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탓
2006.04.18 07:31
세상 탓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1. 여자의 변명
내장산을 넘을 때부터 내리던 비가 고산지대인 순창 복흥면을 지나면서부터 더욱 드세게 내리고 있다. 4월 중순이건만 바람과 함께 퍼붓는 빗줄기는 차안에까지 한기를 느끼게 하였다. 히터를 틀고 좌석의 열선에도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오가는 차도 별로 없어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멀리서 웬 남자가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순간 엄청난 갈등에 휩싸인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까지 맞아 추울 텐데 태워줄까? 그런데 나 혼자인데 낯선 남자를 어떻게 태우지? 혹 저 남자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남자는 내 차를 향해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다. 차는 어느 새 남자 앞을 지나쳤다. 검정 점퍼에 노트북을 담은 듯 보이는 가방을 들고 있다. 갈등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사내의 앞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룸미러로 힐끗 보니 사내는 허탈한 자세로, 그냥 가버린 차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차가 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자신을 태워줄 차를 기다리고 있다.
무심결에 브레이크에 발이 갔었나 보다. 움찔하며 차가 멈춰 섰다. 다른 차를 기다리던 사내가 몸을 돌려 내 차를 바라보았다. 멈춰 섰음을 확인했는지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순간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여자 혼자인 차안에 낯선 남자를 태운다는 것은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내는 멈추었다가 사라진 차를 향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결코 이건 마음 편하려고 하는 변명은 아니다. 그런데 왜 비를 맞고 손을 들던 남자가 성경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으로 부각이 될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에게, 나는 예배드리러 가는 바쁜 몸이니 뒷사람에게 구조 받으라던 제사장이 바로 나라는 생각까지 들다니……. 하지만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마음은 다소 찜찜하지만 태워줬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어찌 알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세상 탓이다.
2. 남자의 변명
주일날이라 교회에 가려고 나섰다. 일찍 서둘러 나왔는데 예정된 시간에 버스가 오질 않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느닷없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도 없는데 비를 피할 장소라곤 없다. 간간이 지나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누군가 한 사람쯤은 태워 주겠지 기대하며…….
비바람을 맞으며 손을 들어 보건만 그냥 가버린 차가 벌써 몇 대째인지 모른다. 이미 예배시간은 늦었다. 그렇다고 한참을 걸어서 겨우 큰길까지 나왔는데 도로 집으로 갈 수도 없다. 더구나 오늘은 오후 2시에 어린이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지나는 승용차마다 대부분 빈자리들이 눈에 띄지만 차를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이 하도 험해서 아무나 태울 수 없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차가 지나면서 단 한 대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일뿐이다.
아직 새 것임이 분명한 은색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이미 젖어버린 옷 속으로 한기가 파고들어 이빨이 딱딱 마주친다. 좀 전보다 더 다급한 손짓을 해댄 것 같다. 가까이 온 차의 운전자가 여자, 그것도 혼자임을 확인하였을 때 나는 철저히 기대를 버렸다. 역시나 그냥 가버리는 듯했다. 그런데 십여 미터를 지나친 차가 갑자기 급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여자 혼자라는 상황에 선뜻 발을 옮기지 못하고 겨우 한 발짝을 옮겼다. '저 여자가 요새 말하는 꽃뱀이면 어쩌지? 요즘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위험인물이 많다는데. 에이! 내가 스스로 조심하면 되지. 시간도 바쁘지만 너무 춥다. 점잖게 행동하면 될 꺼야.' 짧은 순간 멈칫거리며 한 발을 내밀며 믿을 수 없는 여자에 대해 꽤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겨우 한발을 옮기었는데 차가 숨가쁜 소리를 내지르며 급히 앞으로 달려가 버렸다. '참나! 안 태워줄 거면 차를 왜 세웠을까? 그 여자는 꽃뱀이 분명해. 차를 세우고 나를 살펴보니 가진 게 없어 보여서 그냥 가버린 게 분명해. 아쉽다고 탔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어떻게 알아? 안 타길 잘했지. 그녀가 나쁜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문제야.'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1. 여자의 변명
내장산을 넘을 때부터 내리던 비가 고산지대인 순창 복흥면을 지나면서부터 더욱 드세게 내리고 있다. 4월 중순이건만 바람과 함께 퍼붓는 빗줄기는 차안에까지 한기를 느끼게 하였다. 히터를 틀고 좌석의 열선에도 전원 스위치를 넣었다.
오가는 차도 별로 없어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멀리서 웬 남자가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순간 엄청난 갈등에 휩싸인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까지 맞아 추울 텐데 태워줄까? 그런데 나 혼자인데 낯선 남자를 어떻게 태우지? 혹 저 남자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남자는 내 차를 향해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다. 차는 어느 새 남자 앞을 지나쳤다. 검정 점퍼에 노트북을 담은 듯 보이는 가방을 들고 있다. 갈등하는 마음 때문에 나는 사내의 앞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룸미러로 힐끗 보니 사내는 허탈한 자세로, 그냥 가버린 차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차가 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자신을 태워줄 차를 기다리고 있다.
무심결에 브레이크에 발이 갔었나 보다. 움찔하며 차가 멈춰 섰다. 다른 차를 기다리던 사내가 몸을 돌려 내 차를 바라보았다. 멈춰 섰음을 확인했는지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순간 거칠게 엑셀을 밟았다. 여자 혼자인 차안에 낯선 남자를 태운다는 것은 호랑이 입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다름이 없다. 사내는 멈추었다가 사라진 차를 향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결코 이건 마음 편하려고 하는 변명은 아니다. 그런데 왜 비를 맞고 손을 들던 남자가 성경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으로 부각이 될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에게, 나는 예배드리러 가는 바쁜 몸이니 뒷사람에게 구조 받으라던 제사장이 바로 나라는 생각까지 들다니……. 하지만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마음은 다소 찜찜하지만 태워줬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어찌 알 것인가? 믿을 수 없는 세상 탓이다.
2. 남자의 변명
주일날이라 교회에 가려고 나섰다. 일찍 서둘러 나왔는데 예정된 시간에 버스가 오질 않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느닷없이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산도 없는데 비를 피할 장소라곤 없다. 간간이 지나는 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누군가 한 사람쯤은 태워 주겠지 기대하며…….
비바람을 맞으며 손을 들어 보건만 그냥 가버린 차가 벌써 몇 대째인지 모른다. 이미 예배시간은 늦었다. 그렇다고 한참을 걸어서 겨우 큰길까지 나왔는데 도로 집으로 갈 수도 없다. 더구나 오늘은 오후 2시에 어린이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지나는 승용차마다 대부분 빈자리들이 눈에 띄지만 차를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이 하도 험해서 아무나 태울 수 없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차가 지나면서 단 한 대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일뿐이다.
아직 새 것임이 분명한 은색 차 한 대가 다가왔다. 이미 젖어버린 옷 속으로 한기가 파고들어 이빨이 딱딱 마주친다. 좀 전보다 더 다급한 손짓을 해댄 것 같다. 가까이 온 차의 운전자가 여자, 그것도 혼자임을 확인하였을 때 나는 철저히 기대를 버렸다. 역시나 그냥 가버리는 듯했다. 그런데 십여 미터를 지나친 차가 갑자기 급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여자 혼자라는 상황에 선뜻 발을 옮기지 못하고 겨우 한 발짝을 옮겼다. '저 여자가 요새 말하는 꽃뱀이면 어쩌지? 요즘엔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위험인물이 많다는데. 에이! 내가 스스로 조심하면 되지. 시간도 바쁘지만 너무 춥다. 점잖게 행동하면 될 꺼야.' 짧은 순간 멈칫거리며 한 발을 내밀며 믿을 수 없는 여자에 대해 꽤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겨우 한발을 옮기었는데 차가 숨가쁜 소리를 내지르며 급히 앞으로 달려가 버렸다. '참나! 안 태워줄 거면 차를 왜 세웠을까? 그 여자는 꽃뱀이 분명해. 차를 세우고 나를 살펴보니 가진 게 없어 보여서 그냥 가버린 게 분명해. 아쉽다고 탔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어떻게 알아? 안 타길 잘했지. 그녀가 나쁜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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