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과 어머니
2006.04.21 06:53
통닭과 어머니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황점숙
음식에 대한 향수는 늘 잊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 유년시절 귀한 만큼 맛 또한 일품이었던 닭고기는 지금도 즐겨 먹지만 그때 먹던 맛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늦은 저녁 남편과 맥주 한 잔을 즐길 때나, 갑자기 찾아 온 손님과 술 한 잔 할 때도 단골 메뉴 1위가 통닭이다. 요즘은 전화 한 통이면 따끈따끈한 통닭이 신속하게 배달된다. 내가 어릴 때 닭고기를 먹는 날은 집안 가득 고기 냄새에 군침을 삼켜가며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고, 그 날은 바로 건강을 챙기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으레 망태기를 둘러메고 꼴을 베러가거나 갈퀴를 들고 산으로 땔감나무를 하러 갔지만 친구들과 달리 나는 어린 동생들과 집에 남아서 어머니의 심부름을 했었다. 첫 번째 임무는 마당 덫가리 속에 있던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닭을 채갈 '살가지'나 '매'로부터 암탉과 병아리를 지키기 위해 해질 때까지 마당에서 놀곤 했다. 해질 무렵이면 한나절 내내 온 집안을 운동장 삼아 몰려다니던 병아리들이 마루와 토방 곳곳에 싼 닭똥을 깨끗이 치워야 했고, 어느 순간 '꼬꼬댁' 암탉이 알 낳는 소리가 들리면 계란을 꺼내 살강에 있는 소쿠리에 모아뒀다. 날마다 대여섯 개의 계란이 소쿠리에 모아지면, 초저녁쯤 면장 아저씨 아들이 돈을 들고 와서 계란을 두 세 알씩 사갔다. 면장 님은 아침마다 우리 마을의 유일한 오토바이를 '부릉부릉' 요란하게 타고 출근하셨는데, 건강을 위해 아침에 날계란을 한 알씩 드신다고 하셨다.
우리가족 누구도 면장 님처럼 날마다 날계란을 먹진 못했지만, 뜸이 드는 밥솥에 쪄낸 계란찜을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가끔 아침밥을 짓는 부엌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어머니를 졸라 봤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껴야 잘 산다면서 우리를 다독이실 뿐 계란찜은 쉽게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계란은 생활비를 충당하는 생산물이었지, 입맛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옆집에 팔고 남은 계란은 날마다 소금 독에 한 알 두 알씩 모아졌다. 어머니는 장날 지푸라기로 한 줄씩 엮은 계란을 곡식과 함께 팔러 가셨다. 가끔 생선 몇 마리를 사오기도 하셨지만, 우리 집 생활비였으니, 계란은 늘 신주단지처럼 아꼈다.
하지만 일년에 딱 한번 아버지 생신 날이면 계란도 아닌 애지중지 기르던 씨암탉을 잡는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닭장에 들어가 살이 통통한 닭을 한 마리 잡아주시면, 어머니는 뜨거운 물에 담근 뒤 털을 뽑아내고 가마솥에 푹 삶으셨다. 솥에서 건진 닭은 살코기를 발라낸 뒤 다시 가마솥 가득 미역국을 끓이셨다. 온 집안 가득 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가마솥에서 미역국이 맛있게 끓기 시작하면 부엌 앞을 서성이던 우리 남매들 발걸음이 바빠졌다. 요동치는 시장기를 참으며 오빠는 큰집 작은집으로 나는 앞집 뒷집으로 뛰어 다니며 어르신들 진지 잡수러 오시라는 심부름을 했다. 심부름하는 발걸음은 닭고기를 먹을 설렘에 허기진 것도 잊은 채 빠르게 움직였다. 가슴을 설레게 하던 닭고기 미역국과 다른 때보다 보리가 덜 섞인 하얀 쌀밥을 뚝딱 먹어 치웠다. 어느새 그 많던 가마솥의 고깃국은 손님상에 몇 그릇 올리고 나면 금방 바닥을 보였다. 오랜만에 먹은 기름진 음식에 뱃속이 놀랐는지 설사를 하기도 했다. 아쉬움에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을까 싶어 부엌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 남매들 속내를 눈치 채신 아버지는 애들이 고깃국을 밝히면 버르장머리 없는 거라며 나무라셨다. 지금 아이들에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음식이 귀하던 시절 우리 남매들은 두말없이 아버지 말씀을 따랐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큰 도시로 가게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 생신도 아닌데 어느 날 씨암탉을 잡으셨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한 동네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오는 길인데, 골목 끝에서부터 맛있는 닭고기 냄새가 진동하였다. 오늘은 또 누구네 집 어르신 생신 날인가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연기가 자욱한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던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매캐한 연기로 꽉 찬 부엌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무를 썰던 칼을 놓고 가마솥을 열고 삶은 닭을 꺼내 맛있는 닭다리를 쭉 찢어 부뚜막의 소금과 함께 먹으라고 주셨다. 아궁이 앞에다 자리를 만들어 주시며 동생들 오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채근하셨다. 쪼그리고 앉아 뜨거운 닭다리를 먹고 있는 내게 연신 살코기를 발라 주셨다. 행여 동생들이 보고 달려들세라 몸으로 가려가며 고기를 접시에 가득 담아 주셨다. 그 날 저녁 우리 가족은 무를 썰어 넣고 끓인 시원한 닭고깃국을 한 그릇씩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자취생활을 했다. 주인집 부엌 한 구석에 아궁이가 있고, 한쪽 벽에 찬장 하나를 놓고 밥을 해먹는 누추한 살림이었다. 매달 먹을 쌀과 생활비를 조금 타오면 제일 먼저 연탄을 샀다. 남은 돈은 도시락 반찬 몇 가지 사느라 아끼며 살았다. 2년째 되던 해 월동준비로 연탄 50장을 들여놓고 난 다음날이었다. 자정 무렵 새로 들인 젖은 연탄으로 탄불을 갈아 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났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마루로 나서긴 했는데 그 다음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싱건지 국물을 마시고, 가까스로 정신은 차렸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 저녁 늦게 연탄불을 갈아 놓고 자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탓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조퇴를 하고 쓸쓸히 자취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고향집과 가족 생각에 눈물만 볼을 타고 흘렀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있을 때 꿈속처럼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가 김장한 김치를 한 통 머리에 인 채 방문을 열고 서 계셨다.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 주신 주인아주머니께 들었는지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지으셨다.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다면서 김치 통을 내려놓자마자 선걸음에 되돌아 나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오셨다. 어머니는 방 자리를 걷고 방바닥 여기저기에 금이 간 자리를 시멘트로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하셨다. 방바닥 구석구석을 살펴가며 서툰 미장일을 하시면서 다 키운 딸 잃을 뻔했다며, 한 숨 더 자라고 하시더니 다시 밖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따끈따끈한 밥을 짓고 김장 김치를 쭉쭉 찢어 양푼 채 밥상에 올려 방에 들어 놓으신 뒤 국을 솥 단지 채 들고 들어오셨다. 공부하려다 제명대로 못 살겠다며 솥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와 함께 뿌옇게 올라오는 김 사이로 통닭 한 마리가 나타났다. 식기 전에 먹으라고 친구와 내 앞으로 연신 살코기를 발라주셨다. 2년 전 공부하러 객지로 떠나려는 딸 건강을 생각해 닭고기를 챙겨 먹이셨던 어머니는 연탄가스를 먹고 축 늘어진 딸의 몸보신을 위해 닭을 삶아 주신 것이다.
그 날 먹었던 닭고기는 인삼 한 뿌리도, 흔한 대추 한 알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넘어, 내겐 몸과 마음을 살찌운 귀한 보약이었다. 나 어렸을 때 당신 입에 고기 한 점 넣지 못하시고 내게만 한 점이라도 더 먹여 주셨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면서, 주신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내 솜씨로 백숙요리와 닭 매운탕을 직접 만들어 드렸었다. 어머니께서 내 건강을 챙겨 주셨듯이 연로하신 어머니의 건강을 지켜 드리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요즘도 가끔 친정어머니가 오시는 날은 빼 놓지 않고 구수한 통닭을 시켜 반주를 한 잔 따라 드리며, 지난 시절 이야기를 또 다른 안주 삼아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황점숙
음식에 대한 향수는 늘 잊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 유년시절 귀한 만큼 맛 또한 일품이었던 닭고기는 지금도 즐겨 먹지만 그때 먹던 맛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늦은 저녁 남편과 맥주 한 잔을 즐길 때나, 갑자기 찾아 온 손님과 술 한 잔 할 때도 단골 메뉴 1위가 통닭이다. 요즘은 전화 한 통이면 따끈따끈한 통닭이 신속하게 배달된다. 내가 어릴 때 닭고기를 먹는 날은 집안 가득 고기 냄새에 군침을 삼켜가며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고, 그 날은 바로 건강을 챙기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으레 망태기를 둘러메고 꼴을 베러가거나 갈퀴를 들고 산으로 땔감나무를 하러 갔지만 친구들과 달리 나는 어린 동생들과 집에 남아서 어머니의 심부름을 했었다. 첫 번째 임무는 마당 덫가리 속에 있던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닭을 채갈 '살가지'나 '매'로부터 암탉과 병아리를 지키기 위해 해질 때까지 마당에서 놀곤 했다. 해질 무렵이면 한나절 내내 온 집안을 운동장 삼아 몰려다니던 병아리들이 마루와 토방 곳곳에 싼 닭똥을 깨끗이 치워야 했고, 어느 순간 '꼬꼬댁' 암탉이 알 낳는 소리가 들리면 계란을 꺼내 살강에 있는 소쿠리에 모아뒀다. 날마다 대여섯 개의 계란이 소쿠리에 모아지면, 초저녁쯤 면장 아저씨 아들이 돈을 들고 와서 계란을 두 세 알씩 사갔다. 면장 님은 아침마다 우리 마을의 유일한 오토바이를 '부릉부릉' 요란하게 타고 출근하셨는데, 건강을 위해 아침에 날계란을 한 알씩 드신다고 하셨다.
우리가족 누구도 면장 님처럼 날마다 날계란을 먹진 못했지만, 뜸이 드는 밥솥에 쪄낸 계란찜을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가끔 아침밥을 짓는 부엌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어머니를 졸라 봤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껴야 잘 산다면서 우리를 다독이실 뿐 계란찜은 쉽게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계란은 생활비를 충당하는 생산물이었지, 입맛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옆집에 팔고 남은 계란은 날마다 소금 독에 한 알 두 알씩 모아졌다. 어머니는 장날 지푸라기로 한 줄씩 엮은 계란을 곡식과 함께 팔러 가셨다. 가끔 생선 몇 마리를 사오기도 하셨지만, 우리 집 생활비였으니, 계란은 늘 신주단지처럼 아꼈다.
하지만 일년에 딱 한번 아버지 생신 날이면 계란도 아닌 애지중지 기르던 씨암탉을 잡는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닭장에 들어가 살이 통통한 닭을 한 마리 잡아주시면, 어머니는 뜨거운 물에 담근 뒤 털을 뽑아내고 가마솥에 푹 삶으셨다. 솥에서 건진 닭은 살코기를 발라낸 뒤 다시 가마솥 가득 미역국을 끓이셨다. 온 집안 가득 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가마솥에서 미역국이 맛있게 끓기 시작하면 부엌 앞을 서성이던 우리 남매들 발걸음이 바빠졌다. 요동치는 시장기를 참으며 오빠는 큰집 작은집으로 나는 앞집 뒷집으로 뛰어 다니며 어르신들 진지 잡수러 오시라는 심부름을 했다. 심부름하는 발걸음은 닭고기를 먹을 설렘에 허기진 것도 잊은 채 빠르게 움직였다. 가슴을 설레게 하던 닭고기 미역국과 다른 때보다 보리가 덜 섞인 하얀 쌀밥을 뚝딱 먹어 치웠다. 어느새 그 많던 가마솥의 고깃국은 손님상에 몇 그릇 올리고 나면 금방 바닥을 보였다. 오랜만에 먹은 기름진 음식에 뱃속이 놀랐는지 설사를 하기도 했다. 아쉬움에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을까 싶어 부엌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 남매들 속내를 눈치 채신 아버지는 애들이 고깃국을 밝히면 버르장머리 없는 거라며 나무라셨다. 지금 아이들에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음식이 귀하던 시절 우리 남매들은 두말없이 아버지 말씀을 따랐다.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큰 도시로 가게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 생신도 아닌데 어느 날 씨암탉을 잡으셨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한 동네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오는 길인데, 골목 끝에서부터 맛있는 닭고기 냄새가 진동하였다. 오늘은 또 누구네 집 어르신 생신 날인가 생각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는데, 연기가 자욱한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던 어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매캐한 연기로 꽉 찬 부엌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는 무를 썰던 칼을 놓고 가마솥을 열고 삶은 닭을 꺼내 맛있는 닭다리를 쭉 찢어 부뚜막의 소금과 함께 먹으라고 주셨다. 아궁이 앞에다 자리를 만들어 주시며 동생들 오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채근하셨다. 쪼그리고 앉아 뜨거운 닭다리를 먹고 있는 내게 연신 살코기를 발라 주셨다. 행여 동생들이 보고 달려들세라 몸으로 가려가며 고기를 접시에 가득 담아 주셨다. 그 날 저녁 우리 가족은 무를 썰어 넣고 끓인 시원한 닭고깃국을 한 그릇씩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자취생활을 했다. 주인집 부엌 한 구석에 아궁이가 있고, 한쪽 벽에 찬장 하나를 놓고 밥을 해먹는 누추한 살림이었다. 매달 먹을 쌀과 생활비를 조금 타오면 제일 먼저 연탄을 샀다. 남은 돈은 도시락 반찬 몇 가지 사느라 아끼며 살았다. 2년째 되던 해 월동준비로 연탄 50장을 들여놓고 난 다음날이었다. 자정 무렵 새로 들인 젖은 연탄으로 탄불을 갈아 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났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가려고 마루로 나서긴 했는데 그 다음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싱건지 국물을 마시고, 가까스로 정신은 차렸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 저녁 늦게 연탄불을 갈아 놓고 자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탓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조퇴를 하고 쓸쓸히 자취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고향집과 가족 생각에 눈물만 볼을 타고 흘렀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있을 때 꿈속처럼 어머니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가 김장한 김치를 한 통 머리에 인 채 방문을 열고 서 계셨다. 초인종 소리에 대문을 열어 주신 주인아주머니께 들었는지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지으셨다.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다면서 김치 통을 내려놓자마자 선걸음에 되돌아 나가 작은 보따리를 들고 오셨다. 어머니는 방 자리를 걷고 방바닥 여기저기에 금이 간 자리를 시멘트로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하셨다. 방바닥 구석구석을 살펴가며 서툰 미장일을 하시면서 다 키운 딸 잃을 뻔했다며, 한 숨 더 자라고 하시더니 다시 밖으로 나가셨다. 잠시 후 따끈따끈한 밥을 짓고 김장 김치를 쭉쭉 찢어 양푼 채 밥상에 올려 방에 들어 놓으신 뒤 국을 솥 단지 채 들고 들어오셨다. 공부하려다 제명대로 못 살겠다며 솥뚜껑을 열자 맛있는 냄새와 함께 뿌옇게 올라오는 김 사이로 통닭 한 마리가 나타났다. 식기 전에 먹으라고 친구와 내 앞으로 연신 살코기를 발라주셨다. 2년 전 공부하러 객지로 떠나려는 딸 건강을 생각해 닭고기를 챙겨 먹이셨던 어머니는 연탄가스를 먹고 축 늘어진 딸의 몸보신을 위해 닭을 삶아 주신 것이다.
그 날 먹었던 닭고기는 인삼 한 뿌리도, 흔한 대추 한 알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넘어, 내겐 몸과 마음을 살찌운 귀한 보약이었다. 나 어렸을 때 당신 입에 고기 한 점 넣지 못하시고 내게만 한 점이라도 더 먹여 주셨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면서, 주신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내 솜씨로 백숙요리와 닭 매운탕을 직접 만들어 드렸었다. 어머니께서 내 건강을 챙겨 주셨듯이 연로하신 어머니의 건강을 지켜 드리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요즘도 가끔 친정어머니가 오시는 날은 빼 놓지 않고 구수한 통닭을 시켜 반주를 한 잔 따라 드리며, 지난 시절 이야기를 또 다른 안주 삼아 밤새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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