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노래

2006.04.15 11:16

최선옥 조회 수:48 추천:14

  4월의 노래
         -한바탕 웃음으로-
               전북대학교 평생교욱원 수필 창작반 최선옥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새벽인데 난데없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놀라 잠에서 깨어 더듬더듬 수화기를 찾는 손에 경련이 일었다. 아직 시어머니가 고향에 혼자 계시기 때문에 이렇게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나를 놀라게 한다.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나를 긴장시킨다. 수화기에서는 의외로 약간 흥분한 듯한 아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엄마 나 복권에 당첨되었어! 자그마치 2,000만원이야. 너무너무 좋고 또 믿어지지 않아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고 엄마한테 제일 먼저 알리는 거야!"

아직 수화기에서는 흥분한 아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나는 멍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충 그 돈을 어떻게 나눠 줄 건지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내게 절반을 주겠다는 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이제 40을 바라보는 아들이고 자기도 아들 둘을 둔 아버지인데도 아직도 나를 엄마라 부른다. 아들에게 언제까지 엄마라고 할 것이냐고 어른답게 호칭을 바꾸라고 했더니 아들도 수긍이 가는지 "어머니!" 하고 정중히 불렀다. 그런데 어쩐지 어색하여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아들 역시 그랬는지, 슬그머니 다시 엄마라 불렀다. 아들은 성격이 원만하고 사람들과 사귀기를 좋아해서 사회생활을 두루두루 잘하고 있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자하는 의욕적이거나 진취적으로 노력하는 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에선 주어진 일은 별 무리 없이 하는 모양이다.

기타를 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고 구성지게 불러대는 노래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에 안 넘어갈 수 있으랴. 그래 어느 모임에서든지 인기를 독차지해서 주말이면 늘 바쁘단다. 밖에서 인기 있는 사람들 치고 집에서 잘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가끔 며느리는 속상한다며 이야기한다. 자기 주제를 모르는 카드사용이나 동창회 회장을 맡으면서 여기저기 나가는 돈이 수월치 않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컴퓨터 앞에 앉아 동창들과 채팅하느라 정신이 없단다. 이런 철부지 아들이니 참 한심할 수밖에.

지금도 내가 후회하는 것은 방위근무를 하게 한 일이다. 그때 난 꼭 군대에 보내려고 했으나 시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를 꺾을 수가 없었다. 나를 독하고 매정한 어미라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려고 한다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자리에 누워 버리시니 내가 기권할 수밖에. 아들도 얼씨구 좋은 기회라 합세하니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그냥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방위를 받으면서도 탁월한 놀이실력을 발휘해서 군인들 위문하는 곳에 차출되어 기타를 메고 나가니 정말 한량이 따로 없었다.

기타로 내 속을 썩인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디서 났는지 기타를 가지고 연습한다고 하더니 한 일년 후에는 아예 공부는 집어치우고 기타연습에 전념하였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하루는 책을 몽땅 마당에 쌓아놓고 막 불을 붙이려는 순간, 내 몸을 던지듯 책 위에 엎드려서 간신히 막은 적도 있었다.  
  아주 기가 막힌 것은 대학입학시험을 앞둔 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우리 내외는 며칠 전부터 신경을 곤두세워 아들이 절대 외출을 못하게 하려고 온갖 협박과 위협을 했으나 열 사람이 한 사람 도둑을 못 지킨다는 말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빠져나갔다. 온 시내를 뒤졌으나 어찌 찾을 수가 있겠는가. 다음날 새벽 몰래 담을 넘어 들어온 아들에게 남편은 싸늘한 시선으로 한 마디 말도 없이 외면해 버리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러자 아들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꾸역꾸역 꺼내더니 내게 불쑥 내밀었다. 나는 기가 막혔다. 누가 너더러 돈 벌어 오랬느냐고 악을 썼더니, 자기 친구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서 친구를 돕기 위해 음악다방에서 연주를 했단다.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이런 아들이니 아버지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아버지는 학문만 하는 골수 학자이며 아들이 다니는 대학의 교수이니까. 대학 축제 때마다 아들의 기타솜씨를 칭찬하는 동료 교수들의 말이 듣기 싫어서 사표라도 내야겠다고 한숨을 쉬곤 했었다. 이런 아들을 보고 남들은 근사한 아들이라고 하지만  정작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그래도 요즈음에는 그 기타 치는 솜씨로 교회에서 찬양을 리드한다니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들이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에 한참 멍해 있다가 나는 다시 아들에게 다이얼을 돌렸다. 너의 장모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그리고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 헌금을 바치고 네 처에게 근사한 옷 한 벌 사주고 보약도 지어 먹이라고. 또 시집간 여동생도 생각하고…….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웃음을 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너무 좋아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하며 아침이 되자 딸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그만 딸이 폭소를 터트렸다. 오늘이 만우절 아니냐며 엄마는 4월의 바보라고 놀렸다. 옆에서 남편도 박장대소를 하며 그 유명한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이렇게 나의 4월의 노래는 바보노래로 시작되었지만 이 화창한 4월을 맞아 다음엔 어떤 멋진 노래를 듣게 죌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