참여했던 한 젊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콜럼버스의 달걀을 넘어서)가는 길이었다. 일찍이 이인직의 (혈의 누)가 얼었던 문학의 새 길, 그리고 루카치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두고 명명했던 (새로운 서사시)의 길 등이 이 작품의 미래와 더불어 어떻게 문학사적 친족 관계를 형성할지 주목해 볼일이다.
제 3부 동시대 소설의 정론성과 비평의 논리
순수성과 서정성의 문학, 또는 문학적 완전주의
--황순원의 작품 세계와 완결성의 미학
서구 문학에서 괴테를 통하여 우리가 그 좋은 전범을 발견할 수 있거니와, 우리 문학에서는 당대의 작가 가운데 황순원을 일컬어 그 같은 사례에 해당되는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황순원이 우리에게 소중한 작가인 것은 이러한 시대적 난류 속에서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순수성과 완결성의 문학을 가꾸어왔고 작품 속에서 그러한 축적된 세월의 중량이 느껴지고 있음이 주요한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을 보면, 지속적 시간과 함께 하는 문학이라는 소중한 창작 유형과 순차적 확대 변화의 과정이라는 독특한 발전 양상이 한 사람의 작가에게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은 보기 드문 것이며, 그 시간상의 전말이 한국 현대 문학사와 함께 했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황순원의 소설 미학을 통해 우리 문학이 마련하고 있는 하나의 독창적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문학하는 청. 장년층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필자가 (황순원)이란 이름 석자와 마주한 것은 중학교 때의 교과서에 실린(소나기)와 (학)이었다. 이 두 소설은 그저 주어진 문학적 성과가 아니었으며, 단편소설에서 장편소설로 넘어가는 대목에 이르러 황순원의 원숙한 창작 기량이 당대 문학은 물론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도 그 천장 한 부분을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의 문학 속에 인간의 본원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인간의 영혼이 겪는 아픔을 치유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 그런 문학은 바로 황순원 작품 세계의 핵심과 소통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좋은 작가 이전에 좋은 인품을 먼저 만날 수 있는 복을 누리는 셈이다.
작품 (소나기)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작가의 직접 체험이 아니냐는 호사가적 관심을 가졌다. 선생께서 홀연 타계하시고 장례를 준비하는 동안 이를 사회장으로 확대하자, 생전에 23년 6개월 동안 봉직하신 경희대학에 들러 장지로 가자는 등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의 기준은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였고, 결국 가장 조촐하고 품위 있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화려한 영결식을 치렀다. 그렇게 한 시대 문학의 거인은 거인답게 사셨던 것이다.
선생은 일제 병탄의 초엽인 1915년 3월, 평양 부근의 평남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출생했다. 황씨 가문은 조선 초기 저 유명한 황희 정승의 후예로서 향리에서 누대에 걸친 명문이었고 조부께서 조선의 참봉을 지내었으니 만약 지금이 조선시대라면 선생은 큰 갓에 도포를 입고 다녔을 법하였다. 1930년에 선생은 시를 쓰기 시작해서 단편소설 작가로 자기를 확립했고, 다시 장편소설 작가로 발전해 간 이력을 보여준다. 선생은 소설 이외의 잡문을 쓰지 않기고 유명하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에서이다. 그 신념으로 황순원 문학은 1992년9월 일흔여덟의 노경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시상으로 (산책길에서.1)등 여덟 편의 시를 발표하는 데까지 달려갔다.
황순원의 첫 장편[별과 같이 살다]가 간행된 것은 6.25 동란이 발발하기 넉 달 전인 1950년 2월이며, 우리가 여기서 주목의 대상으로 하는 [카인의 후예]는 동란 이듬해인 1954년 12월에 간행되었다. [카인의 후예]는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5회까지 연재하고 이 잡지의 폐간으로 중단됐으며 나머지 부분은 따로 써두었다가 함께 묶었다. [카인의 후예]는 토지 개혁을 배경으로, 그 와중에 숱한 인간관계의 파탈과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것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가문을 바탕으로 생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축조되었다는 측면에서 문학적 특성과 장점을 반영하고 있다. 내용 중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변동하는 새 사회의 내막을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그 시대상이 이들의 사랑을 한층 절실하게 하는 짜임새 있는 구성 기법을 사용한 셈이다. 이 두 줄기의 조화로운 결합이 이 소설을 1950년대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밀어 올리는 힘이었다. 소설의 결말로 보자면, 이 이야기는 아직 다하지 못한 전개를 남겨놓고 있어서 그 속편이 씌어졌음직도 하다. 그런데 그 속편이란 바로 다름 아닌, 그 속편이 씌어졌음직도 하다. 그런데 그 속편이란 바로 다름 아닌,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해당한다. 단절과 대립의 역사, 고난과 통한의 분단사를 꾸려가고 있는 동시대 우리 민족 구성원이 모두[카인의 후예]라는 호칭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것이다.
황순원의 문학은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과 순수성,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출발했고 이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지켰다. 그가 일제하에서 읽혀지지도, 출간되지도 않는 작품을 은밀하게 쓰면서 모국어를 지킨 일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그의 작품이 배경으로 되어 있는 상황의 가열함 속에서도 진실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암중모색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며, 문학사에서 그를 낭만적 휴머니스트로 기록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자기 세계를 풍성하고 밀도 있게 제작함으로써 깊은 감동을 남기고 있는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문학사에 의미 있고 돌올한 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현대사의 다기한 부침을 겪어오는 가운데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우뚝 서 있는 이 작가에게 우리가 보내는 신뢰의 다른 이름이요 형상이기도 하다.
문학의 숲과 나무의 일부를 요약 정리 해 봤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창작하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근대적 문학 제도의 형성
다른 여러 나라의 문학, 곧 세계문학의 제도와 비교 검토될 수 있도록 한국문학의 제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강제적 규정력을 가지게 된다. 근대를 공통적으로 내세운 만큼, 근대의 성격문제와 근대 문학의 기점 문제를 선취적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으며, 근대성의 시각에 의거하여 몇 가지 항목별로 근대적 문학 제도를 고찰해 나가야 할 형편이다.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근대 사회와 근대 문학의 형성기를 주된 연구시기로 하고 있으며, 해방 이후의 문학과 문학의 제도 문제는 다른 기회로 그 관심의 유발을 미루어두는 셈이다. 근대적 문학 제도에 관한 각 나라별 언어 영역별 편차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효율적인 비교 검토가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사전 준비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근대성 modernity)이란 용어는 근대의 시대 구분에 따른 논의와 시각에 따른 (현대성)으로 치환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근대성)은 현재 모더니티에 대한 전면적인 성찰이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모더니티 전반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시하는 입장인 반면, (현대성)은 모더니티의 현재적 영향력과 당위성을 부각시키는 입장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용어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의미의 두 측면은 그런 점에서 (당대적 contemporary)이란 용어의 의미와 구별된다. 근대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근대 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살펴보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문학의 외형과 외곽을 구성하는 문학 제도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 역사적 의미의 근대성을 중심으로 논의 할 수밖에 없다. 근대성이란 문자 그대로 근대 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인데, 서구의 경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지리적 발견과 상업의 발전 등 큰 변화들이 일어나는 16세기를 그 출현 시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근대성을 반영하고 있는 근대 사회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1) 경제적 측면: 특권층(신분)이나 특권 단체(동업조합)가 소멸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사회구성원이 됨, (3) 정치적 측면: 개인의 기본인권이 보장되는 입헌의회 정치가 확립되며 국민적 통일을 바탕으로 한 국민국가가 성립됨, (4) 문화적 측면: 문화. 사상.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사상계를 지배하며 과학기술을 생산 과정에 응용함으로써 기아와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 성취됨 등의 특성이 제시되고 있다. 근대 사회의 특성과 근대성의 개념은 구체적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 이전의 사회사적 경과를 중심으로 한 것이며, 특히 서구의 역사 과정에 따른 경험적 중심으로 한 것이며, 특히 서구의 역사 과정에 따른 경험적 사실들을 토대로 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또는 근대성이란 개념 자체가 구체적 사실, 이를테면 문학에 있어 작품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질적 검토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우리의 역사적 현실 가운데서 그 개념의 적용을 문제 삼는 것이 응당한 절차일 수밖에 없다. 주변국 또는 주변 역사의 상황에 맞물려 있는 형편으로서,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은 근대 한일관계의 기원이라거나, 근대와 타자의 문제라는 논의들이 이의 예증에 해당한다. 우리 문학의 근대 및 근대성의 전개와 경과 과정이 일제 치하 식민 시대의 상황을 중요한 시기로 하며 그와 밀접한 상관성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를 한일관계사의 측면에서, 우리의 (근대)는 개항 이후 서수 사조의 도입, 일제의 식민 수탈, 그리고 그 결과로 뒤이은 분단 시대의 전개라는 역사적 실상들을 그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가 표방한 개인적 자각과 자의식보다는 국가적 위기 의식과 공동체적 인식이 더 비중 있게 작용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문학의 근대성을 살펴보는 눈에 있어서는 우리의 시대사적 체험과 그에 걸 맞는 관찰의 방식이 적용되어야 마땅할 것으로 본다. 근대성의 지표를 올바로 설정하기 위해서 제국주의적 담론인 비교문학적 시각과 반제국주의적 담론인 비교문학적 시각과 반제국주의적 담론인 내재적 발전론을 넘어 국제적 시각의 도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 의로의 확장 가능성을 예비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근대 문학의 기점에 대한 논의는 근대성이 문학적으로 반영된 사실을 실제적 역사 과정 속에 정초하는 일이 된다. 좀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근대 이전과 이후 등속의 시대 구분은 그 내용적 의미의 범주화를 구체화된 삶의 영역 가운데 설정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이 (근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특히 문학이라는 특정한 부문에 있어서의 그것은 근대화와 식민지화의 중첩이라는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의 근대적 삶이 극히 혼란스러웠던 만큼 그 구분 자체가 명료한 외양을 보이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러한 측면은 또한 (근대)를 분기점으로 한 문학사의 시대 구분 논의가 다양한 층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로 인해 널리 확산된 논리이다. 식민사관의 극복과 갑오경장 기점설의 비주체성을 극복하고 (언어 의식의 대두)와 같은 형식 문제에까지 시각을 넓힌 장점이 있으나, 문학사 자체 내부의 발생론적 관점보다는 정치. 경제사적 논리를 앞세운 점, 그리하여 작품의 실체가 미처 이에 뒤따르지 못하는 단점을 보여준다. 문학사의 구체적 내용, 특히 (한중록)을 거론하면서 이의를 제기한 김용직이나 한국문학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대안의 부재를 지적한 김주연, 그리고 민족문학론의 큰 틀에서 문제점을 제기한 백낙청과 염무웅의 견해를 주목할 만하다.
영. 정조 시대 소급론의 문제점과 갑오경장 기점론의 타율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로서, 특히 개항을 전후한 사회. 경제적 인식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중 황패강의 경우, 민중 운동의 근대성과 봉건체제의 변화가 근대적 시민 사회로의 변화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역시 실제의 문학작품을 통한 뒷받침에는 무력한 편이다.
임화이래 종래 문학사의 통설에 해당하며 갑오경장의 역사적 성격을 문학의 영역에 연장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근대성의 본지로서 민중 의식, 서민 의식의 성장과 갑오경장의 외면적이고 사대주의적인 개혁의 성격이 불화한 만큼,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는 관점이다. 이는 이 관점의 시발에 해당하는 임화부터 신문학사는 이식문학의 역사라는 논리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반성적 성찰 없이 일치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동시에 이는 우리 고전 문학사에 관한 인식 문학의 역사라는 논리로, 근대화와 서구화를 반성적 성찰 없이 일치시키는 데서 출발한다. 동시에 이는 우리 고전 문학사에 관한 인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문학사적 통시성을 소홀히 하고 있다. 백철과 조연현의 경우는 사조사와 분단사를 중심으로, 우리 문학의 내재적인 계기를 들여다보지 않은 속류 이식문학론 이라 볼 수 있다.
이광수의(무정)이 보여준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그 이전의 문학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은(조선 초유의 양과 질을 지닌 작가)라는 평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작품의 성과만이 아니라 그 작품과 그 작가로 대변되는바 문학다운 문학의 시대가 개막되었다는 판단을 촉발한다. 1910년대를 기점으로 보는 논자들이 작품의 입지 점을 내세운 만큼, 시에 있어서는 대체로 1908년대(소년)의 발간 연대를 선택하고 있다. 근대적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문학, 특히 우리문학 제도의 근대성에 의거한 시대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데 그 의도가 있다.
근대 문학의 기점을 어디에 두든지 간에 구체적인 작품으로 근대성을 드러낸 시가 문학은 개화기 시가에서 시발된다는 것이 그 동안의 일반적인 통설이었다. 이때의 개화기는 대체로 1876년 개항을 기점으로 1894년 갑오경장을 지나 1910년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개화기 시가는(독립신문)의 독립. 애국가류를 비롯하여 가사(개화가사). 시조. 한시 등 전통적 시가 형태와 창가. 신체시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시가 형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당대 간행되었던 신문. 잡지들을 통해 발표되었다. 특히 신체시는 개하기 시가를 대표하는 특징적 양식으로서, 의식적 측면에서 강한 외래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서구 문명의 충격에 의한 사회 개혁의 열의를 담고 있다. 신체시의 계몽주의적 측면, 그리고 형태적으로 새로운 문체적 특성 등은 곧 근대 정신이 우리 문학에 수용되기 시작한 구체적인 범례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개항과 함께 여러 나라의 언어와 문장들이 유입, 수용되었고 그 충격과 주변 여건은 새로운 문체를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신체시는 1910년대 중. 후반에 이르러 다시 새로운 시적 각성을 앞세운 세대들에 의해 보다 발전적 면모를 띤 형태로 변모, 극복되고 본격적인 근대시로서의 성격을 확립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근대적 성격을 반영한다 할지라도 계몽적 목적 의식을 앞세우기보다는 새로운 형식적 틀을 통해 개인의 개성적 반응을 노래한 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소설에 있어서도 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근대 문학의 기점 문제가 근대성을 함의하는 작품의 산출 문제와 조화롭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근대 소설을 논의하는 마당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곧 (신소설)이다. 신소설이 새롭다는 것은 과거의 고대 소설과 내용도 다르고 표현 형태도 다르다는 뜻이다. 이 (새로운)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연구가 곧 근대 개화기 소설 연구이다. 발전기는 (1)이광수의 (무정)으로 대표되는 본격적 근대 소설의 출발, (2)문예지의 등장, (3)경향소설과 카프계열 소설의 출현 등으로 설명된다. 해체기는 문학 후의 1930년대 순수 문학의 시기와 1940년대 문학적 공백기로서, 1930년대의 순수 문학은 일제의 탄압에 대한 자구책으로, 그리고 8.15 해방 이전의 1940년대 문학은 모국어의 멸실과 전면적인 파산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설명되고 있다.
근대 비평의 형성 과정 역시 여러 가지 가치들의 혼재와 논란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근대 비평사의 시대 구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사정인데, 윤병로, 김윤식, 김영민 등 1)개화기 비평 2)근. 현대 문학 초창기 비평 3)프로 문학과 민족주의 문학의 대립기 4)1930년대 이후 모더니즘 문학론 시기로 나누어진다. 근대 비평의 형성은 궁극적으로 근대적 문학작품의 후속 작업으로서 프로 문학 운동의 경우에는 이념적 성격이 문학의 산출을 앞서가는 새로운 현상을 조정하기도 했다. 비록 작품의 실제가 그 이념성을 뒤따르지는 못했지만, 그 원론적 이념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정신은 그것대로 하나의 근대적 정신의 표현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동력으로 하여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는데 유효한 관점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실 (문학 제도)는 동시대의 문학을 형성하는 기반이면서, 동시대의 문학으로부터 그 성격을 규정받는 범주라는 양가적 의미를 갖고 있다. (문학)과 (문학 제도)를 통괄하여 살펴보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며, 이 양자에 대한 연구가 별개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종국에는 하나의 시각으로 통어해 나가는 노력이 없이는 균형 있는 관찰의 성과에 도달하기 어려울 터이다. 그와 같은 노력은 문학사와 사회. 경제사 전체를 통시적으로 조망하며 이들을 상관시키는 큰 작업의 얼개 아래에 있어야하며, 이 발효에서 그처럼 무거운 역할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까닭으로 여기서는 소략하게 우리의 근대적 문학제도의 문제를 (1)작가의 위상과 사회적 지위, (2)문학 형성과 등단 제도, (3)문학적 평가 및 호상 제도, (4)문학 저널리즘으로서의 신문. 잡지, (5)개화기와 일제하의 문학 교육 제도 등 소기의 목적에 도달해 보려 한다.
근대성의 개념과 더불어 우리 근대 문학의 미학적 가치를 검토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 않았다. 근대성 개념의 적용 방향을 칼리네수쿠Calinescu가 구분한 바(사회. 역사적 근대성)에 두고,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 그리고 분단 시대를 예정하는 근대의 시대사적 실상을 문화 및 문학 현상에, 또 문학 제도에 대입해 보는 시도였다. 그러한 까닭으로 여기에서는 개인적 자각과 자의식, 문학의 개별적 가치와 성과보다는 전체적이고 공동체적인 시각을 통시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근대성, 근대적 정신, 근대 문학의 특징적 성격에 연관된 근대적 문학 제도는 작가의 사회적 지위, 문단 형성과 등단 제도, 문학적 평가와 포상 제도, 문학 저널리즘으로서의 신문. 잡지, 개화기와 일제하의 문학 교육 제도 등 모두 5개 항목에 걸쳐 고찰되었다.
제 2부 우리문학의 새로운 영역과 방향성
새로운 문학의 양식, 하이퍼텍스트 소설의 도전
문학의 장르 개념을 비롯하여 서술 방식이나 태도 등에 분명한 의미가 부여되고 그 의미가 질서정연하게 분화되던 시대이다. 일찍이 문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꿀과 담배)의 양분법으로, 곧 생색과 화식의 예각적인 대비로 자연과 문명의 양 극단을 설명하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 양자가 함께 얼크러지고 그 접촉과 환류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회색지대, 회색 공간 gray zone이 오히려 가치와 생산성을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테면 일과 놀이, 생업과 문화 향수가 동일한 코드로 소통되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놀이)의 생산성을 부정하는 태도가 경직되고 의고적인 것임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나라마다 있는 저 오랜 개미와 베짱이의 민담 가운데, 베짱이의 노래가 재화로 치환되는 발상의 전환이 문화 산업의 모티브를 이룬다거나, 더 직접적으로 영화한 편이 자동차 수식만 대의 수출에 필적한다거나 하는 등속의 논의가 일상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문학의 생산과 소비를 형성하는 두 축으로서 작가와 독자, 창작과 독서의 관계도 그렇다. 서사학narratology에서 영상 언어 visual language로, 디지털 매체의 양방향성interactivity, 비선형성nonlinarity, 통합성audio-visuality등의 개념이 일반화되는 형식으로 문학의 경계가 확대되면서, 종이책만을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남겨두던 고집은 전 시대의 유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기실 이러한 상황에 따른 도의적 판단이나 주제론적 평가는 새로운 논의를 필요로 하거니와, 바로 지금 서사 구조의 현실이 진출해 있는 그 전방 지점을 부인할 길은 없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경계가 와해되고 그 소통의 관계가 새로운 모델을 정립한다는 측면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새로운 조명을 필요로 한다. 이 방식으로 만나는 작가와 독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에서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작가는 일종의 데이터 제공자로서 일정한 순서로 인터넷상의 웹사이트에 소설의 길을 열어놓지만, 독자는 작가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 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부시의 생각은 1960년경 테오도르 넬슨에 의해 본격적인 실용의 단계로 들어선다. 그는 자료의 저장 또는 자료의 활용이 고정된 장소 개념을 넘어서는, 비선형적 텍스트 개념으로 (하이퍼텍스트hypertext)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것이 문학의 한 형식이 되었을 때 마치 새로운 (의식의 흐름)과도 같이 다양한 가능성, 창의적 상상력을 크게 떨칠 수 있다. 작가와 독자는 근본적으로 지금까지의 문학작품에서와는 다른 창작 문법 아래에 있고, 심지어 작품의 생산은 기본 골격에 해당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의 생산은 기본 골격에 해당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작품의 감상에 독자가 참여함으로써 바로서 작품을 완성해 가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이퍼덱스트 문학은 필연적으로 디지털 매체의 네트워크 기능과 손잡고 있다. 신세대가 중심인 네티즌의 감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용의 수준에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뚜렷하다. 최근에 등장한 전자 책 e-book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화 매에가 기업적 경영의 추구하고 있고, 문학 관련자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괄목할 만한 환경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근자에 본격적인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산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주목을 요하는 일이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국내 첫 시도는 정과리 교수를 중심으로 진행된 문화관광부 산하의(새천년 예술) 하이퍼 시 사이트(언어의 새벽, http://eos.mct.go.kr) 프로젝트였다. 100여 명의 시인이 동원된 이 프로젝트는 문자 매체의 지위 하락과 영상 매체의 영향력 확산을 받아들이면서 문자. 영상. 소리의 혼합에 의한, 다시 말하면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의 통합에 의한 통합 매체의 가능성을 시연해 보인 바 있다. 시범적 작업에 대해 신범순 교수가 비판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리고 그 유형의 개념을 소설 양식으로 옮겨간 것이, 최혜실 교수가 주도하여 창작한 하이퍼텍스트 소설 (디지털 구보 2001) 이다. 이 작품을 두고 비판의 언설을 세우자면 바로 이 대목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일부의 격앙이 앞선, 매체 양식의 성격에 관한 포괄적 비판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경우이다.
디지털 시대, 사이버 문화, 하이퍼텍스트 문학, 시대는 이렇게 흘러가고 그것은 이제 인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도저한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작품의 제작에 보조 작가로 참여했던 한 젊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콜럼버스의 달걀을 넘어서)가는 길이었다. 일찍이 이인직의 (혈의 누)가 얼었던 문학의 새 길, 그리고 루카치가 도스토예프스키를 두고 명명했던 (새로운 서사시)의 길 등이 이 작품의 미래와 더불어 어떻게 문학사적 친족 관계를 형성할지 주목해 볼일이다.
제 3부 동시대 소설의 정론성과 비평의 논리
순수성과 서정성의 문학, 또는 문학적 완전주의
--황순원의 작품 세계와 완결성의 미학
서구 문학에서 괴테를 통하여 우리가 그 좋은 전범을 발견할 수 있거니와, 우리 문학에서는 당대의 작가 가운데 황순원을 일컬어 그 같은 사례에 해당되는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황순원이 우리에게 소중한 작가인 것은 이러한 시대적 난류 속에서 흔들림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순수성과 완결성의 문학을 가꾸어왔고 작품 속에서 그러한 축적된 세월의 중량이 느껴지고 있음이 주요한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을 보면, 지속적 시간과 함께 하는 문학이라는 소중한 창작 유형과 순차적 확대 변화의 과정이라는 독특한 발전 양상이 한 사람의 작가에게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은 보기 드문 것이며, 그 시간상의 전말이 한국 현대 문학사와 함께 했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황순원의 소설 미학을 통해 우리 문학이 마련하고 있는 하나의 독창적 성과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문학하는 청. 장년층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필자가 (황순원)이란 이름 석자와 마주한 것은 중학교 때의 교과서에 실린(소나기)와 (학)이었다. 이 두 소설은 그저 주어진 문학적 성과가 아니었으며, 단편소설에서 장편소설로 넘어가는 대목에 이르러 황순원의 원숙한 창작 기량이 당대 문학은 물론 작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도 그 천장 한 부분을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분의 문학 속에 인간의 본원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인간의 영혼이 겪는 아픔을 치유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 그런 문학은 바로 황순원 작품 세계의 핵심과 소통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좋은 작가 이전에 좋은 인품을 먼저 만날 수 있는 복을 누리는 셈이다.
작품 (소나기)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작가의 직접 체험이 아니냐는 호사가적 관심을 가졌다. 선생께서 홀연 타계하시고 장례를 준비하는 동안 이를 사회장으로 확대하자, 생전에 23년 6개월 동안 봉직하신 경희대학에 들러 장지로 가자는 등 여러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의 기준은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였고, 결국 가장 조촐하고 품위 있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화려한 영결식을 치렀다. 그렇게 한 시대 문학의 거인은 거인답게 사셨던 것이다.
선생은 일제 병탄의 초엽인 1915년 3월, 평양 부근의 평남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출생했다. 황씨 가문은 조선 초기 저 유명한 황희 정승의 후예로서 향리에서 누대에 걸친 명문이었고 조부께서 조선의 참봉을 지내었으니 만약 지금이 조선시대라면 선생은 큰 갓에 도포를 입고 다녔을 법하였다. 1930년에 선생은 시를 쓰기 시작해서 단편소설 작가로 자기를 확립했고, 다시 장편소설 작가로 발전해 간 이력을 보여준다. 선생은 소설 이외의 잡문을 쓰지 않기고 유명하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에서이다. 그 신념으로 황순원 문학은 1992년9월 일흔여덟의 노경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시상으로 (산책길에서.1)등 여덟 편의 시를 발표하는 데까지 달려갔다.
황순원의 첫 장편[별과 같이 살다]가 간행된 것은 6.25 동란이 발발하기 넉 달 전인 1950년 2월이며, 우리가 여기서 주목의 대상으로 하는 [카인의 후예]는 동란 이듬해인 1954년 12월에 간행되었다. [카인의 후예]는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5회까지 연재하고 이 잡지의 폐간으로 중단됐으며 나머지 부분은 따로 써두었다가 함께 묶었다. [카인의 후예]는 토지 개혁을 배경으로, 그 와중에 숱한 인간관계의 파탈과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것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가문을 바탕으로 생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축조되었다는 측면에서 문학적 특성과 장점을 반영하고 있다. 내용 중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변동하는 새 사회의 내막을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그 시대상이 이들의 사랑을 한층 절실하게 하는 짜임새 있는 구성 기법을 사용한 셈이다. 이 두 줄기의 조화로운 결합이 이 소설을 1950년대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밀어 올리는 힘이었다. 소설의 결말로 보자면, 이 이야기는 아직 다하지 못한 전개를 남겨놓고 있어서 그 속편이 씌어졌음직도 하다. 그런데 그 속편이란 바로 다름 아닌, 그 속편이 씌어졌음직도 하다. 그런데 그 속편이란 바로 다름 아닌,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해당한다. 단절과 대립의 역사, 고난과 통한의 분단사를 꾸려가고 있는 동시대 우리 민족 구성원이 모두[카인의 후예]라는 호칭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는 것이다.
황순원의 문학은 인간의 정신적 아름다움과 순수성,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출발했고 이를 흔들림 없이 끝까지 지켰다. 그가 일제하에서 읽혀지지도, 출간되지도 않는 작품을 은밀하게 쓰면서 모국어를 지킨 일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그의 작품이 배경으로 되어 있는 상황의 가열함 속에서도 진실된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암중모색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며, 문학사에서 그를 낭만적 휴머니스트로 기록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자기 세계를 풍성하고 밀도 있게 제작함으로써 깊은 감동을 남기고 있는 황순원의 작품들은 한국문학사에 의미 있고 돌올한 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현대사의 다기한 부침을 겪어오는 가운데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우뚝 서 있는 이 작가에게 우리가 보내는 신뢰의 다른 이름이요 형상이기도 하다.
문학의 숲과 나무의 일부를 요약 정리 해 봤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창작하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 문학의 숲과 나무 | 길버트 한 | 2003.03.28 | 669 |
| 11 | 미주문협 문학토방 활동. | 길버트 한 | 2003.03.11 | 567 |
| 10 | 설화 이야기 | 길버트 한 | 2003.02.07 | 541 |
| 9 | 북한문학의 이해 2 | 길버트 한 | 2003.01.29 | 380 |
| 8 | 김수영의 시 두 편 | 길버트 한 | 2002.12.26 | 426 |
| 7 | 잊지못할 배움의 시간 | 길버트 한 | 2002.11.23 | 278 |
| 6 | 꽃과 어둠의 산조 | 길버트 한 | 2002.11.19 | 528 |
| 5 | 소설이란 무엇인가 | 길버트 한 | 2002.11.18 | 585 |
| 4 | 몸 | 길버트 한 | 2002.11.14 | 326 |
| 3 | 서정윤, 정호승, 이해인 시집을 읽고 | 길버트 한 | 2002.11.14 | 441 |
| 2 | 시란 무엇인가 | 길버트 한 | 2002.11.13 | 968 |
| 1 | 현대시에서 생명사상이 어떻게 구현되었나 | 길버트 한 | 2002.11.13 | 3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