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배움의 시간
2002.11.23 11:42
지난 11월 김 재홍 교수님과 보낸 시간들을 살짝 적어 봅니다. 회상하면 할수록 제게는 좋은 말씀들이 기억납니다. 첫날 도착하셔서 3일간의 여정과 함께 제가 곁에서 느꼈던 교수님의 모습을 여행스케치처럼 적어 가렵니다.
피곤하신 모습으로 그랜드 호텔에 도착하셨고 저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갔는데 교수님과 문금숙 시인과 이제인시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안개와 함께 조금은 눅눅한 하루였어요.제 차로 산타모니카 해안을 따라 운전하면서 바닷가에 떨어지는 저녁 노을은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랍스터와 왕게발로 든든한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교수님은 놀라는 것 하나가 이곳의 갈매기는 어찌 저리도 큰지 의아해 하셨는데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보면서 엄청난 양에 교수님은 놀라셨지만 혹 우리가 갈매기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30여년 되시는 교수님의 재직시절을 돌아 보시며 좋은 이야기를 구름처럼 피웠고 멋진 시암송과 공부하는 자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등불삼아 정진하라"는 말씀이 기억 납니다. 그 밖에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 한국문단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시간은 소리없이 뒷굼치를 들고 지나갔고 파도소리는 창가에 부딫치며 스르르 물러 갔다 돌아오고, 조명에 비치는 갈매기의 하얀 날개짓은 탄성을 내게 했어요.
갈매기도 저를 잡고, 저도 바다가 좋은데 세분의 등떠밀림으로 다시 로스엔젤레스의 다운타운으로 들어 왔어요. 오다가 산타 모니카 해변의 유원지를 보았습니다. 이곳의 이민자들은 고향 생각이 나면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와서 눈물도 흘려 보고 소리없는 망향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가끔 그랬어요. 미끄러지듯 다운타운으로 들어와서 보나밴처 호텔 35층에 있는 스카이 라운지로 올라 갔어요. 360도로 회전하기에 오색 불빛이 뒤덮힌 다운타운의 건물과 시가지 전경을바라보았어요. 사실 저도 그 호텔은 처음이었어요. 낭만도 연인도 없어서일까요? 총각 때는 헐리우드 스카이 라운지를 주로 가는데 다운타운의 그 호텔은 또다른 분위기였어요. 칵테일을 한잔씩 하면서 한용운님의 시와 함께 하는 시간, 교수님의 암송실력은 정말 감동과 감탄하게 했습니다. 문단의 현 주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주에서 바라보는시각의 차이를 느끼면서 교수님의 열정을 솟아 부으신 '시와 시학사'를 보면서 문학인의 한사람으로 정말 문학에도 정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난무해 있는 단체에 휩쓸리지 말고 좋은 스승을 만나 올바른 길로 가라는 말씀을 새기며 별과 함께하던 밤은 이렇게 지나가며 1시 30분경에 교수님의 숙소인 그랜드 호텔로 돌아왔고, 저는 어둡지만은 않은 밤을 달려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날.
교수님은 헌팅톤 라이브러리에 가시고 저는 가게에 있다가 오후 6시 라디오코리아 도산홀에서 재미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시문학 강연회를 했습니다. 문인들을 3시간 동안 꼼짝 못하게 앉여 놓으시고 열강을 하셨어요. 누구 한 사람 자리를 뜨지 않고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듣는 진지한, 대단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학기 '시론'을 집약해서 다시 듣는듯 했어요. 강의가 끝나고 '싸리골'에서 모임이 있었지만 저는 참석치 못했어요. 이곳 원로시인들과 중진 시인들이 함께 하는 자리로 저는 감히 같이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젊은? 시인들과 다른 곳에서 한잔?씩 했습니다.
셋째날.
한식당 '용수산'에서 교수님의 시창작 교실이 열렸어요. 저는 마찬가지로 생계의 사슬을 오후 늦게서야 풀고 마라톤 교실에 들어 갔어요. 참 놀라웠어요. 흩으러지는 모습 없이 진지하신 모습에 저는 듣기만 했어요. 교수님의 제자이신 임혜신씨는 플로리다에 거주하시는데 교수님을 뵈려고 비행기로 6시간 이상을 달려 오셨어요. 저도 그런 은사님이 계셔서 만사 제쳐두고 먼 걸음도 한걸음에 달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교수님도, 임혜신님도 두 분 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행사가 9시에 끝이 나고 다른 사람들의 애프터를 뿌리치고 교수님과 문금숙님, 임혜신님과 이제인님과 저는 '로젠켈라' 노래방 겸 식당에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하신다고 해서 적잖히 놀랐습니다. 문학을 위해 사재를 털어 아직도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과연 저럴 수 있을까, 글을 쓴다고 혹여 헛된 금전욕과 허망한 공명심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 많이도 혼이 나고 격려와 위로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정진하고 또 정진 하라는 말씀. "살을 뜯어 종이 삼고, 뼈를 골라 붓을 삼아 피로서 글을 쓰라"는 말씀들을 때는 숙연해졌습니다.
교수님은 등대라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항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불을 밝혀 주시는 교수님을 보며 각오가 새로웠고, 제가 어떤 것이 필요했었는지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노래도 무척 잘하십니다. 문금숙님이 공부는 언제하고 노래는 언제하셨냐고 할 말큼 대단한 열창이셨어요. 저도 몇 곡 하면서 교수님과 어깨동무도 하고 합창도 했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조금 거나하게 드셨지만 참 좋았습니다. 제게는 잊지 못할 시간들로 하나같이 목걸이에 걸 수 있는 보석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동안 문학세계의 거목으로 남으셔서 이제 커 나가는 저와 같은 새싹들의 보호자가 되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글을 올리면서도 새삼 그날을 떠 올리며 글 쓰는 자세도 고쳐보고 마음도 다 잡아 봅니다.
피곤하신 모습으로 그랜드 호텔에 도착하셨고 저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갔는데 교수님과 문금숙 시인과 이제인시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안개와 함께 조금은 눅눅한 하루였어요.제 차로 산타모니카 해안을 따라 운전하면서 바닷가에 떨어지는 저녁 노을은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랍스터와 왕게발로 든든한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교수님은 놀라는 것 하나가 이곳의 갈매기는 어찌 저리도 큰지 의아해 하셨는데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을 보면서 엄청난 양에 교수님은 놀라셨지만 혹 우리가 갈매기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30여년 되시는 교수님의 재직시절을 돌아 보시며 좋은 이야기를 구름처럼 피웠고 멋진 시암송과 공부하는 자세,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등불삼아 정진하라"는 말씀이 기억 납니다. 그 밖에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 한국문단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시간은 소리없이 뒷굼치를 들고 지나갔고 파도소리는 창가에 부딫치며 스르르 물러 갔다 돌아오고, 조명에 비치는 갈매기의 하얀 날개짓은 탄성을 내게 했어요.
갈매기도 저를 잡고, 저도 바다가 좋은데 세분의 등떠밀림으로 다시 로스엔젤레스의 다운타운으로 들어 왔어요. 오다가 산타 모니카 해변의 유원지를 보았습니다. 이곳의 이민자들은 고향 생각이 나면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와서 눈물도 흘려 보고 소리없는 망향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가끔 그랬어요. 미끄러지듯 다운타운으로 들어와서 보나밴처 호텔 35층에 있는 스카이 라운지로 올라 갔어요. 360도로 회전하기에 오색 불빛이 뒤덮힌 다운타운의 건물과 시가지 전경을바라보았어요. 사실 저도 그 호텔은 처음이었어요. 낭만도 연인도 없어서일까요? 총각 때는 헐리우드 스카이 라운지를 주로 가는데 다운타운의 그 호텔은 또다른 분위기였어요. 칵테일을 한잔씩 하면서 한용운님의 시와 함께 하는 시간, 교수님의 암송실력은 정말 감동과 감탄하게 했습니다. 문단의 현 주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주에서 바라보는시각의 차이를 느끼면서 교수님의 열정을 솟아 부으신 '시와 시학사'를 보면서 문학인의 한사람으로 정말 문학에도 정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난무해 있는 단체에 휩쓸리지 말고 좋은 스승을 만나 올바른 길로 가라는 말씀을 새기며 별과 함께하던 밤은 이렇게 지나가며 1시 30분경에 교수님의 숙소인 그랜드 호텔로 돌아왔고, 저는 어둡지만은 않은 밤을 달려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날.
교수님은 헌팅톤 라이브러리에 가시고 저는 가게에 있다가 오후 6시 라디오코리아 도산홀에서 재미시인협회가 주관하는 시문학 강연회를 했습니다. 문인들을 3시간 동안 꼼짝 못하게 앉여 놓으시고 열강을 하셨어요. 누구 한 사람 자리를 뜨지 않고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듣는 진지한, 대단한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학기 '시론'을 집약해서 다시 듣는듯 했어요. 강의가 끝나고 '싸리골'에서 모임이 있었지만 저는 참석치 못했어요. 이곳 원로시인들과 중진 시인들이 함께 하는 자리로 저는 감히 같이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젊은? 시인들과 다른 곳에서 한잔?씩 했습니다.
셋째날.
한식당 '용수산'에서 교수님의 시창작 교실이 열렸어요. 저는 마찬가지로 생계의 사슬을 오후 늦게서야 풀고 마라톤 교실에 들어 갔어요. 참 놀라웠어요. 흩으러지는 모습 없이 진지하신 모습에 저는 듣기만 했어요. 교수님의 제자이신 임혜신씨는 플로리다에 거주하시는데 교수님을 뵈려고 비행기로 6시간 이상을 달려 오셨어요. 저도 그런 은사님이 계셔서 만사 제쳐두고 먼 걸음도 한걸음에 달려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교수님도, 임혜신님도 두 분 다 너무 부러웠습니다.
행사가 9시에 끝이 나고 다른 사람들의 애프터를 뿌리치고 교수님과 문금숙님, 임혜신님과 이제인님과 저는 '로젠켈라' 노래방 겸 식당에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하신다고 해서 적잖히 놀랐습니다. 문학을 위해 사재를 털어 아직도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과연 저럴 수 있을까, 글을 쓴다고 혹여 헛된 금전욕과 허망한 공명심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 많이도 혼이 나고 격려와 위로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정진하고 또 정진 하라는 말씀. "살을 뜯어 종이 삼고, 뼈를 골라 붓을 삼아 피로서 글을 쓰라"는 말씀들을 때는 숙연해졌습니다.
교수님은 등대라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항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불을 밝혀 주시는 교수님을 보며 각오가 새로웠고, 제가 어떤 것이 필요했었는지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노래도 무척 잘하십니다. 문금숙님이 공부는 언제하고 노래는 언제하셨냐고 할 말큼 대단한 열창이셨어요. 저도 몇 곡 하면서 교수님과 어깨동무도 하고 합창도 했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조금 거나하게 드셨지만 참 좋았습니다. 제게는 잊지 못할 시간들로 하나같이 목걸이에 걸 수 있는 보석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동안 문학세계의 거목으로 남으셔서 이제 커 나가는 저와 같은 새싹들의 보호자가 되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글을 올리면서도 새삼 그날을 떠 올리며 글 쓰는 자세도 고쳐보고 마음도 다 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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