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소망
2005.04.23 09:32
자전거의 소망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이영열
내 친구인 주인을 만났을 때는 땅위에 꽃들이 만발하고 연초록 잎이 짙어갈 무렵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맑고 씩씩한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년입니다. 소년이 엄마와 함께 자전거 가게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소년은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나를 선택해 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습니다. 소년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엄마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이 엄마도 그가 타기에 크기도 색깔도 괜찮다며 나를 선택했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살아 갈 것을 생각하니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처음 내 등에 타고 연습 할 때마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End 자주 넘어지기 일쑤였고 팔 다리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린 주인은 마냥 즐거워하고 나도 덩달아 즐겁습니다. 나와 차츰 친해지고 서로 익숙해지더니 이제는 아주 잘 타고 다닙니다. 엄마 심부름 할 때나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마다 우리들은 한 몸이 되어 늘 같이 다닙니다.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질 무렵 슬며시 잠든 나를 흔들며 놀러가자고 하기에 못 이긴 척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는 길목 시장을 지나 만두가게와 비디오 대여점을 지나서 그가 다니는 넓은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습니다. 철봉, 그네, 구름사다리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그는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달렸습니다. 날은 어스름하여 저녁안개가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친구에게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주인은 조금만 더 놀다 가자면서 시간을 잊었던 것 같았습니다. 밤하늘에는 어느새 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그 제서야 걱정이 되고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어두운 골목길을 달리다가 장애물을 미쳐 못보고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그는 몇 군데 타박상만 입었을 뿐 나는 많이 다쳤습니다. 핸들은 휘어졌고 바퀴는 바람이 서서히 빠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나를 끌고 가면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의연하고 대견스러운 어린 주인의 모습을 보니 나는 지치고 피곤하고 아프지만 엄살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 날 나를 수리센터로 데리고 가서 깨끗이 치료해 주었습니다. 몇 년이 흘러 그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또 다른 환경에서 어린 주인과 함께 다녔습니다. 내 양쪽 팔에 도시락과 신주머니를 걸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고 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나를 문밖에다 세워 두고 혼자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은 후부터였습니다. 수업이 끝나 쉬는 시간이면 꼭 내 옆에 와서 이야기하고 만져주고 먼지가 끼면 닦아주었는데 그날따라 친구는 늦게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짓궂은 아이들이 내 주위를 에워싸며 나를 어디로 끌고 가 넘어뜨리고 마구 짓밟았습니다. 심지어는 내 바퀴에다 날카로운 못을 찔러댔습니다. 나는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피가 철철 흘러 내렸습니다. 바퀴가 굴러갈 수 없게 체인까지 끊어놓고 아이들은 도망쳐버렸습니다. 나는 신음하며 어린 주인을 부르다가 기절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가 달려와 나를 일으켜 보지만 나는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주인은 나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이렇게 망가진 나를 수리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방치해 두고 혼자 무거운 가방과 도시락 신주머니를 들고 학교를 오갑니다. 어린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다시 수리하고 같이 다니다 보면 짓궂은 녀석들이 너를 또다시 다치게 하니까 당분간 쉬고 있으면 바퀴도 체인도 새것으로 갈아준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나왔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의 어린 주인을 꼭 만나야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었습니다. 꽃이 피는 새봄이 오고 가을이 가고 몇 계절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를 방치해 두었습니다. 어린 주인은 많이 성장해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 같아 보였습니다. 이런 주인의 모습을 기뻐해야겠지만 이제는 나를 귀찮아하고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아 우울합니다. 뿌옇게 먼지 끼고 거미줄까지 쳐져있어도 닦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개구쟁이 꼬마들도 나를 우습게보고 과자봉지도 몰래 내 옆구리에 끼워 놓고 가고, 어떤 녀석은 내 등에다 껌까지 덕지덕지 발라놓고 도망갑니다. 문밖에서 혼자 덩그러니 추위에 떨어도 아무도 감싸주는 이가 없어서 더욱 외롭고 서글퍼집니다. 이제는 영영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고 괴롭습니다.
봄이 문턱에 막 들어 올 무렵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깨끗이 닦아주고 있습니다. 차갑게 굳어있는 껌도 떼어내고 거미줄도 치워주고 구석구석 씻겨주니 정말 날아 갈 것만 같았습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 소년의 엄마였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메었습니다.
“그 동안 너를 버려두어서 정말 미안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바퀴도 체인도 새것으로 갈아줄게 그리고 너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내 눈가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2005 4 23)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이영열
내 친구인 주인을 만났을 때는 땅위에 꽃들이 만발하고 연초록 잎이 짙어갈 무렵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맑고 씩씩한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소년입니다. 소년이 엄마와 함께 자전거 가게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소년은 이리저리 살피더니 나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나를 선택해 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습니다. 소년은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엄마에게 무어라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이 엄마도 그가 타기에 크기도 색깔도 괜찮다며 나를 선택했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살아 갈 것을 생각하니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소년은 처음 내 등에 타고 연습 할 때마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End 자주 넘어지기 일쑤였고 팔 다리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린 주인은 마냥 즐거워하고 나도 덩달아 즐겁습니다. 나와 차츰 친해지고 서로 익숙해지더니 이제는 아주 잘 타고 다닙니다. 엄마 심부름 할 때나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마다 우리들은 한 몸이 되어 늘 같이 다닙니다.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질 무렵 슬며시 잠든 나를 흔들며 놀러가자고 하기에 못 이긴 척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는 길목 시장을 지나 만두가게와 비디오 대여점을 지나서 그가 다니는 넓은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습니다. 철봉, 그네, 구름사다리들과 장난을 치며 노는 것도 참 즐겁습니다. 그는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달렸습니다. 날은 어스름하여 저녁안개가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서 친구에게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주인은 조금만 더 놀다 가자면서 시간을 잊었던 것 같았습니다. 밤하늘에는 어느새 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는 그 제서야 걱정이 되고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어두운 골목길을 달리다가 장애물을 미쳐 못보고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그는 몇 군데 타박상만 입었을 뿐 나는 많이 다쳤습니다. 핸들은 휘어졌고 바퀴는 바람이 서서히 빠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나를 끌고 가면서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의연하고 대견스러운 어린 주인의 모습을 보니 나는 지치고 피곤하고 아프지만 엄살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 날 나를 수리센터로 데리고 가서 깨끗이 치료해 주었습니다. 몇 년이 흘러 그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또 다른 환경에서 어린 주인과 함께 다녔습니다. 내 양쪽 팔에 도시락과 신주머니를 걸고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고 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나를 문밖에다 세워 두고 혼자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은 후부터였습니다. 수업이 끝나 쉬는 시간이면 꼭 내 옆에 와서 이야기하고 만져주고 먼지가 끼면 닦아주었는데 그날따라 친구는 늦게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짓궂은 아이들이 내 주위를 에워싸며 나를 어디로 끌고 가 넘어뜨리고 마구 짓밟았습니다. 심지어는 내 바퀴에다 날카로운 못을 찔러댔습니다. 나는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피가 철철 흘러 내렸습니다. 바퀴가 굴러갈 수 없게 체인까지 끊어놓고 아이들은 도망쳐버렸습니다. 나는 신음하며 어린 주인을 부르다가 기절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가 달려와 나를 일으켜 보지만 나는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주인은 나를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이렇게 망가진 나를 수리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방치해 두고 혼자 무거운 가방과 도시락 신주머니를 들고 학교를 오갑니다. 어린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다시 수리하고 같이 다니다 보면 짓궂은 녀석들이 너를 또다시 다치게 하니까 당분간 쉬고 있으면 바퀴도 체인도 새것으로 갈아준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나왔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나의 어린 주인을 꼭 만나야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었습니다. 꽃이 피는 새봄이 오고 가을이 가고 몇 계절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를 방치해 두었습니다. 어린 주인은 많이 성장해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 같아 보였습니다. 이런 주인의 모습을 기뻐해야겠지만 이제는 나를 귀찮아하고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아 우울합니다. 뿌옇게 먼지 끼고 거미줄까지 쳐져있어도 닦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개구쟁이 꼬마들도 나를 우습게보고 과자봉지도 몰래 내 옆구리에 끼워 놓고 가고, 어떤 녀석은 내 등에다 껌까지 덕지덕지 발라놓고 도망갑니다. 문밖에서 혼자 덩그러니 추위에 떨어도 아무도 감싸주는 이가 없어서 더욱 외롭고 서글퍼집니다. 이제는 영영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고 괴롭습니다.
봄이 문턱에 막 들어 올 무렵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깨끗이 닦아주고 있습니다. 차갑게 굳어있는 껌도 떼어내고 거미줄도 치워주고 구석구석 씻겨주니 정말 날아 갈 것만 같았습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그 소년의 엄마였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목이 메었습니다.
“그 동안 너를 버려두어서 정말 미안하다. 따뜻한 봄이 오면 바퀴도 체인도 새것으로 갈아줄게 그리고 너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내 눈가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2005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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