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속 살을 보여준 여자

2010.04.17 13:54

고대진 조회 수:1482 추천:243

70년대 내가 다니던 학교 수학과는 학교 정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과학관이란 건물에 있었습니다. 강의실까지는 백양나무가 은행나무로 바뀐 백양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주위에는 건물도 많지 않아서 쌩쌩거리는 바람이 이른 봄이나 늦가을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였습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가을날 아침 일찍 길을 따라 강의실에 올라가고 있는데 펄럭이는 예쁜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앞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출렁출렁 걸음은 사뿐사뿐 청명한 가을 날씨같이 산뜻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뒷모습이 이렇게 예쁜 여자도 있구나…” 라고 감탄하며 걸음을 빠르게 걸었습니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 견딜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돌개바람이 - 불더니 그녀의 치마를 들쳐 올렸습니다. 어맛- 하는 비명과 함께 올라간 치마를 얼른 감싸고 주저앉으면서 여학생이 했던 일은 사방을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여학생의 눈에 근처에 있던 유일한 증인이던 내가 들어 왔겠지요. 보았을까 말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노려보는 여자의 얼굴은 뒷모습만큼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고운 얼굴을 보면서 생글거리며 말했습니다.

 “전 아무것도 봤어요. 흰색 속옷은 더구나 봤고요.

내가 여자에게 했던 번째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만 빼고 말입니다.

다음날 연합채플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있던 그녀와 마주쳤습니다. 그녀가 알아보고 다가와서는 심각한 얼굴을 하며 낮지만 성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다 봤죠? 책임지세요.

갑자기 받은 공세에 당황한 내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쨌나요? 봤다고 했잖아요…“

“남자가 처녀의 살을 보고 나서도 치사하게 꽁무니를 뺀다 이거죠? 비겁하게 거짓말까지 하기에요?

친구들이 뒤에 있어서 힘을 얻었는지 아니면 내가 어수룩하게 보여서 촌놈 후배라는 것을 확신하고 망신주려 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도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그러면 저도 속살을 보여주면 되잖아요. 보세요. 총각 속살입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혓바닥을 길게 물고 속살을 보여주었습니다. 의사에게만 보여주었던 속살(혓바닥) 그녀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녀는 갑자기 은방울 구르는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눈물까지 닦아가면서 나에게 번째로 속살을 보여준 것입니다. 나도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속살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처녀의 속살을 대가로 그녀의 보건 2’ 과목의 파트너가 되어야 했습니다. 당시 여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했던 보건 2’라는 과목에는 반드시 남자 짝꿍을 데리고 가야 출석을 인정받을 있었는데 내가 짝꿍이 것입니다. 나보다 두세 위의 꽃다운 아가씨들과 그들의 짝꿍들과 함께 듣는 강의였습니다. 나는 강의에서 우리 학교의 삼대 강의로 꼽히던 교수님에게서 육아 교육이며 성생활이며 아이의 출산 과정까지 영화로 보는 건강 교육을 받을 있었습니다. 속살도 서로 보여주었겠다 아이 낳는 모습도 함께 사이가 되어버린 우리는 참으로 보아서 편하고 만나서 편하고 보아도 편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젊은 남녀끼리는 상대가 결혼 상대라는 생각을 접고 나면 무척 편안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편안하다면 이상한 말이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말도 됩니다. 정말 여학생은 나에게 인생을 아는 노련하게 말했고 그렇게 보이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풋풋한 풀냄새가 나는 싱그러운 봄나물 같은 나이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이 구름만큼이나 가득해야 나이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좋은 짝을 만나 시집가서 안정된 생활을 찾을 꿈만 가득한 같았습니다. 자기의 조건에 맞는 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 손해 보지 않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매결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누군가가 자기의 아름다움과 학벌과 집안 등등 모든 것에 적합한 사람을 소개해주어 손해 보지 않는 결혼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내가 다른 이야기라도 하면 항상 “이 나이에 내가 . 라고 했지요. 나이에 내가 공부냐? 아니면 나이에 내가 연애냐? 시집이나 가지……. 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녀는 졸업하자마자 자기 조건에 맞는 이름난 부잣집 가문에 학벌 좋고 잘생긴 신랑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결혼을 축하해주었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우리가 서로 속살을 보여주었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여름 동생들과 함께 모일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여잔 싫어 혹은 나는 이런 남자는 싫어”라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막냇동생이 하는 말은 “나는 퍼진 여자가 싫어”였습니다. 퍼진 여자? 엉덩이가 퍼진 여자? 혹은 가슴이? 라고 말하며 웃고 있는데 말인즉 마음이 늙어 버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나이에 무슨 변화를... 나이에 무슨 사랑을… 하면서 고요하고 평안한 여생을 맞으려는 사람… 지가 아이를 이렇게 낳고 기르는 어쩔 거야 혹은 나이에 어쩔 거야 자기만 손해지 뭐… 라면서 주저앉아버리는 여자. 말을 듣고 보니 나이에 시집이나 가서 살지 뭐…. 라고 말하던 나에게 속살을 보여준 아름다운 여학생도 어린 나이에 퍼진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습니다.

말을 듣던 여자 쪽에서도 “나도 퍼진 남자가 싫어요…” 라고 합니다. 퍼진 남자라. . 혹시 요즘 점점 나오는 똥배 이야기가 아니던가요? 아니겠지요. 40 이후의 그것은 인격이라고도 한다지 않습니까.

(20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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