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현실 사이
2006.04.19 06:16
추억과 현실 사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내가 가장 행복한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나는 지금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봄의 평화를 바라보며 한없는 평안을 누리고 있다.
저 봄 뜰에는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벚꽃이며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한 쌍의 청춘 남녀가 정원의 벤치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속삭인다. 엊그제, 내 숨통을 조이며 가슴을 짓누르던 그 지옥 같은 황사가 걷히고, 지금은 전형적인 봄 하늘이 수정같이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깨어나는 순간에 이 평안은 산산이 부서져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런데 내가 누리는 이 평안을 깨뜨려 허공에 날려버리려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살다 보면, 삶의 부스러기 같은 많은 기억 중에는 질기게도 오래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아픈 기억이라면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이야 오래도록 아끼며 간직하고 싶지 않겠는가. 미움도 변하면 사랑이 된다고 하였던가. 그런데 그 뜻이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심사인고? 세월이란 것이 사랑과 미움만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석 같은 추억도 때로는 인생의 짐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어쩌면 내 추억의 창고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아름다운 기억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기억 중의 하나는 지난날 고향의 모습이다. 마을 멀리 흐르는 금강(錦江)은 이름 그대로 비단 같은 강이었다. 물길은 큰 계곡을 나와서 너른 뜰을 감고 돌다가 다시 깊은 계곡으로 사라진다. 강물은 그대로 퍼먹을 수 있는 옥수(玉水)였다. 어디 한 점의 티가 묻었을까. 웬만한 깊이는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그 물 속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은 보석과 같았다. 강은 수량도 풍부해서 항상 나룻배가 오가며 나그네의 발 품을 덜어 주었다. 겨울이 되면 그 큰 강이 꽁꽁 얼어서 사람들은 조심조심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넜다. 강변으로부터 시작된 토지는 동네 앞까지 펼쳐져 넓고 비옥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을 연명해주는 양식이었다. 그때는 큰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봄이면 새싹이 움터 녹음이 우거지고 산토끼가 뛰놀았다. 그리고 여름이면 시원한 강바람이 마을의 더위를 식혀주고는 산으로 오른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한가운데로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그리고 냇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돌을 가지런히 쌓아 만든 동네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콸콸 솟았고, 그것은 온 동네 사람들의 생명수였다. 동네 인심이야, 일이십 리 떨어진 마을도 이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니 서로 얼굴 한 번 붉힐 일이 있었을까.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이다. 이제 그 모습은 다 변하고 아주 낯설게 달라졌다. 그리고 그 맑던 강물은 탁하고 우중충한 빛으로 변해 버렸다. 산천도 많이 변했고, 그때의 사람도 간 곳이 없다. 그곳은 이제 영원한 추억 속의 고향일 뿐이다. 그래도 내게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아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나의 보배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나와 고향을 연결해 주는 본적지만은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다. 나의 뿌리는 부정할 수 없는 시골이며,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이다.
내가 도시에서 살게 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이다. 반세기나 되는 세월을 도시에서 살았으니 나는 도시인임이 틀림없다. 나는 도시의 편리한 생활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점차 나이가 들면서 도시와 시골이 비교되고, 도시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 속에는 갖가지 생활 소음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그 심한 소음도 이제 만성이 되어 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내가 마시는 탁한 공기는 항상 건강을 위협한다. 도시의 교통은 자주 숨통이 막히고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동네이다. 나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30가구가 사용하는 한 통로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서로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개인적인 삶이며, 인정이 메마르고 건조한 삶의 공간일 뿐이다.
내가 서울에서 생활할 때에 그 매캐한 공기와 심한 차량정체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 번은 친구에게 왜 이런 서울에서 살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서울이 아니면 갑갑하고 심심할 것 같아서 감히 떠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하노라고 했다. 나는 이제 그가 완전히 서울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생각해봤다. 그러자 내 추억 속의 정다운 고향모습이 제일 먼저 다가왔다. 그 품속에 묻혀서 조용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여유롭고 평안하게 새로운 삶을 살 것만 같다. 그런 생각에 선뜻 내가 긍정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나는 완전한 도시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그야말로 겉만 바뀐 얼치기 도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골생활에 대한 상상을 좀더 구체적인 면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생활 시설이야 편리하게 만들면 되리라. 그러면 무엇으로 하루를 지낼 것인가. 친구는 있는가. 갑자기 병이라도 나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줄줄이 쏟아지는 질문에 시원한 답이 나올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진다. 역시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를 벗어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아내의 생각이 나와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서울 친구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비록 내 뿌리가 시골이라 할지라도 나는 시골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리움의 기억들은 오직 추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그래도 내게는 깊은 사랑의 흔적 같은 향수가 숨쉬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완전한 도시사람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현실과 추억 속을 방황하는 정처 없는 나그네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내가 무념(無念)의 평안 뒤에 올 것을 염려했던, 이유 없는 불안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추억은 항상 마음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아름다운 추억도 때로는 인생의 큰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2006. 4. 12.)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내가 가장 행복한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나는 지금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봄의 평화를 바라보며 한없는 평안을 누리고 있다.
저 봄 뜰에는 파란 새싹이 돋아나고 벚꽃이며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한 쌍의 청춘 남녀가 정원의 벤치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속삭인다. 엊그제, 내 숨통을 조이며 가슴을 짓누르던 그 지옥 같은 황사가 걷히고, 지금은 전형적인 봄 하늘이 수정같이 반짝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깨어나는 순간에 이 평안은 산산이 부서져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런데 내가 누리는 이 평안을 깨뜨려 허공에 날려버리려는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살다 보면, 삶의 부스러기 같은 많은 기억 중에는 질기게도 오래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아픈 기억이라면 다시는 들춰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이야 오래도록 아끼며 간직하고 싶지 않겠는가. 미움도 변하면 사랑이 된다고 하였던가. 그런데 그 뜻이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심사인고? 세월이란 것이 사랑과 미움만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석 같은 추억도 때로는 인생의 짐이 되기도 하는가 보다.
어쩌면 내 추억의 창고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아름다운 기억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기억 중의 하나는 지난날 고향의 모습이다. 마을 멀리 흐르는 금강(錦江)은 이름 그대로 비단 같은 강이었다. 물길은 큰 계곡을 나와서 너른 뜰을 감고 돌다가 다시 깊은 계곡으로 사라진다. 강물은 그대로 퍼먹을 수 있는 옥수(玉水)였다. 어디 한 점의 티가 묻었을까. 웬만한 깊이는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그 물 속에서 반짝이는 조약돌은 보석과 같았다. 강은 수량도 풍부해서 항상 나룻배가 오가며 나그네의 발 품을 덜어 주었다. 겨울이 되면 그 큰 강이 꽁꽁 얼어서 사람들은 조심조심 얼음을 타고 강을 건넜다. 강변으로부터 시작된 토지는 동네 앞까지 펼쳐져 넓고 비옥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을 연명해주는 양식이었다. 그때는 큰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봄이면 새싹이 움터 녹음이 우거지고 산토끼가 뛰놀았다. 그리고 여름이면 시원한 강바람이 마을의 더위를 식혀주고는 산으로 오른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 한가운데로 맑은 시냇물이 흘렀다. 그리고 냇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돌을 가지런히 쌓아 만든 동네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에는 사시사철 약수가 콸콸 솟았고, 그것은 온 동네 사람들의 생명수였다. 동네 인심이야, 일이십 리 떨어진 마을도 이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니 서로 얼굴 한 번 붉힐 일이 있었을까.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이다. 이제 그 모습은 다 변하고 아주 낯설게 달라졌다. 그리고 그 맑던 강물은 탁하고 우중충한 빛으로 변해 버렸다. 산천도 많이 변했고, 그때의 사람도 간 곳이 없다. 그곳은 이제 영원한 추억 속의 고향일 뿐이다. 그래도 내게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아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나의 보배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나와 고향을 연결해 주는 본적지만은 감히 손을 댈 수가 없다. 나의 뿌리는 부정할 수 없는 시골이며,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이다.
내가 도시에서 살게 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이다. 반세기나 되는 세월을 도시에서 살았으니 나는 도시인임이 틀림없다. 나는 도시의 편리한 생활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점차 나이가 들면서 도시와 시골이 비교되고, 도시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 속에는 갖가지 생활 소음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그 심한 소음도 이제 만성이 되어 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내가 마시는 탁한 공기는 항상 건강을 위협한다. 도시의 교통은 자주 숨통이 막히고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동네이다. 나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30가구가 사용하는 한 통로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서로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개인적인 삶이며, 인정이 메마르고 건조한 삶의 공간일 뿐이다.
내가 서울에서 생활할 때에 그 매캐한 공기와 심한 차량정체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 번은 친구에게 왜 이런 서울에서 살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서울이 아니면 갑갑하고 심심할 것 같아서 감히 떠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하노라고 했다. 나는 이제 그가 완전히 서울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생각해봤다. 그러자 내 추억 속의 정다운 고향모습이 제일 먼저 다가왔다. 그 품속에 묻혀서 조용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주 여유롭고 평안하게 새로운 삶을 살 것만 같다. 그런 생각에 선뜻 내가 긍정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나는 완전한 도시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그야말로 겉만 바뀐 얼치기 도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시골생활에 대한 상상을 좀더 구체적인 면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생활 시설이야 편리하게 만들면 되리라. 그러면 무엇으로 하루를 지낼 것인가. 친구는 있는가. 갑자기 병이라도 나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줄줄이 쏟아지는 질문에 시원한 답이 나올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진다. 역시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를 벗어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아내의 생각이 나와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서울 친구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비록 내 뿌리가 시골이라 할지라도 나는 시골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그리움의 기억들은 오직 추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
그래도 내게는 깊은 사랑의 흔적 같은 향수가 숨쉬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완전한 도시사람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현실과 추억 속을 방황하는 정처 없는 나그네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내가 무념(無念)의 평안 뒤에 올 것을 염려했던, 이유 없는 불안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추억은 항상 마음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아름다운 추억도 때로는 인생의 큰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200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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