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의 노래 (단편 소설)

2009.09.02 06:13

고대진 조회 수:1530 추천: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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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서 시작되는 시애틀의 비는 거의 달이 넘게 왔다. 그것도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부슬부슬 오다가 멈췄다가 하며 종일 계속되는 비였다. 이곳 W대학에서도 겨울의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겨울이면 여러 가지 공짜 파티를 열어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중충한 학교 아파트에 죽치고 앉아 비오는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몸이 속에 가라앉는 기분이어서 도서관에서 앉아있거나 연구실에서 음악을 듣는 것으로 겨울을 지내고 있었다.

드물게 하늘이 파랗게 보이던 어느 드라이브를 나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의 플루트 협주곡을 들으면서 플루트라도 다시 시작하면 겨울을 쉽게 지날 있을 같은 기분이 들어, 오는 길에 악기 렌트점을 들려 플루트를 빌렸다. 플루트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소리와 거리가 소리만 났다.

귀국하고 년도 넘게 닫아둔 음악이었다. 그렇게 쫓기며 보내왔던 한국의 생활이었는지 분석해보고 싶지도 않았다. 잊고 싶은 생활을 반성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교환교수로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한가지는 해보자... 하며 레슨을 신청했고 일주일에 한시간씩 음악대학에서 목관악기 담당인 제인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이 거의 일년이 되어 왔다.

, 민희. 플루트를 구한다고 했지 중고 야마하 플루트가 나왔는데 어때

금요일 오후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나에게 제인이 물었다.

그래 너무 비싸지만 않으면 알아 봐줄래

년을 중고니 별로 비싸진 않을 같아. 플루트는 좋아. 같이 가자. 친구와 지금붉은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됐다. 나도 도서관에 가는데.”

붉은 벽돌로 포장되어붉은 광장이라 부르는 도서관 넓은 마당 구석에 있는 피라미드 조각 옆에서 수직으로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그는 앉아 있었다.

하이 . 미안해. 오래 기다렸니

하이 제인. 조금. 플루트 사람은 알아봤어

, 여기 같이 왔어. 이쪽은 민희, 민희 이쪽은 친구 , 플루트 팔겠다는 사람이야.”

플루트를 꺼내는 그의 얼굴은 분명 한국사람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수염까지 깎은 듯한 모습을 보고 머뭇거리자가지고 가서 불어보고 좋으면 이야기해요. 돈은 나중에 주셔도 되요.”라며 전화 번호를 적어주고 제인과 빗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값은 비쌌지만 그의 야마하는 거의 신품이었고 소리는 이상 바랄 없이 좋았다. 앞으로 다른 플루트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제인의 말을 들으며 그를 찾았다.

그의 사무실은 대학을 둘러싼 개의 호수중 하나인 유니온 호수에 접해 있었다. 사무실 앞에는수산학과 교수 이란 작은 명패 아래로 수업시간과 학생 면담시간이 걸려 있었다. 면담시간인데도 기다리는 학생은 없었다. 노크를 하고 살짝 열린 문으로 보니 그는 노크 소리도 듣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정신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사무실을 들어가면서 첫마디가 그랬다. 한국말로. 그는 뒤를 돌아서 무슨 말을 하나 하며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한국 하며 일어섰다. 갑자기 예상하지 않은 한국말을 들어서 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젯밤에 만났던 민희에요. 민희. 플루트를 가져갔던.”

그는 그제야 얼굴을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수표를 써주고 그가 끓여주는 자스민 차를 마시면서 물었다.

호수에 뭐가 있나요 비가 와서 요트들도 없는데... 아니 너무 열심히 보셔서요. 노크도 들으시고...”

고래요. 고래 하나 속에 숨어있어요.”

민물고래가 있다는 처음 듣는데요. 하지만 아주 작고 귀여운 고래일 같아요.” 킥킥거리며 웃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나이 정도 들어 보였다.

플루트를 파시나요 사신지 얼마 안된 같은데...”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밖을 보는 그의 모습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

고등학교 험프백 고래의 노래를 흉내내고 싶어 플루트를 시작했다며 파란 고래가 그려져 있는 그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해양 동물의 인구역학(Population Dynamics) 전공한다고 하면서.

그의 사무실을 나와 늦게 도착한 아파트에서는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전화를 그렇게 받아

일이 끝나서 학교에 있었어요. 미안해요.”

됐어. 연구는 어떻게 거의 마무리 됐어

아직 모르겠어요.”

남편은 항상 그랬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국제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걱정을 주었다. 불평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남편을 두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친정 어머니는 서방을 업고 다녀야해라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는 것이 딸의 책임인양 사위에게 항상 미안해했다. 집안에서 소리날 이유가 거의 없었던 우리의 사이는 겉으로 보면 부족할 하나 없는 교수 부부였다. 굳이 입양을 하라는 주위의 권고를 마다한 것도 아이보다는 서로의 일을 즐기기로 하자던 결정 때문이었다. 시댁의 눈치를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친정 어머니였으며 남편이었다.

일년 혼자 독일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남편에게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기로 했다고 했을 그랬다. “ 숨바꼭질인가사실 내가 청주에서 강의하고 남편은 서울에서 강의하기 때문에 결혼 초부터 숨바꼭질 부부가 되어 있었다. 남자 박사도 남아도는 마당에 여자가 전임 교수가 되는 것은 따기보다 어려웠다.

민희는 운이 좋았어...”라며 박사 학위를 마치고도 오래 시간 강사로 있는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요즘 들어 미국 시스템과 같이 만든다고 부쩍 연구논문 편수니 진급심사 강화니 하며 떠드는데 아무리 전임교수라 해도 학교 스케줄을 어기면서 영문학을 연구하러 남편과 독일을 가겠다고 분위기는 아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중세사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에 온다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플루트를 그만 두었다던 준이 다시 제인에게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레슨 시간 바로 전이었기 때문에 밖에서 그의 연습을 들을 있었다. 음악이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손이 무딜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연습을 들으면서 완전히 기가 죽었다. 그의 연주는 제인과 비슷할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나 텔레만의 플루트를 위한 두개의 무반주 곡들을 신들린 연주할 때는 그가 플루트를 전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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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인과 연습을 마치고 나가던 그가 악보를 하나 건네주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에 있을 발표회에서 같이 연주하자고 하면서 것은 텔레만의 플루트 이중주 4번이었다. 그것 근사한 생각이다라며 제인이 옆에서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연습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 프로젝트로 무척 바쁘게 지낸다고 제인이 전해줬다. 혼자 갤웨이의 연주 CD 사서 들으면서 텔레만을 듣기 시작했다. 뭔가 목표가 있으면 연습이 되기 때문인지 열심히 텔레만의 음악에 빠져들어 갔다. 영문학자가 아닌 바로크 음악을 공부하러 사람처럼.

준비되었으면 맞춰 볼까요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혼자 연습하고 있던 연주실에 갑자기 나타난 그가 플루트를 꺼내면서 말했다.

바쁘시다면서요. 끝났어요

일에 끝이 있는 봤어요 - 시작해요.”

그의 플루트에서 낮은 A 흘러나오고 나의 플루트가 따라 A음을 내었다. 그는 플루트의 목을 조금 늘리고 다시 A음을 주더니 옥타브를 올리고 나와 피치를 조절했다.

소리가 아주 좋아요. E 마이너 알페지오를 해볼까요 그리고 3도의 하모니로...”

제인이 하던 투였다. 10년이 넘은 레슨의 결과일 것이다. .... 들어보면 우리가 좋은 하모니를 만드는지 아닌지 알지. 악보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처음엔 조금 천천히.... 제인의 레슨을 기억하면서 손에 힘을 의식적으로 뺐다. 얼굴과 팔의 근육이 많이 긴장되어 있음을 느낄 있었다.

라르고부터. 시작할까요 제가 세컨드 플루트입니다.” 악보를 펼쳐놓으며 그가 말했다.

세컨드 플루트의 다섯 음을 따라 내가 그의 음악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플루트 소리는 고향의 가을 하늘같이 깨끗했다. 마디를 지나니 벌써 이번 연주는 것이라는 여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을 풀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음을 즐기면서... 그의 플루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플루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음을 주고받았다. 봄바람같이 따스하게 닿는 그의 속삭임에 소리가 나비가 되어 그의 귀를 살짝 간질인다. 쉼표. 그의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그의 눈을 본다. 그의 눈웃음. 하나 ... 지금이야. 그의 낮은 옥타브의 음이 조용히 어깨를 감싼다. 다리에 힘이 없이 주저앉을 같다. 악보를 보아야해. 놓치면 안돼. 음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눈과 다시 마주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1악장 .

한숨을 돌리려는 나에게 그가 소리쳤다. “계속해요.” 놓으려던 플루트를 다시 들고 알레그로로 내가 먼저 들어간다. 16 음의 빠른 템포가 시작된다. 항상 빠른 템포엔 손과 머리가 다르게 놀아서 힘들었는데... 그렇지. 음이 틀린 것에는 신경을 쓰지 말고. 어깨에 힘을 빼고 배에서 나오는 소리로. 그의 음들이 통통 튀며 귀를 깨물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입술 목을 간질이며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소리와 깍지를 꼈다. 점점 고조되는 가락이 어우러져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은 점점 빨라지고 내호흡이 가빠왔다. 어지러워서 도저히 계속 없었다.

멈추지요 아주 좋은데...”

여기까지가 밖에 연습을 안했어요. 오늘은 그만해요.”

플루트를 챙기고 나오는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같았다. 옆으로 그의 얼굴도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봄볕 아래서 시간을 보낸 몸이 나른했다. 음들의 어우러짐은 사람의 어우름과 다르지 않았다. 포근한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위도가 높은 도시 시애틀에는 겨울밤도 일찍 왔다.

요즘은 너무 어두워서 주차장까지 으시시 해요.”

캠퍼스 자전거 길에 강도가 나타나 지나가던 여학생을 덮쳤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지나가는 소리로 말했다.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음대 앞의 의자에 앉아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가기엔 너무 늦은 같아서요.”

그도 신문 기사를 읽은 모양이었다. 자전거를 가운데 놓고 주차장까지 별로 말이 없이 걸었다. 오랜만에 구름이 걷힌 서쪽 하늘에는 초생달이 실같이 있었다.

고래좌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어색한 침묵을 깨면서 그가 손을 들어 남쪽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의 여든 여덟 별자리 가운데 번째로 별자리인데도 밝은 별이 없어서 전체의 모습을 보기 힘든데 오늘은 날이 맑아 있네요.”

견우 직녀 같은 전설이라도 있나요

희랍 신화에 나오는 고래죠. 바다의 포세이돈의 명령으로 안드로메타 공주를 삼키려다 공주를 구하려는 페루세우스 때문에 돌로 변했다는 괴물 말입니다.”

L 모양의 물고기자리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선을 연장시키면미라라는 별에 닿지요. 별을 중심으로 비틀어진 Y 모양의 별이에요.”

- 실은 북두칠성을 빼고 아는 별자리가 없는데요. 나이 들어선 별을 일도 없고...”

그는 말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나서 등뒤로 가더니 오른손을 잡고 별을 가리켰다.

저기 북두칠성이 있지요 북극성이 저것이고요.” 하면서 북두칠성에서 시작하여 작은곰자리와 북극성을 찾고 W 자의 카시오페아를 보고 나서가을의 사각형 찾았다. 좁은 V자의안드로메타좌가 누운 것이 보이죠 남서쪽으로 별이 줄로 빛나고 있는 것이 에어리즈(Aries) 옆으로 넓은 V 피지스(Pisces) 아래가 시터스(Cetus) ‘고래좌’... 하며 뒤에서 잡은 손으로 가리켜 가며 이야기했다. 귓가에 스치는 그의 숨에서 남자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저절로 뒤에 서있는 그에게 등을 기대게 되었다. ....생일이 언제시죠 328일이면이군요. 저기 에어리즈... 피지스 물고기좌. 이웃이네요. 제가 살이 많군요.... 천지가 별들로 가득했다. 세상에. 나이까지 별을 보는 남자라니 하며 웃었지만 이후 나에게도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별자리를 때마다 나의 별자리와 이웃하는 그의 물고기자리를 보면서 별자리로라도 둘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연주가 가까워 오자 듀엣 연습을 매일 하기 시작했다. 연습을 뒤에는 으레 주차장까지 같이 걸어갔고 주차장에 서서 한참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는 편안하게 이야기할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아닌 남자와 경계하지 않으며 자로 측량할 필요 없이 편하게 이야기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오랜 친구에게 하듯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와의 대화를 오래된 같이 되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곤 했다. 그는 바다에서 고래를 보고있는 모습으로, 혹은 나와 벼랑 끝에 앉아서 별을 보는 모습으로 꿈속에 나타나기도 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결코 사랑에 빠지거나 없을 거야. 그렇게 뱀같이 차갑고 냉정한 사람에게 누가 말이나 붙여보겠어 ... 라던 남편의 말이 생각났다.

10년을 살면서도 한번도 누구에게 기대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던 내가 꿈에서까지 누구를 생각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남편이 독일에서 돌아온 뒤 각방을 쓰기 시작하고 남자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나였다. ...연주만 끝나면 그만이야. 네 나이를, 네 위치를 생각해... 매일 거울 앞에서 이제는 20대가 아닌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나 준의 모습을 대하면 그때까지의 결심은 모두 무너져 버렸다.

....나 정말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언제 이런 감정을 가져보았지 여고생 때 이제야 사춘기를 맞다니 우스꽝스러워. 준도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꿈에 본 그의 눈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어....

텔레만의 이중주는 시간이 갈수록 자리를 찾아 하모니를 만들고 있었으나 나의 머리는 점점 깊은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혼돈은 무척 고통스러웠고 또한 엄청나게 달콤했다.

나머지 소설은 첨부파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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