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2005.05.14 09:00

김영옥 조회 수:51 추천:6

가슴앓이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김영옥


나는 언제부터인가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이 되면 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마른나무가지에 파릇파릇 새잎이 돋고, 땅에서는 새싹이 고개를 내밀며 갖가지 예쁜 꽃들이 웃음을 짓는데, 나는 어쩐지 왈칵 눈물이 솟아나면서 아련한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픔을 겪는다.
나와 인연을 맺었다가 먼저 떠나신 분들이 보고싶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영영 만날 수 없는 분들이기에 더욱 애달픈 지도 모른다. 그리운 모습들이 가슴에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질 때면 방황하기 시작한다. 날을 잡아 한적한 곳을 찾아가 그분들의 생각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나의 친정어머니, 53 년 전 내 나이 열 일곱 살 때, 맏딸인 나를 유난히도 사랑하셨던 어머니가 사십의 나이에 5남매를 두고 병마로 돌아가셨다. '떡 장사를 해서라도 너를 대학까지 보내주마. 나만 살려다오!'라고 애원하시던 모습이 몹시 보고싶다. 그렇게도 살고싶어 하셨는데……. 남과 같이 오래 사셨다면 딸과 함께 정다운 이야기도 나누고 귀여운 손자들을 보며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려온다. 어머니! 어머니가 되어보지 않고는 어머니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으랴.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맏손녀인 나를 무척 아껴주시면서 늘 남의 집 주기 아까운 보물이라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내가 둘째딸을 낳을 때 뵙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셔서 내내 죄송하다. 술을 좋아하셨는데 다시 뵈올 수 있다면 좋은 술을 대접하고싶은 마음 간절하다. 할머니는 나의 제2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셨기에 고맙다는 말로는 그 은혜를 다 표현할 수 없다. 오늘날 내가 이만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주신 것은 오직 할머니의 보살핌 덕이었다. 어려운 가정으로 시집가서 고생하고 손서의 까다로운 성격을 맞추고 사는 것에 늘 마음 아파하시면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남편과 자식만 생각한다고 항상 염려를 하시던 사랑과 정이 넘치셨던 할머니, 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나 살기 바빠 옷 한 벌도, 맛있는 음식 한 번 대접해드리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생각만 하면 내 가슴은 짠 간장으로 비벼놓은 듯 쓰리다. 늘 못 잊어하던 손녀가 이렇게 잘 사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할머니께 보여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중년에 다니던 군청에서 물러나 정치를 하신다고 바깥으로 나도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할 일을 내게 다 맡기셨기 때문에 늘 미안해하셨다. 딸이지만 나를 제일 믿고 사랑해주셨다. 딸집에 오셨을 때 좀더 쉬고 가시라해도 사위보기 어렵다며 그냥 가실 때는 내 마음이 아팠었다.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속도 상했다. 40세에 상처를 했으니 아버지의 신세가 오죽하셨을 것인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사시다 가신 아버지가 안타깝고 안쓰럽기 그지없다. 남자는 처복이 가장 큰복인 것을. 아버지는 새엄마를 만나셨지만 어찌 우리엄마만 하셨을까?

나의 시어머니께서는 삼대독자인 시아버님을 만나 1녀 5남을 두셨다. 막내아들 첫돌이 지나지도 않을 무렵, 독립운동을 하시던 시아버님이 33살에 세상을 등지셨다. 시어머님은 37살에 홀로 되어 그 자녀들을 돌보고 사신 분이다. 그런 분의 맏며느리인 나는 시어머님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지냈다.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면 안쓰러워 늘 가슴아팠다. 좀더 잘 해드리지 못하여 죄송하기 그지없다. 15년 전 85세에 한 많은 일생을 마치셨다. 돌아가시기 전 내 며느리인 손부에게 '너는 너희 시어머니의 본만 따라라. 그리하면 잘 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며느리로부터 전해듣고 정말 어머님께서는 나를 무척 사랑하셨구나 알게되었다.

  이렇듯이 어른들의 사랑을 받았던 나는 이제 이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진정한 사랑을 주실 분이 없으니 그분들만 생각하면 가슴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맞는 이야기다. 어느덧 70의 고개에 서고 보니 이제는 나의 차례가 된 듯싶어 마음이 울적해진다. 어른들처럼 더욱더 참사랑을 베풀어 좋은 어미, 좋은 할미가 되어 후손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