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이야기

2003.02.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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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오랑세오녀

신라 8대 임금 아달라(阿達羅) 왕 때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 위에 홀연히 바위 하나가 나타나자, 연오랑은 이것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바위를 타고 온 이 사람을 왕으로 모셨다. 한편 아내인 세오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궁금하여 바다에 나가 보았다.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자기도 그 바위에 올라탔다. 그리하여 세오녀도 일본으로 건너가 남편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신라 땅을 떠나 뒤부터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왕은 천문을 맡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하는 "해와 달의 정(精)이 우리 나라에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곧 사람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연오랑 부부를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오랑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홀연히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아내가 짠, 가는 명주를 줄 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하면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할 것이요." 라고 말하며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그 비단을 가지고 와서 하늘에 제사했더니 과연 해와 달이 옛날같이 빛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명주를 국보로 모시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했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이라고 하였다.

2.두견새(杜鵑) 설화

촉(蜀-지금의 사천성)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문산이라는 산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이상히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물으니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 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온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 모두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고 정권을 휘둘렀다. 그때에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 일을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앉아 바깥일은 전연 모르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별령은 마음놓고 모든 공작을 다하여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 나와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뒷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라고도 하고 두우(杜宇)라고도 하며, 귀촉도(歸蜀途)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넋이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하였다.
두견새의 다른 이름들 : 귀촉도, 망제혼, 소쩍새, 불여귀, 자규

3. 소쩍새와 접동새 전설

두견새는 귀촉도라고 하기도 하고 소쩍새라고도 하는데, 거기에는 '솥이 적다'에서 유래된 가난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장만영의 <소쩍새>는 이를 시화(詩化)했고, 오영수의 <소쩍새>는 이를 소설화한 것이다. 망제혼 전설을 소재로 하여 서정주는 <귀촉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또 다른 것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소위 <접동새 전설>인데, 이를 바탕으로 김소월은 <접동새>라는 시를 썼다.
옛날 어느 곳에 10남매가 부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의붓어미가 들어왔는데, 의붓어미는 아이들을 심하게 구박하였다. 큰누이가 나이가 들자 이웃 부잣집 도령과 혼인하여 많은 예물을 받게 되었다. 이를 시기한 의붓어미가 그녀를 친모가 쓰던 장롱에 가두었다가 불에 태워 죽였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남은 재를 헤치자 거기서 접동새 한 마리가 날아올라 갔다. 죽은 누이의 화신인 것이다. 관가에서 이를 알고 의붓어미를 잡아다 불에 태워 죽였는데, 재 속에서 까마귀가 나왔다. 접동새는 동생들이 보고 싶었지만 까마귀가 무서워 밤에만 와서 울었다.

4. 미추왕과 죽엽군

제13대 미추왕은 김알지의 7대 손이다. 대대로 벼슬이 높고 성덕이 있으므로 점해왕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재위 23년만에 죽었으며 흥륜사 동쪽에 능을 정했다. 14대 임금 유리왕 때, 이서국 사람들이 서울 금성을 공격해 왔다. 신라 쪽에서도 방어에 나섰으나 오래 버티어 낼 수 없었다. 그때 홀연히 어디에서 온 지도 알 수 없는 신기한 병정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지원해 왔다. 그 신기한 병졸들은 모두 댓 잎사귀를 귀에 꽂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군과 힘을 합하여 적군을 쳐부수었다. 적군들이 물러간 뒤 그 신기한 병정들은 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미추왕릉 앞에 무수한 댓 잎사귀가 쌓여 있는 것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귀에 댓 잎사귀를 꽂고 왔던 그 신기한 병정들이 미추왕 혼령의 공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 미추왕릉을 죽현릉(댓잎 꽂은 병정들이 나타난 능)이라 불렀다.
36대 임금 혜공왕 15년(779) 4월 어느 날,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죽현릉 쪽으로 불어가고 있었다. 그 회오리바람 속에는 한 늠름한 장군 차림을 하고 준마에 올라앉은 사람과 그 종자로 보이는, 역시 갑옷을 입고 병기를 갖춘 사람 40여 명이 휩싸여 허공에 떠가고 있었다. 그들을 휩싼 회오리바람이 죽현릉에 이르자 그들은 죽현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장군 차림의 사람과 그 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죽현릉 속으로 들어가고 난 잠깐 뒤에 능 속에서는 을씨년스런 깊은 울음소리가 울리는 듯하고, 또는 뭔가 호소하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은 이러한 내용의 것이었다.
"신은 평생에 나라를 위해 역사의 한 시대를 도왔고, 환난을 구제했으며, 분단해 있던 국토를 통일시킨, 이러한 공훈을 이루었습니다. 지금 죽어 혼백이 되어 있어도 이 나라를 굽오 돌보아 재앙을 물리치고 환난을 구제해 가려는 마음은 잠시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경술년에 신의 자손이 죄 없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군신들이 나의 공훈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제 신은 차라리 이곳을 떠나 멀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리고 다시는 나라를 위해 애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왕께선 부디 신의 옮겨감을 허락해 주소서." 미추왕의 혼령이 대답했다. "나와 그대가 이 나라를 돌보지 않는다면 저 백성들은 어찌하겠소? 그대는 전과 다름없이 다시 힘쓰도록 하오." 세 번을 청했으나 세 번 다 미추왕의 혼령은 허락하지 않는가 보았다. 그러자 회오리바람은 김유신 장군의 무덤으로 되 불어 갔다. 40여 명의 종자를 데리고 회오리바람을 몰아 미추왕릉을 다녀간 그 장군 차림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김유신 장군의 혼령이었다. 당시의 임금 혜공왕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곧 공신 김경신을 시켜 김유신 장군의 묘소에 나아가 사과를 드리게 하고, 다시 장군을 위해 공덕보전 30결을 취선사(경주에 있던 절)에 내리어 장군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취선사는 바로 김유신 장군의 평양 토병이 있은 뒤에 복을 비느라 세워진 것으로 장군과는 연고 있는 절이었기 때문이다.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던들 김장군의 혼령이 품었던 노여움을 막을 길이 없었을 테니 왕의 나라를 보호하는 공덕은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나라 사람들은 왕의 덕을 감사히 여기고서 3산과 같은 등급의 제사를 왕에게도 지내고, 서차를 오릉의 위에 놓아 대묘(大廟)라 일컬었다.

5. 선덕여왕의 지혜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따님으로 부왕을 이어 당 태종 6년(632년)에 즉위했다. 이 여왕에겐 나라를 다스린 지 15년 동안에 앞일을 예지한 경우가 세 가지가 있었다. 당나라 태종이 홍색, 자색, 백색 이 삼색의 모란꽃을 그린 그림과 그 씨앗 석 되를 보내 왔다.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을 보고 말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이다."
그 씨앗을 궁전 뜰에 심어 보게 했다. 꽃이 피어서 지기까지 과연 향기라곤 없어 선덕여왕의 예언은 맞았다. 이것이 세 가지 예지한 것 중의 그 첫째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영묘사의 옥문지에 난데없는 개구리 떼가 모여들어 삼사 일을 두고 울어댔다. 나라 사람들이 해괴한 일이라 생각하여 왕에게 여쭈었다. 여왕은 옥문지에 개구리가 모여 울어댄다는 얘기를 듣고서 급히 각간 알천과 필탄 등에게 명해 군사 2천 명을 뽑아 서울의 서쪽 교외로 달려가도록 했다. 가서 여근곡이란 골을 물어 찾아가 보면 거기에 반드시 적병이 잠복해 있을 테니 습격해 죽이도록 명령했다. 두 각간이 왕명을 받고서 각각 1천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로 달려가서 물어보았더니 그곳 부산 기슭에 과연 여근곡이란 골이 있고, 거기에 백제 군사 5백여 명이 잠복해 있기에 모두 잡아 죽였다. 그리고 백제의 장군 우소란 자가 남산령 바위 위에 숨어 있는 것을 포위하고 사살하고, 또 백제군의 후속부대 1천3백 명이 들이닥치는 것을 공격하여 남김없이 죽였다. 이것이 선덕여왕의 그 세 가지 예지한 것 중의 둘째 것이다.
그 셋째의 것은 왕이 아주 건강할 때인데 그 신하들을 보고서 나는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죽게 되었으니 장사를 도리천 안에 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신하들은 그 도리천이 어느 곳인지를 몰라 왕에게 물었더니 왕은 그것은 낭산의 남쪽 비탈이라고 했다. 왕이 예언했던 그날이 되자 왕은 과연 죽었다. 신하들은 남쪽 비탈에 장사지냈다. 그로부터 십여년 뒤 문무대왕은 선덕여왕의 능 아래에다 사천왕사를 창건했다. 불경에서 사천왕천은 수미산 중턱에 있고 그 위에 바로 도리천이 있다고 한 말을 상기하고서 그제야 선덕여왕의 성령함을 알았다. 선덕여왕이 생존해 있을 때 신하들이 모란꽃과 개구리에 관한 예언을 두고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는지를 물었더니, 왕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꽃을 그린 그림에 나비가 함께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으로써 그 꽃의 향기 없음을 알았다. 그것은 곧 당나라의 임금이 내가 여자로서 짝이 없이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그리고 개구리는 그 눈이 불거져 나와 성난 형상으로 생겨 있어 그것은 병사의 상징이다. 옥문이란 곧 여근(여자 생식기)이요 여자는 음과 양 중에 음에 속하고, 그 빛깔은 흰 것이고, 흰 빛깔은 서쪽을 상징한다. 그래서 적의 병사가 서쪽에 있음을 알았고, 남근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는 법이라 그러므로 그들을 쉽게 잡을 수 있음을 알았다." 이 설명을 듣고 뭇 신하들은 모두 그 지혜에 감복했다.

6.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地下國大敵退治說話)

옛날 아귀 귀신이라는 큰 도둑이 있었다. 그는 종종 이 세상에 나와서 세상을 요란하게 하고 예쁜 여자를 도적질해 가기도 하였다. 어떤 때 아귀 귀신은 나라의 세 공주를 한꺼번에 도적질하여 갔다. 그래서 왕은 모든 신하를 모아 놓고 귀신 잡을 계획을 물어보았으나 신기한 법을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의 무신(무신)이 나와 말하기를, "임금님, 신의 집은 대대로 국 록을 먹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의 목숨을 다하여 국 은의 만에 일이라도 갚고자 합니다. 모쪼록 신으로 하여금 그 귀신을 퇴치케 하여 주십시오. 반드시 세 공주님을 구하여 오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은 그것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누구든지 공주를 구하여 오는 사람에게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을 줄 것이다." 고 하였다. 무신은 몇 명의 부하를 데리고 아귀 귀신의 소굴을 찾아 출발하였다. 그는 수년 동안 천하의 방방곡곡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귀신의 소굴이 어느 곳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는 어떤 산모퉁이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꿈을 꾸었다. 한 사람의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이다. 네가 찾아다니는 아귀 귀신의 소굴은 이 산의 저쪽에 있는 산의 또 저쪽에 있는 산중에 잇다. 그 산으로 가면 너는 이상한 바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바위를 들고 보면, 겨우 한 사람의 몸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을 것이다. 그 구멍으로 내려가면 구멍은 점점 커지고 구멍 밑에서는 별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가 즉 아귀 귀신의 나라다." 하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신은 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 산을 넘고 골을 지나 아귀 귀신 있는 산까지 왔다. 정말 이상한 바위를 발견하여 그것을 들고 보니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무신은 부하들에게 명하여 튼튼한 새끼를 꼬고 한 개의 광주리를 얽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누가 먼저 광주리를 타고 내려가서 아귀 귀신의 동정을 살피고 오겠느냐?" 고 하였으나 한 사람도 응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부하 한 사람에게 내려가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만일 중도에서 위험이 있거든 줄을 흔들어라. 그러면 줄을 끌어올려 주마." 하였다. 그 자는 지상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서 줄을 흔들었다. 두려운 까닭이었다. 다음 자는 절반이나 간 곳에서 흔들었다. 또 그 다음 자는 거의 다 내려간 곳에서 줄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할 수 없이 무신 자신이 내려가기로 했다. 그는 무사히 밑바닥까지 이르렀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넓고 훌륭한 세계를 보았다. 그 중에 제일 훌륭한 집이 귀신의 집 같았다. 그는 곧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고 귀신의 집 옆에 있는 우물가의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모양을 보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한 예쁜 색시가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우물에 물을 길러 귀신의 집에서 나왔다. 가까이 왔을 때에 그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 공주 중의 한 사람이었다. 공주가 물을 한 동이 길어서 그것을 이고자 동이의 두 귀를 잡았을 때 무신은 나뭇잎을 한줌 훑어서 공주의 물동이 위에 떨어뜨렸다. 공주는, '바람도 몹시 분다." 하면서 길었던 물을 버리고 다시 길었다. 다시 길었을 때 그는 다시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세 번만에 공주는, "이상도 하다. 오늘은 바람도 없는데." 하면서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세상 사람이 있었다. "당신은 보아하니 세상 사람인 듯한데 어째서 이런 도적의 굴에 들어왔습니까?" 하고 공주는 물었다. 무신은 나무에서 내려와 그간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나 귀신의 집 문전에는 사나운 문지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공주는 걱정하였다. 무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젊었을 때에 어떤 도사에게 배운 약간의 술법이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수박이 될 터이니 이렇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무신은 약 십 보쯤 공중으로 뛰었다. 그러자 그는 한 개의 수박이 되었다. 공주는 그것을 치맛자락에 싸서 무난히 귀신 집안에 들어가 선반 위에 올려 두었다. 문지기는 공주의 치맛자락을 조사하여 보았으나 수박이므로 별로 의심치 않고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아귀 귀신은, "사람 냄새가 나니 웬일이냐?" 고 야단을 치며 공주들을 추궁하였다. 공주들은 태연하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마 병중에 계시므로 마음으로 그렇게 느끼시는 것이지요." 하고 속였다. 아귀 귀신은 그때 마침 몸이 조금 편치 못하여 누워있던 중이었다. 공주들은 독한 술을 몇 독 만들어 두고 귀신의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 수일 후에 공주들은 독한 술과 세 마리 돼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이고, 아귀 귀신을 청하여, "대감의 병환이 나았으므로 우리들은 쾌차를 축하하기 위하여 이렇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오늘은 우리들과 함께 재미있게 놉시다." 하면서 전에 없던 갖은 아양을 피우므로, 귀신은 속으로, '이제는 내 말을 들을 모양인가보다.' 하고 좋아서 세 독의 독한 술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또 공주들은 아귀의 머리의 이까지 잡아 주었으므로 아귀는 더욱 마음을 놓고, 오늘은 그대들이 나를 위해 잔치를 벌렸으니 그 대신 나는 그대들의 소원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기로 하겠다." 고 했다. 공주들은 매우 기뻐서, "저희들에게는 별로 소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대감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분인데 그래도 죽는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귀신은 방심했던 터이라 의심 없이 이렇게 답하였다. "내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죽는 수가 있고 말고. 내 옆구리 양쪽에는 두 개씩의 비늘이 있는데 그것을 떼어버리면 나는 죽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뗄 놈이 세상에는 없단 말이야, 하." 아귀 귀신은 대취하여 코를 골며 깊이 잠들었을 때, 한 공주는 귀신이 평생에 사랑하던 허리에 찬칼을 빼려고 손을 칼자루에 댔다. 별안간 칼은 쟁쟁 울기 시작하였다. 공주는 왼발을 구르며 호령하였다. 그러자, 칼은 울기를 멈추었다. 공주는 귀신의 좌우 옆구리에 붙은 비늘 네 개를 칼로 떼었다. 그랬더니 귀신의 머리가 떨어져 천장에 뛰어 붙었다가 다시 목에 붙으려고 하였다. 그때에 다른 공주가 예비하였던 매운 재를 급히 목에 뿌렸으므로 목은 다시 붙지 못하고, 아귀 귀신의 머리는 눈물을 흘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귀신은 죽었다. 공주들과 무신은 수일만에 구멍 있는 곳까지 왔다. 광주리는 약속대로 있었다. '공주님들 부터 구해 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한 무신은 공주를 한 사람 한 사람씩 광주리에 태워서 줄을 흔들었다. 위에서 기다리던 부하들은 좋아 라고 줄을 당겨 올렸다. 세 사람의 공주들을 구해 올린 부하들은 최후의 광주리를 내려보내 주지를 않았다. 뿐만 아니라 광주리 대신 큰 바위를 굴려 떨어뜨렸다. 악한 부하들은 공주들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왕 앞에 나아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벌렸다. 왕은 그들이 공주들을 구하여 왔다고 만 믿은 까닭이었다. 무신은 벼락치듯 떨어지는 바위에 놀라 몸을 피하였으므로 겨우 죽기는 면하였으나 구멍으로 나갈 방법이 무신에게는 없었다. 오직 탄식만 하고 있을 때, 전에 현몽 하였던 노인이 다시 나타나 말 한 필을 주며, '이 말을 타면 땅 위에 올라갈 수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무신은 그 말을 타고 한번 채찍질하였다. 말은 한번 울음과 함께 비조 같이 날아 수십 길이나 되는 구멍을 단번에 뛰어올랐다. 말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신과 작별하고 다시 구멍 속으로 뛰어들어가다가 불쌍하게도 목이 부러져 죽었다. 공주들은 수년만에 처음으로 부모와 만났으므로 너무 기쁜 중에 모든 것을 잊어 버렸다. 임금은 간악한 자들 중의 괴수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딸을 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간악한 자는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때에 한 사람의 무신이 왕 앞으로 나왔다. 그는 정말로 공주들을 구한 무신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임금은 간악한 자들을 목베고 막내딸을 무신과 혼인시켰다. 그 뒤로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은 평안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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