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여고 동창회
2005.04.23 17:32
추억의 여고동창회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신영숙
아침이 열리기 전 새벽 5시, 가로등 불빛이 아직도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새벽잠을 설친 나는 피로감도 잊은 채 친구 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오늘은 여고를 졸업한지 강산이 몇 번 바뀐 다음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던 동창들이 충청도 어느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모교가 있는 광주에서 40명, 서울에서 버스 한 대가 각각 출발해서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 때 숙소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나와 친구는 서울에 친한 친구가 많다는 이유로 굳이 서울로 가서 합류하기로 했다. 들뜬 마음으로 달려서 그런지 아침 8시도 안 되어 서울에 도착했다. 동행한 친구는 사업차 전주에 내려와 있지만 연고지는 서울이라서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회장이 사는 강남의 어느 아파트 앞. 마음이 내키지 않은 나는 한사코 차에 남겠다고 했지만 동행한 친구가 오늘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회장 집에 있으니 가서 함께 도와주어야 한다며 내 손을 강제로 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산더미 같이 쌓인 짐 꾸러미 곁에 친구와 그녀의 남편이 서있었다. 친구가 반가워하며 "당신 영숙이 몰라요?" 하며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에게 친구 남편이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친구 남편은 내 초등학교 1년 선배였다. 그는 졸업 후에도 학교에 남아 6학년을 계속 다녔었다. 나와 동창이 된 셈이다. 철부지 우리들은 그를 7학년이라고 놀려댔다. 그래도 철이 든 선배는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를 탓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선배가 내 동창의 남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친구네 집은 마을금고를 운영할 만큼 재력가였으나 친구 남편은 중학교 등록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었다. 집에 있으면 중학교도 못 갈 것 같아 초등학교를 1년 더 다녔단다. 몇 년 전 친구로부터 그 얘길 듣고 어렸을 때 철부지 시절에 저지른 실수에 낮 뜨거워하며 혹시라도 친구 남편을 만날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가 오늘 정장차림의 중년신사가 되어 아파트 앞에 서있지 않는가. 정말 어디론가 숨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친구 친정부모의 심한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지금은 성공해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고, 그러기까지는 성품 좋은 친구가 남편의 출세에 일조를 했을 거라 믿는다.
아침부터 나만이 아는 황당한 일을 겪고 집결장소로 갔다. 각기 친한 친구들을 찾고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열아홉 살 단발머리 여고생이 되어 설레는 가슴을 안고 목적지로 향했다. 여고 때나 지금이나 쾌활한 옆자리 숙이의 너스레에 동참하다 보니 첫 번째 목적지인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사에 도착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천년 고찰이다. 자연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영주 부석사.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화엄종의 총 본산이며 목조의 무량수전과 석등, 석탑 등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국보급 사찰이란다. 의상대사와 선묘의 슬픈 사랑이 전설로 남아 있는 곳, 부석사를 뒤로하고 단양팔경 중 하나인 중선암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오래 전에 어느 유명인사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장소라던가.
저녁을 먹기 전에 먼저 도착한 광주 팀과 합류해서 서로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한 친구 몇 명은 가끔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몇 십 년만의 만남인지 서로를 소개하지만 마주보고 한참을 들여다봐야 옛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저녁을 먹고 산 속의 주차장이 운동장처럼 넓어서 캠프파이어와 함께 원을 그리며 교가를 합창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교가를 부르다보니 새로운 감회에 젖어 목이 메었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오늘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8학급 중 1학급 정도만 모였으니 남은 친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4월의 밤 공기는 차가웠지만 밤 깊은 줄도 모르고 별빛과 물소리만 들리는 숲 속에서 모닥불이 다 타도록 우리는 즐거워하며 흩어질 줄 몰랐다. 얼굴에 주름은 늘어도 마음만은 동심인 것을…….
이튿날 달디단 아침공기를 마시며 상선암을 둘러본 후,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나루에 도착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세트도 둘러보고 온달동굴에 들렀다. 평강왕의 놀림을 진실로 믿고 온달과 결합을 고집하다 쫓겨난 평강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가세가 펴지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온달과, 친구와 선배의 결합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가진 것은 없으나 장래가 있는 한 사람을 뒷바라지해 오늘이 있게 한 내 친구의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신영숙
아침이 열리기 전 새벽 5시, 가로등 불빛이 아직도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새벽잠을 설친 나는 피로감도 잊은 채 친구 차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오늘은 여고를 졸업한지 강산이 몇 번 바뀐 다음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던 동창들이 충청도 어느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모교가 있는 광주에서 40명, 서울에서 버스 한 대가 각각 출발해서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 때 숙소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나와 친구는 서울에 친한 친구가 많다는 이유로 굳이 서울로 가서 합류하기로 했다. 들뜬 마음으로 달려서 그런지 아침 8시도 안 되어 서울에 도착했다. 동행한 친구는 사업차 전주에 내려와 있지만 연고지는 서울이라서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회장이 사는 강남의 어느 아파트 앞. 마음이 내키지 않은 나는 한사코 차에 남겠다고 했지만 동행한 친구가 오늘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회장 집에 있으니 가서 함께 도와주어야 한다며 내 손을 강제로 끌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산더미 같이 쌓인 짐 꾸러미 곁에 친구와 그녀의 남편이 서있었다. 친구가 반가워하며 "당신 영숙이 몰라요?" 하며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에게 친구 남편이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친구 남편은 내 초등학교 1년 선배였다. 그는 졸업 후에도 학교에 남아 6학년을 계속 다녔었다. 나와 동창이 된 셈이다. 철부지 우리들은 그를 7학년이라고 놀려댔다. 그래도 철이 든 선배는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를 탓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선배가 내 동창의 남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친구네 집은 마을금고를 운영할 만큼 재력가였으나 친구 남편은 중학교 등록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었다. 집에 있으면 중학교도 못 갈 것 같아 초등학교를 1년 더 다녔단다. 몇 년 전 친구로부터 그 얘길 듣고 어렸을 때 철부지 시절에 저지른 실수에 낮 뜨거워하며 혹시라도 친구 남편을 만날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가 오늘 정장차림의 중년신사가 되어 아파트 앞에 서있지 않는가. 정말 어디론가 숨고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친구 친정부모의 심한 반대로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지금은 성공해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고, 그러기까지는 성품 좋은 친구가 남편의 출세에 일조를 했을 거라 믿는다.
아침부터 나만이 아는 황당한 일을 겪고 집결장소로 갔다. 각기 친한 친구들을 찾고 인사를 나누며 우리는 열아홉 살 단발머리 여고생이 되어 설레는 가슴을 안고 목적지로 향했다. 여고 때나 지금이나 쾌활한 옆자리 숙이의 너스레에 동참하다 보니 첫 번째 목적지인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사에 도착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천년 고찰이다. 자연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으로 들른 곳이 영주 부석사.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화엄종의 총 본산이며 목조의 무량수전과 석등, 석탑 등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는 국보급 사찰이란다. 의상대사와 선묘의 슬픈 사랑이 전설로 남아 있는 곳, 부석사를 뒤로하고 단양팔경 중 하나인 중선암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오래 전에 어느 유명인사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장소라던가.
저녁을 먹기 전에 먼저 도착한 광주 팀과 합류해서 서로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한 친구 몇 명은 가끔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몇 십 년만의 만남인지 서로를 소개하지만 마주보고 한참을 들여다봐야 옛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저녁을 먹고 산 속의 주차장이 운동장처럼 넓어서 캠프파이어와 함께 원을 그리며 교가를 합창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교가를 부르다보니 새로운 감회에 젖어 목이 메었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오늘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8학급 중 1학급 정도만 모였으니 남은 친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4월의 밤 공기는 차가웠지만 밤 깊은 줄도 모르고 별빛과 물소리만 들리는 숲 속에서 모닥불이 다 타도록 우리는 즐거워하며 흩어질 줄 몰랐다. 얼굴에 주름은 늘어도 마음만은 동심인 것을…….
이튿날 달디단 아침공기를 마시며 상선암을 둘러본 후,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나루에 도착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세트도 둘러보고 온달동굴에 들렀다. 평강왕의 놀림을 진실로 믿고 온달과 결합을 고집하다 쫓겨난 평강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가세가 펴지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온달과, 친구와 선배의 결합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가진 것은 없으나 장래가 있는 한 사람을 뒷바라지해 오늘이 있게 한 내 친구의 사랑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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