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 타던 날

2018.10.07 17:19

최정순 조회 수:2

적금 타는 날                                 

                  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최 정 순

 

 

 

 

  “나는 언제부터 저금통장을 같게 되었을까?

  이번 달도 만만치가 않다. 자동차보험료와 재산세 거기다 추석까지 끼어있으니 말이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지출이 수입을 훌쩍 넘었다. 수입은 말뚝처럼 제자리인데 지출은 고무줄 같이 늘었다 줄었다 종잡을 수가 없다. 이는 마치 퍼즐 조각이 많을수록 판짜기가 어렵듯이, 지출항목이 많을수록 수입에 맞춰 쪼개기를 잘해야 하니 그렇다. 가계부를 뒤적이며 오늘도 퍼즐을 맞추려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부뚜막 귀퉁이에 주둥이가 좁은 좀도리쌀단지가 놓여 있었다. 끼니때마다 얼마 안 되는 쌀 중에서 또 한 줌을 덜어 모은 절미항아리! 그것은 어머니의 저금통장이었다. 시골 살림에 돈이 될 만한 것은 곡식이나 푸성귀 아니면 달걀이나 씨암탉을 팔아야 그나마 잔돈푼을 쥘 수 있었으니 추석 무렵이면 오죽했을까? 눈에 선하다. 어머니의 뼘으로 동생의 고무신 문수를 짐작하고는 부뚜막 좀도리를 쏟아 장보러 가시던 모습이. 보따리 속에 들어 있을 내 나일론 원피스랑 동생의 신발이며 양말이랑 비누와 성냥, 미역이랑 심지어 사카린이며 등잔불 기름까지. 그리고 또 무엇이 더 들어 있을까를 그리며 어머니보다 보따리를 더 기다렸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된다. 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저금하는 날이 있었다. 아버지 손엔 달걀이 들려 있었고, 그 뒤를 따라가는 일이 부끄러워 점방 모퉁이에서 아버지 거동을 지켜보던 일, 달걀이 잘다고 제값도 못 받고 겨우 도화지 몇 장과 크레용을 내 손에 쥐여주던 아버지! 응당, 딸 입에 알사탕 하나쯤 물려주어야 했음에도, 안쓰러운 기색으로 뒤돌아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서러운 기억으로 남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딸 얼굴을 잊었는지 아니면 집을 찾지 못하는지 꿈속에서도 찾아오시지 않는 아버지! 그날도 점방 집 딸 순자는 눈깔만한 알사탕을 이쪽저쪽으로 굴리며 단내를 풍겼다. 짓궂은 애들은 앞니가 썩은 순자를‘군것질 대장’이니‘이빨 빠진 도장구’라고 놀려댔다. 그래도 점방 집이 우리 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던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 나는 지금 우리 가곡‘가고파’를 흥얼거리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집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었다.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논둑길 밭둑길을 걸어서 학교에 갔다. 걷다 보면 운동화에 진흙이 항상 묻어있어 신발만 보아도 시골뜨기.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시골티를 감출 수가 없었다. 감출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것은 가난이 아닐까? 저금하는 날이 싫었고 미술 시간에 크레용을 들고 가는 것이 내겐 큰 걱정거리였다. 이런 것들이 진흙처럼 달라붙어 궁핍함이 금세 표가 났다. 물질적인 가난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가난을 탓하기보다는 그냥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인 줄로 알았다. 저금할 돈이나 크레파스를 사달라고 조르거나 불만을 토로한 적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걱정을 덜 끼칠까를 염려했다. 내 유년시절, 비록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지나온 세월이 왜 이리도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을‘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노래하나보다.  

 

  나는 언제부터 돈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학창시절 누구한테 용돈을 받아본 적도 그렇다고 돈을 벌거나 마음 놓고 써본 일도 없다. 그래서 돈을 빨리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몇 푼 안 되는 첫 월급부터 시집갈 밑천을 만들어야 한다며 어머니 손에 넘겨졌고, 사회초년생 딸 옷가지도 시장 골목에서 싸구려 옷을 사주셨다. 이때까지도 내 이름의 저금통장 하나 없었으며, 은행이라는 문턱을 넘어본 기억도 없다. 배고픈 줄은 알았어도 돈맛을 몰랐다고나 할까?

 

  나는 감히 돈맛을 밥맛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가 고프면 힘이 없듯이 지갑이 비면 어깻죽지가 처지는 법이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돈맛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월급으로 저금통장이며 적금통장도 만들었다. 사자가 배고픔을 느낄 때 사냥을 시작하듯이, 나 역시 우선순위가 집 장만이었으며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적금이었다. 한 번은 펀드형 적금을 넣고는 원금도 제대로 못 찾은 적도 있었다. 그 뒤로는 오로지 적금을 부어 그 돈으로 집과 자가용도 장만하고, 자식들도 가르치고 혼인도 시키고, 여행도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았다. 지금도 적금을 붓고 있다. 그러는 동안 위험했던 일은 1970년 제1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해 하마터면 집장만할 돈을 몽땅 떼일 뻔한 일도 있었다. 은행도 망한다는데, 사업하는 친구에게 빌려 주었다가 그만, 그래도 다행히 집을 장만한 것이 천행이었다. 또 하나 시골스런 일은 큰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 시골에서 전주로 이사를 왔다. 그때까지 애들이 돈을 몰라 가게에 가면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가겟집 아주머니가 가르쳐주면 그때야 사 들고 올 정도였다. 그 뒤로 가르쳐준 일도 없는데 돈맛을 금방 배운 애들을 보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돈맛이란 것을 새삼 알았다.      

 

  쪼개고 나누는 맛이 얼마나 쏠쏠한지를‘너는 아니?’나는 나에게 묻는다. 쪼갠다는 의미는 쪼들린다는 뜻이 담겨있지만‘적금 타는 날’을 생각하면 그렇게 옹골질 수가 없다.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한 달을 살려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생각 없이 무턱대고 쓰다 보면 며칠도 못가서 바닥을 치고 마니까. 발도 날개도 없는데 시공을 초월하는 것을 보면 신령스럽기까지 한 돈! 잘 쓰면 ‘천사’잘 못쓰면 ‘악마’‘돈은 벌기도 힘들지만 쓰기를 잘해야 한다.’는 명구를 명심하면서 어머니의 좀도리쌀단지처럼 쪼개고 또 쪼개는 고무줄 경영을 한다. 늘었다 줄었다 종잡을 수 없는 퍼즐 조각으로 수입에 맞추는 아슬아슬한 퍼즐게임이야 말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한 가정을 꾸리는 살림살이도 이럴진대 하물며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은 어떠할까? 인생은 어찌 보면 퍼즐게임의 연속이다. 오늘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될 퍼즐을 맞추려고 이리저리 궁리하고 있다.  

                                           

                                             (2018.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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