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에게 띄우는 편지
2006.04.13 20:28
민들레에게 띄우는 편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그대는 분명 ‘이차돈’이 환생한 것입니다. 신라시대 경주에 절을 짓다가 법흥왕의 명에 따라 순교한 이차돈이 환생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순교 당시 형리가 이차돈의 목을 베자 잘려나간 목에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으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하더니 비가 뚝뚝 떨어졌다고 전해옵니다. 지금도 민들레의 줄기를 자르면 이차돈의 목에서 솟았던 흰 젖이 줄줄 흐릅니다. 그 젖을 맛보면 그대의 한이 남아 쓰디씁니다.
그대는 나처럼 외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도 늘 골방에서 혼자 상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한 복판보다는 구석진 곳을 찾아 앉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진정 나의 가슴속엔 외로운 영혼이 숨쉬고 있나 봅니다. 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울타리 밑이 아니면 화단 경계석 구석에서나 그대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른 잡초들처럼 잘 가꾸어진 화단 가운데에 자리잡지 못하고, 늘 구석진 곳만 차지하는 그대의 영혼 또한 외로운 영혼입니다.
그대의 끈질긴 생명력은 나의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한국전쟁을 치르고 한없이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오면서도 6남매를 키워낸 억척스런 어머니 말입니다. 보릿고개를 넘을 때는 오직 집에서 배고파 울고 있을 자식들 생각에 온 산과 들을 헤매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버렸죠.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온 어머니는 그대에게서 질긴 삶을 배웠나 봅니다. 땅바닥에 바짝 붙어 뻗어 가는 창같이 뾰쪽한 잎을 보면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김을 매다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닮았습니다. 좁은 구석에서 꽃을 피우려고 쭉 내민 꽃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식을 기다리며 길어진 어머니의 목이었습니다. 홀씨를 바람에 날려보내는 그대의 맘도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싸리문 뒤에서 흐르는 눈물을 행주치마로 닦아내며 오직 자식들의 행복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 말입니다.
민들레라 불리는 그대를 보면 한없이 숙연해집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대가 속삭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못살겠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세상이란 살만한 곳이라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라고 말해줍니다. 어느 누구 보아주는 사람 없고, 길가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밟히면서도 기어이 홀씨를 날리고 있는 그대는 체면과 인기를 위해서만 살아가지 말고 진정한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구석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대일지라도 늘 궁색하지만은 않습니다. 모두가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봄의 축제를 할 때만은 그 누구에게 떨어지지 않을 만큼 예쁘고 샛노란 꽃으로 치장하고 봄을 만끽할 줄도 아는 여유도 부려봅니다.
민들레!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2006. 4. 15.)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현창
그대는 분명 ‘이차돈’이 환생한 것입니다. 신라시대 경주에 절을 짓다가 법흥왕의 명에 따라 순교한 이차돈이 환생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순교 당시 형리가 이차돈의 목을 베자 잘려나간 목에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아올랐으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땅이 진동하더니 비가 뚝뚝 떨어졌다고 전해옵니다. 지금도 민들레의 줄기를 자르면 이차돈의 목에서 솟았던 흰 젖이 줄줄 흐릅니다. 그 젖을 맛보면 그대의 한이 남아 쓰디씁니다.
그대는 나처럼 외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도 늘 골방에서 혼자 상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한 복판보다는 구석진 곳을 찾아 앉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진정 나의 가슴속엔 외로운 영혼이 숨쉬고 있나 봅니다. 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울타리 밑이 아니면 화단 경계석 구석에서나 그대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른 잡초들처럼 잘 가꾸어진 화단 가운데에 자리잡지 못하고, 늘 구석진 곳만 차지하는 그대의 영혼 또한 외로운 영혼입니다.
그대의 끈질긴 생명력은 나의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한국전쟁을 치르고 한없이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오면서도 6남매를 키워낸 억척스런 어머니 말입니다. 보릿고개를 넘을 때는 오직 집에서 배고파 울고 있을 자식들 생각에 온 산과 들을 헤매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버렸죠.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온 어머니는 그대에게서 질긴 삶을 배웠나 봅니다. 땅바닥에 바짝 붙어 뻗어 가는 창같이 뾰쪽한 잎을 보면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김을 매다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닮았습니다. 좁은 구석에서 꽃을 피우려고 쭉 내민 꽃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자식을 기다리며 길어진 어머니의 목이었습니다. 홀씨를 바람에 날려보내는 그대의 맘도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마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싸리문 뒤에서 흐르는 눈물을 행주치마로 닦아내며 오직 자식들의 행복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 말입니다.
민들레라 불리는 그대를 보면 한없이 숙연해집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무런 불평도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대가 속삭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못살겠다고 투덜대는 나에게 세상이란 살만한 곳이라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라고 말해줍니다. 어느 누구 보아주는 사람 없고, 길가는 사람들에게 수없이 밟히면서도 기어이 홀씨를 날리고 있는 그대는 체면과 인기를 위해서만 살아가지 말고 진정한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구석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대일지라도 늘 궁색하지만은 않습니다. 모두가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봄의 축제를 할 때만은 그 누구에게 떨어지지 않을 만큼 예쁘고 샛노란 꽃으로 치장하고 봄을 만끽할 줄도 아는 여유도 부려봅니다.
민들레!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2006.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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