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텐리 큐니즈의 시를 번역하면서
2021.08.03 05:51
변역가는 작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작가를 대신해서 작가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작가의 대행자어야 한다. 문학이 의사소통의 특수한 기능이듯이 번역도 문학의 특수화된 기능이다. 번역은 언어의 특수한 능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문학행위이다. “번역은 창작이다” 라는 김억의 주장을 빌릴 것도 없이 훌륭한 번역은 훌륭한 창작 못지 않게 재능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다. (강흥립: 영어어문교육 제 3호 1997)
스탠리 큐니츠의 시 The Layers는 화자의 삶의 여정과 과거를 극복하는 선택을 그린 시다. 1973년 이시를 썼을 때 큐니츠는73세였고 그뒤 28년을 더 살아 2006년 101세에 돌아가실 때 까지 계속 시를 썼다. 이 시는 44연으로 특별한 라임이나 음악적 페턴을 쓰지 않는 자유시인데 그려진 이미지들은 변화와 변신으로 가득찬 화자의 삶을 보여준다. 화자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고 또 다른 삶을 살아온다. 이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황무지같은 과거를 보게된다. 이것을 극복하려 변화를 꾀하며 쓰래기같이 뭉뚱그려 쌓인 과거의 삶에 의지하지 말고 켜켜이 혹은 층층히 살아온 삶을 받아들이고 다음 켜(층)을 살아가자는 희망과 결단의 글로 맺는다.
우선 이 시는 제목부터 번역하기가 어렵다. 필자같이 지질학에 관심이 있으면 금방 지구의 지층들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층들이 쌓여있는 형상을 layers 라고 한다. 그랜드 케년의 수많은 바위에 그어진 가로줄이 지층(stratum)이고 지층들이 쌓여있는 모습을 layer of strata라고 하는데 층 혹은 켜 혹은 겹이라고 번역된다. 다른 예로 옷이라면 겹겹이 입은 옷을 layers of cloths라고 하고 한겹 두겹 벗는다 라고 할 때 쓰는 겹이다. 켜켜이 쌓인 시체라는 표현도 있다. 시인은 ‘켜켜이 쌓이는 삶’을 추구하라는 뜻으로 쓴 것 같아 제목을 ‘켜켜이 쌓이는 삶’으로 부쳐보았다. 화자의 말투는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을 본따 존대말을 쓰기로 했다.
The Layers
by Stanley Kunitz
1 I have walked through many lives,
2 some of them my own,
3 and I am not who I was,
4 though some principle of being
5 abides, from which I struggle
6 not to stray.
7 When I look behind,
8 as I am compelled to look
9 before I can gather strength
10 to proceed on my journey,
11 I see the milestones dwindling
12 toward the horizon
13 and the slow fires trailing
14 from the abandoned camp-sites,
켜켜이 쌓이는 삶
스탠리 큐니츠
나는 많은 삶 속을 걸어왔습니다,
내 삶을 포함해서요,
지금의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
힘써 지키려던 원칙은
내 안에 계속
살아있지만 말입니다.
삶의 여정을 계속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내 삶을 뒤돌아 보았을 때,
인생의 이정표들이
먼 지평선의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버려진 켐프 사이트에서
꺼질듯한 불씨가 따라오고,
시의 첫 부분에서 화자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고 또 다른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그의 중심에는 자신의 믿음이나 도덕적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 힘써온 것을 느끼게 한다. 이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면 자기가 이루었던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과거의 삶과 기억 또 잃어버린 것들을 버려진 캠프사이트로 비유하며 불씨가 사그러져 재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Lines 15-31
15 over which scavenger angels
16 wheel on heavy wings.
17 Oh, I have made myself a tribe
18 out of my true affections,
19 and my tribe is scattered!
20 How shall the heart be reconciled
21 to its feast of losses?
22 In a rising wind
23 the manic dust of my friends,
24 those who fell along the way,
25 bitterly stings my face.
26 Yet I turn, I turn,
27 exulting somewhat,
28 with my will intact to go
29 wherever I need to go,
30 and every stone on the road
31 precious to me.
시체먹는 천사들이 그 위로
낮게 떠 빙빙 돌고 있습니다.
아, 나는 진정 사랑했던 것들로
한 부족을 이루었고,
그들은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어찌 마음이 수많은 죽음들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거세지는 바람속에서
먼저 스러져간 친구들이
미친 먼지가 되어,
얼굴을 쓰라리게 찌릅니다.
하지만 난 돌아섭니다 돌아섭니다,
다소 고조되어,
변함없는 의지로
가야할 어디든지,
가는 길에서 만난 어떤 장애도
나에겐 매우 소중합니다.
또 과거의 기억들을 먹으려 시체먹는 천사들이 빙빙 돌고있다고 한다. 왜 두개의 선명히 대조를 이루는 scavenger와 angels라는 표현을 썼을까? 아마 나쁜 기억을 없애버리는 천사라는 의미가 아닐까? 무거운 날개로 바퀴를 굴린다 라고 직역을 할 수 있는 16째 연은 낮게 떠서 (무거운 날개) 빙빙 돌고 있는 (바퀴를 구르다)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생각해서 직역대신 의역을 해보았다. 다음 연에서 화자는 감정이 고조되어 지난 일들을 돌아본다. 사랑했던 것들로 부족을 이루고 또 그들이 퍼져나갔음은 시인으로서의 그의 업적과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알려준다. 학문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제자가 많이 퍼져가듯이 말이다. 우리 미주 한인 문단에도 그런 영향력있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송상옥 소설가, 고원 시인, 문인귀 시인, 김영교 시인, 마종기 시인 등등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로 부족을 이루지 않았을까? 화자는 여기에서 죽은 친구들을 생각힌다. 그들의 죽음은 그의 얼굴을 찌르듯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는 슬픔과 아픔에 머물지 않고 가야 할 곳으로 돌아선다. “돌아서다”를 두번이나 반복한 것은 그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그리고 도중에 만난 어떤 장애물도 자신에게 귀하다고 한다.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표현이 아닐까?
Lines 32-44
32 In my darkest night,
33 when the moon was covered
34 and I roamed through wreckage,
35 a nimbus-clouded voice
36 directed me:
37 “Live in the layers,
38 not on the litter.”
39 Though I lack the art
40 to decipher it,
41 no doubt the next chapter
42 in my book of transformations
43 is already written.
44 I am not done with my changes.
나에게 가장 어두웠던 밤,
달빛도 없이
잔해 속을 헤메고 있을 때,
후광이 빛나는 구름 속 목소리가
나에게 지시했습니다:
“쓰레기를 먹으며 살지말고,
한켜 한켜 쌓으며 살아라”
그 말을 풀이할 재주는
내게 없지만,
내 변신을 기록한 책의
다음 장은
벌써 쓰여져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어두운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와 화자의 생애를 돌아본다. 그 때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쓰레기를 먹으며 살지말고/ 한켜 한켜 쌓는 삶을 살아라” 즉 쓰레기 같은 과거에 집착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켜켜이 쌓아온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힘을 얻고 앞으로 나가라는 뜻이 아날까? 시인은 과거를 전달하거나 미래를 판독할 수는 없다고 한다. 자신의 미래는 벌써 정해져 있겠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화자는 이 암울한 현실에서 벗아나 더 나은 삶으로 계속 변신하고자 한다는, 다음 켜를 쌓아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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