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설(降雪) / 성백군
허공에도 꽃이 피네요
낙화?
아니, 주의 재림입니다
봄 여름 가을
세상에서 핀 꽃은 겨울이면 다 사라지는데
저건 하늘에서 내려온 저승 꽃
이제 막 칼춤을 추듯 피어납니다
지붕 위 장독대 위
벗은 나뭇가지, 길가 말라 죽은 풀 위에
아무 곳이나 닫는 곳이면 소복소복
눈이 쌓입니다
구별 없이 천지가 온통 한 색 순백입니다
아이들이
집 그늘을 들추며 뛰어나오고
강아지가 그 뒤를 따라 쫄랑쫄랑 따라 다니고
나도 저들 속에 어울려져 움직이는 풍경이 되고 싶은데
살아온 세월이 길어 죄가 많아 그런지
옆구리가 시립니다
선뜻 발걸음을 내딛기가 두렵습니다
자욱하게 눈 내리는 먼 하늘 바라보며
단두대에 사형수처럼
내 목을 차가운 눈발에 맡겨 봅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오래도록
주의 긍휼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