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그 두 얼굴

2006.04.15 08:38

박정순 조회 수:59 추천:15

그늘, 그 두 얼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박정순




   점심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이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켜고 싶을 정도였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그늘진 곳을 찾느라 돌아봤지만 그런 곳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차를 세우려고 했는데 기온이 오르자 그늘을 찾게 되었다.
문득 이 세상에 그늘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 그늘이 없다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을 견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늘이 없는 사막에서는 그늘 없이 여름을 지낸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고통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름에 꼭 필요한 것이 그늘인데도 우리 생각 속의 그늘은 시원하기보다 어둡고 소외된 면을 표현하는데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늘을 말할 때 시원함부터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현상은 그늘을 겨울과 연관시켜 어두운 면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철의 그늘을 표현할 때는 단 한 가지 시원한 그늘이라는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은 없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나쁜 의미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그늘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의 어두운 그늘, 소외되고 그늘진 곳, 마음의 그늘, 그늘지고 음습한 곳 등 부정적인 면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 더 많은 것 같다.

여름에는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것이 그늘인데도 그늘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사계절 중에 그늘이 필요한 때는 여름 한 철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봄과 가을에는 그늘이 거의 필요 없고, 밤이나 구름이 낀 날에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겨울에는 오히려 그늘이 피해를 주는 우리나라의 계절적인 특성을 생각하면 그늘이 푸대접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그늘을 필요로 하든지 필요로 하지 않든지 이 세상에 그늘이 없는 곳은 없다. 빛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그늘이 존재한다. 자연이나 사물이 만들어 내는 그늘도 있지만 사람들이 마음으로 만드는 그늘도 있다. 어떤 물체든지 빛이 비취면 그림자가 생기고 그림자를 다른 말로 바꾸면 그늘이 된다. 그늘은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빛에 따라 움직이며 빛이 없는 곳에서는 존재하지 못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 세상에 그늘이 없다면 밤과 낮의 구분이 없을 것이다. 자전축이 23.5˚기울어진 지구가 자전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돌면 하루가 지나간다. 지구가 자전을 할 때 태양의 빛이 가려져 그늘진 쪽에 위치한 곳은 밤이 되어 어둡다. 자전을 하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돌면 1년이 된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을 하면서 계절을 만들고 자전을 하면서 낮과 밤을 만들기 때문에 지구에 사람과 생물이 존재할 수 있다.

지난여름 휴가 때, 우리 고장 장수 방화동휴양림을 찾았을 때였다. 숙소 앞을 흐르는 물과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물 속에서 더위를 식히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물 속에서 나왔을 때 쉴 수 있는 그늘이 없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물가 위치 좋은 그늘을 차지해버려서 우리는 쉴 수 있는 그늘을 차지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후텁지근한 숙소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오후에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물가의 그늘 좋은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그 덕에 다음날은 하루 종일 물이 흐르는 개울가 그늘에서 휴가를 즐길 수가 있었다. 더위가 느껴지면 물 속에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고 나와 그늘에서 식사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신선 같은 하루를 지냈다. 그 날 돗자리가 깔린 시원한 그늘에 누워서 나는 지금까지 어떤 그늘의 도움을 받고 어떤 그늘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가 만든 그늘 아래 가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부모라는 그늘이 전부였던 가정이 자녀들의 성장과 함께 부모의 그늘은 좁아지고 자녀들의 그늘이 넓어진다. 그렇게 자신의 그늘을 넓힌 자녀들이 자신의 그늘이 한 가정을 이룰 정도의 크기가 되면 결혼을 하여 부모의 곁을 떠난다. 그때쯤이면 줄기와 잎으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막아낸 부모라는 그늘은 태양 빛이 스며드는 가을나무 그늘 같은 엉성한 모습만 남게된다. 우리 부모님이 그런 모습이었고 나도 머지않아 그런 모습이 될 것이다.

여름에는 고마운 그늘이라 해도 태양이 구름 속에 있거나 태양이 사라진 저녁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늘의 사전적 의미처럼 빛이 가리어져 어두워진 상태를 그늘이라고 한다면 그늘은 어두움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어둠이 내리는 저녁에는 낮에 그늘을 제공했던 나무 밑이나 건물 주변은 더욱 음침하게 보여 오히려 피하게 된다. 달빛이 비취는 저녁에도 산밑이나 나무 밑의 그늘진 부분은 두려움을 동반한 음산함 때문에 공포감이 느껴진다.
고정된 그늘에서는 생물이 존재하기 어렵다. 하루 종일 그늘져 햇빛이 차단된 곳에서는 생물이 성장할 수가 없어 죽은 그늘이 된다. 그러나 그늘은 태양의 이동에 따라 위치를 바꾸는 순발력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그늘은 그림자가 있어야 생길 수 있고 그림자는 그늘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그늘과 그림자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지만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림자를 표현할 때도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또는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등의 썩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한다. 이처럼 여름 그늘의 단순한 순기능에 비하여 여름 이외의 계절에 주는 역기능 때문에 그늘이 부정적인 면을 표현하는데 더 많이 사용되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에는 없어서는 안 될 그늘이 겨울에는 있어서는 안 될 상황으로 바뀐다. 그러나 일년 내내 그늘이 필요한 열대지방에서는 우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그늘을 말할 것이다.

  세상에 많은 그늘이 있지만 나무가 만드는 그늘만큼 시원한 그늘은 없다. 나무들은 일년 내내 그늘이 필요한 열대지방에서는 항상 잎이 무성하지만 온대 지방에서는 여름에 잎을 피워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겨울에는 잎을 분리하여 햇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서 그늘이 필요하지 않은 계절에는 그늘을 만들지 않는 지혜를 발휘한다. 이제 그늘이 절대 필요한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우리들이 사는 사회도 나무처럼 그늘이 필요할 때는 자신과 주변을 위해 잎을 무성하게 매다는 넉넉한 마음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늘이 해를 주는 겨울이 되면 잎을 떨궈버리는 나무처럼, 욕심이라는 그늘을 버릴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