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어머니

2005.05.09 08:34

박은희 조회 수:47 추천:6

그리운 나의 어머니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박은희


어머니, 홀로 계신 아버지에게 붉은 카네이션 꽃바구니와 케익을 보내드렸습니다. 큰오빠와 함께 사시는 여든 다섯의 아버지는 지금도 정정하신 편인데 늘 무릎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한바탕 울음보를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을 사르며 촛불을 밝히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삶에 지쳐있을 때에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과, 자식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뒤돌아 서서 가슴앓이를 하시던 그 마음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힘겨운 육천 평의 농사에 손발이 부르트면서도 시골로 떠나는 고이 기른 딸자식의 뒷전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의 그 마음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이 어미가 되어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변할 즈음에야 당신의 한 맺힌 가슴아픈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불심(佛心)이 강하셨던 어머니, 아침저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천수경(千手經)과 반야심경(般若心經)염불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랐던 내 어린 시절. 가시는 그 날까지 6남매 자식들을 위해 향을 사르며, 반평생 동안 건어물장사를 하신 여장부이셨던 어머니, 멍에를 걸머지고 어렵게 사는 막내딸이 안타까워 항상 지붕이 되어주시던 어머니, 항상 내 한 몸 희생하여 주위를 밝게 비추는 촛불 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시며 어려운 처지의 이웃과 친척들을 몰라라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사찰에 불경(佛經)책과 불사에 돈을 아끼지 않으셔서 불 보살이라 불리셨던 어머니, 생전에 정초엔 신도안 국사봉과 공주 마곡사 상원암을 비롯하여 웬만한 사찰은 안 가신 곳 없이 전국을 기도 터로 삼아오신 어머니, 마지막 가족 여행이 되어버린 계룡산 자락의 태고사에서 찍어드린 사진과 어머니와 함께 도반(道伴)의 길을 걸으며 찍었던 아련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보고 또 봅니다.

몇 년 전, 친정 가까이에서 주말부부로 지내다 교통사고로 뇌출혈이 있었던 남편의 건강 때문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온 뒤, 날마다 눈시울을 적시며 보내시던 어머님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내 생활에 바빠 자주 못 뵙는 어머니와 마지막 이별여행을 하라는 뜻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식중독으로 같은 병원 한 병실의 어머니 곁에서 꿈같은 10여 일을 지냈습니다. 한 달 반을 병원에서 지내 가슴이 답답해하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간병하고 계시던 막내 이모님과 함께 이쪽병동과 저쪽병동을 오가며 흐르는 눈물을 애써 웃음으로 삼키며 마지막 이별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 후 여러 날이 지나 의식이 없으셨고 "엄마 나 잘사는 거 보고가!" 울부짖던 나를 뿌리치고 74세에 홀연히 먼 하늘나라 여행을 떠나셨지요. 어머니의 유언대로 흐느끼는 듯한 바라춤과 함께 삼기 태봉사 에서 49제를 지내 드리고, 그 후 사월 초파일과 칠석 날 그리고 칠월 백중날은 그리운  어머니의 향기를 맡으러 절을 찾아 나섭니다.

어머니, 생전에 단 한 번의 말대답이 이토록 내 가슴을 아프게 할 줄을 어이 알았겠습니까? 오늘도 그리운 어머니를 목놓아 불러보며 눈물 젖은 속죄의 카네이션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