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의 추억
2005.04.25 09:17
오디의 추억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배윤숙
4월이 잔인하다는 표현은 왜 나왔을까? 4월이 되면 꼭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잔인하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봄이 왔다고, 두꺼운 겨울옷들을 벗어 던지고 얇고 화사한 옷차림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얇은 쉐타 올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봄바람이, 소매 끝에서 목까지 덮었던 겨울옷을 벗고 시원히 내놓은 목 사이와 허리춤 닿는 짧은 옷 속으로 솔솔 파고들어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밤새 닫혀 있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상큼한 공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2박 3일간 서울에 사는 딸들한테 다녀온 사이에 베란다 꽃나무 식구들에게 변화가 있었다.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만 했던 철쭉이 활짝 피었고, 콩나물도 키가 더 컸으며, 어느 음식점 정원에서 분양해 온 주목나무도 새 잎이 더 자랐다. 참돌이와 참순이 먹이도 주어야 해서 화분들을 둘러보다가 "으메, 이게 뭣이당가?" 2년 전에 산뽕나무를 얻어다 화분에 심어놓았었다. 그리고는 뽕나무 잎이 너무 넓고 키도 커서 집안에서 키우기에는 적당한 나무가 아닐 것 같아 지난 해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고사리가 손가락을 펴기 전 모습 같은 그런 것들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오디 열매였다. 어느 집으로 시집보내야 할까 고민하던 그 뽕나무에서 열매를 볼 줄이야…….
남편과 나는 호들갑을 떨며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그리고는 또 옛 생각에 잠겨 입가에 이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결혼하고 둥지를 틀던 광양 용소골 뒷산에는 뽕나무가 많았었다. 학교 출퇴근을 하는 길은 마을 앞으로 하여 이십 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기에 지름길을 자주 이용했다. 뒷산을 넘어가는 지름길을 통해 가노라면 한 5분 정도면 충분한지라 신혼시절 조금이라도 더 내 곁에 있고싶어 늑장을 피우다가 지름길로 해서 부리나케 출근하곤 했었다. 그 때 남편이 내게 건네주던 오디는 나에게 많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루 종일 단칸방에서 책도 보고, 라디오도 들으며 지내던 내게 남편의 퇴근은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저녁식사 준비를 대충 해놓고 뒷산에 올라가면 빨갛게 노을지는 해를 등지고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남편과 만날 수 있었다. 뽕나무밭에 이르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디를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 담기도 하였다. 남편이 건네주는 탐스런 오디송이는 입덧으로 고생하는 내게 좋은 먹을거리였다.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만큼 오디를 따먹기도 했지만 오디주를 만들기도 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혹시나 미끄러져서 큰일날까봐 퇴근길 마중을 나오지 못하도록 신신당부해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남편은 종이봉지를 만들어 빗속에서 옷이 다 젖도록 오디를 따와 내게 건네주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가 살던 수원 매산동 집에도 뽕나무가 있었다. 옆집과 우리 집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뽕나무는 얼마나 큰지 오디열매를 따먹으려면 옆집 고등학생 조카를 불러야 했다.'꼬맹이 아줌마! 또 오디 먹게?'하면서 따줄까 말까 놀려서 나를 약 올리기도 했던 오디는 굉장히 열매가 컸다. 그 오디를 작은 포도라며 소꿉놀이할 때 갖고 놀기도 했었다.
그렇게 오디에 대한 추억이 많은데 지금 우리 집 화분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 것도 그저 키가 크고 잎이 커서 마당이나 정원이 넓은 집으로 시집보낼 생각만 했던 뽕나무. 내게 어린 시절과 신혼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기게 해준 뽕나무의 열매, 오디! 자꾸만 들여다보면 닳아질까봐, 떨어질까 봐 살짝 곁눈질로 까꿍 하듯이 들여다 본 뽕나무의 열매는 아직 초록빛을 띠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 조금씩 제 색깔로 나를 유혹할 것이다.
얼른얼른 짙은 빨간색으로 변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옛날 그 시절의 맛은 아니겠지만, 직접 나무에서 따먹는 그 기쁨을 맛보고 싶다. 그 작은 열매들은 벌써 나로 하여금 추억의 영사기를 돌리게 하고 있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배윤숙
4월이 잔인하다는 표현은 왜 나왔을까? 4월이 되면 꼭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잔인하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봄이 왔다고, 두꺼운 겨울옷들을 벗어 던지고 얇고 화사한 옷차림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얇은 쉐타 올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봄바람이, 소매 끝에서 목까지 덮었던 겨울옷을 벗고 시원히 내놓은 목 사이와 허리춤 닿는 짧은 옷 속으로 솔솔 파고들어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 아닐까?
밤새 닫혀 있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상큼한 공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2박 3일간 서울에 사는 딸들한테 다녀온 사이에 베란다 꽃나무 식구들에게 변화가 있었다.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만 했던 철쭉이 활짝 피었고, 콩나물도 키가 더 컸으며, 어느 음식점 정원에서 분양해 온 주목나무도 새 잎이 더 자랐다. 참돌이와 참순이 먹이도 주어야 해서 화분들을 둘러보다가 "으메, 이게 뭣이당가?" 2년 전에 산뽕나무를 얻어다 화분에 심어놓았었다. 그리고는 뽕나무 잎이 너무 넓고 키도 커서 집안에서 키우기에는 적당한 나무가 아닐 것 같아 지난 해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고사리가 손가락을 펴기 전 모습 같은 그런 것들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오디 열매였다. 어느 집으로 시집보내야 할까 고민하던 그 뽕나무에서 열매를 볼 줄이야…….
남편과 나는 호들갑을 떨며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그리고는 또 옛 생각에 잠겨 입가에 이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결혼하고 둥지를 틀던 광양 용소골 뒷산에는 뽕나무가 많았었다. 학교 출퇴근을 하는 길은 마을 앞으로 하여 이십 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기에 지름길을 자주 이용했다. 뒷산을 넘어가는 지름길을 통해 가노라면 한 5분 정도면 충분한지라 신혼시절 조금이라도 더 내 곁에 있고싶어 늑장을 피우다가 지름길로 해서 부리나케 출근하곤 했었다. 그 때 남편이 내게 건네주던 오디는 나에게 많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루 종일 단칸방에서 책도 보고, 라디오도 들으며 지내던 내게 남편의 퇴근은 무척이나 기다려지는 일이었다. 저녁식사 준비를 대충 해놓고 뒷산에 올라가면 빨갛게 노을지는 해를 등지고 나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남편과 만날 수 있었다. 뽕나무밭에 이르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디를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 담기도 하였다. 남편이 건네주는 탐스런 오디송이는 입덧으로 고생하는 내게 좋은 먹을거리였다.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만큼 오디를 따먹기도 했지만 오디주를 만들기도 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혹시나 미끄러져서 큰일날까봐 퇴근길 마중을 나오지 못하도록 신신당부해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남편은 종이봉지를 만들어 빗속에서 옷이 다 젖도록 오디를 따와 내게 건네주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가 살던 수원 매산동 집에도 뽕나무가 있었다. 옆집과 우리 집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뽕나무는 얼마나 큰지 오디열매를 따먹으려면 옆집 고등학생 조카를 불러야 했다.'꼬맹이 아줌마! 또 오디 먹게?'하면서 따줄까 말까 놀려서 나를 약 올리기도 했던 오디는 굉장히 열매가 컸다. 그 오디를 작은 포도라며 소꿉놀이할 때 갖고 놀기도 했었다.
그렇게 오디에 대한 추억이 많은데 지금 우리 집 화분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 것도 그저 키가 크고 잎이 커서 마당이나 정원이 넓은 집으로 시집보낼 생각만 했던 뽕나무. 내게 어린 시절과 신혼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남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기게 해준 뽕나무의 열매, 오디! 자꾸만 들여다보면 닳아질까봐, 떨어질까 봐 살짝 곁눈질로 까꿍 하듯이 들여다 본 뽕나무의 열매는 아직 초록빛을 띠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 조금씩 제 색깔로 나를 유혹할 것이다.
얼른얼른 짙은 빨간색으로 변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옛날 그 시절의 맛은 아니겠지만, 직접 나무에서 따먹는 그 기쁨을 맛보고 싶다. 그 작은 열매들은 벌써 나로 하여금 추억의 영사기를 돌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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