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어머니
2005.05.09 08:34
그리운 나의 어머니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박은희
어머니,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 붉은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케익을 보내드렸습니다. 큰오빠와 함께 사시는 여든 다섯의 아버지는 지금도 정정하신 편인데 늘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한바탕 울음보를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을 사르며 촛불을 밝히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삶에 지쳐있을 때에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과, 자식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뒤돌아 서서 가슴앓이를 하시던 그 마음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힘겨운 육천 평의 농사에 손발이 부르트면서도 시골로 떠나는 고이 기른 딸자식의 뒷전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어미가 되어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변할 즈음에야 당신의 한 맺힌 가슴아픈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불심(佛心)이 강하셨던 어머니,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천수경(千手經)과 반야심경(般若心經)염불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랐던 내 어린 시절. 가시는 그 날까지 6남매 자식들을 위해 향을 사르며, 반평생 동안 건어물장사를 하신 여장부이셨던 어머니, 멍에를 걸머지고 어렵게 사는 막내딸이 안타까워 항상 지붕이 되어주시던 어머니, 항상 내 한 몸 희생하여 주위를 밝게 비추는 촛불 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시며 어려운 처지의 이웃과 친척들을 몰라라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사찰에 불경(佛經)책과 불사에 돈을 아끼지 않으셔서 불 보살이라 불리셨던 어머니, 생전에 정초엔 신도안 국사봉과 공주 마곡사 상원암을 비롯하여 웬만한 사찰은 안 가신 곳 없이 전국을 기도 터로 삼아오신 어머니,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되어버린 계룡산 자락의 태고사에서 찍어드린 사진과 어머니와 함께 도반(道伴)의 길을 걸으며 찍었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또 봅니다.
몇 년 전, 친정 가까이에서 주말부부로 지내다 교통사고로 뇌출혈이 있었던 남편의 건강 때문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온 뒤, 날마다 눈시울을 적시며 보내시던 어머님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내 생활에 바빠 자주 못 뵙는 어머니와 마지막 이별여행을 하라는 뜻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식중독으로 같은 병원 한 병실의 어머니 곁에서 꿈같은 10여 일을 지냈습니다. 한 달 반을 병원에서 지내 가슴이 답답해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간병하고 계시던 막내 이모님과 함께 이쪽병동과 저쪽병동을 오가며 흐르는 눈물을 애써 웃음으로 삼키며 마지막 이별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나 의식이 없으셨고 "엄마 나 잘사는 거 보고가!" 울부짖던 나를 뿌리치고 74세에 홀연히 먼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셨지요. 어머니의 유언대로 흐느끼는 듯한 바라춤과 함께 삼기 태봉사 에서 49제를 지내 드리고, 그 후 사월 초파일과 칠석 날 그리고 칠월 백중날은 그리운 어머니의 향기를 맡으러 절을 찾아 나섭니다.
어머니, 생전에 단 한 번의 말대답이 이토록 내 가슴을 아프게 할 줄을 어이 알았겠습니까? 오늘도 그리운 어머니를 목놓아 불러보며 눈물 젖은 속죄의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박은희
어머니,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 붉은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케익을 보내드렸습니다. 큰오빠와 함께 사시는 여든 다섯의 아버지는 지금도 정정하신 편인데 늘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한바탕 울음보를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을 사르며 촛불을 밝히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삶에 지쳐있을 때에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과, 자식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뒤돌아 서서 가슴앓이를 하시던 그 마음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힘겨운 육천 평의 농사에 손발이 부르트면서도 시골로 떠나는 고이 기른 딸자식의 뒷전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어미가 되어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변할 즈음에야 당신의 한 맺힌 가슴아픈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불심(佛心)이 강하셨던 어머니,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천수경(千手經)과 반야심경(般若心經)염불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랐던 내 어린 시절. 가시는 그 날까지 6남매 자식들을 위해 향을 사르며, 반평생 동안 건어물장사를 하신 여장부이셨던 어머니, 멍에를 걸머지고 어렵게 사는 막내딸이 안타까워 항상 지붕이 되어주시던 어머니, 항상 내 한 몸 희생하여 주위를 밝게 비추는 촛불 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시며 어려운 처지의 이웃과 친척들을 몰라라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사찰에 불경(佛經)책과 불사에 돈을 아끼지 않으셔서 불 보살이라 불리셨던 어머니, 생전에 정초엔 신도안 국사봉과 공주 마곡사 상원암을 비롯하여 웬만한 사찰은 안 가신 곳 없이 전국을 기도 터로 삼아오신 어머니,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되어버린 계룡산 자락의 태고사에서 찍어드린 사진과 어머니와 함께 도반(道伴)의 길을 걸으며 찍었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또 봅니다.
몇 년 전, 친정 가까이에서 주말부부로 지내다 교통사고로 뇌출혈이 있었던 남편의 건강 때문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온 뒤, 날마다 눈시울을 적시며 보내시던 어머님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내 생활에 바빠 자주 못 뵙는 어머니와 마지막 이별여행을 하라는 뜻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식중독으로 같은 병원 한 병실의 어머니 곁에서 꿈같은 10여 일을 지냈습니다. 한 달 반을 병원에서 지내 가슴이 답답해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간병하고 계시던 막내 이모님과 함께 이쪽병동과 저쪽병동을 오가며 흐르는 눈물을 애써 웃음으로 삼키며 마지막 이별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나 의식이 없으셨고 "엄마 나 잘사는 거 보고가!" 울부짖던 나를 뿌리치고 74세에 홀연히 먼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셨지요. 어머니의 유언대로 흐느끼는 듯한 바라춤과 함께 삼기 태봉사 에서 49제를 지내 드리고, 그 후 사월 초파일과 칠석 날 그리고 칠월 백중날은 그리운 어머니의 향기를 맡으러 절을 찾아 나섭니다.
어머니, 생전에 단 한 번의 말대답이 이토록 내 가슴을 아프게 할 줄을 어이 알았겠습니까? 오늘도 그리운 어머니를 목놓아 불러보며 눈물 젖은 속죄의 카네이션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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