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死因) / 성백군
화창한 봄날
오리가족이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어미 오리가 병아리 넷을 데리고
도로를 건너갑니다
제가 무슨, 아무
배경도 없고 힘도 없는 날 짐승인 주제에
건널목도 신호등도 없는 4차선 도로를
보무도 당당하게 건너갑니다
‘재발’ 하고 소리쳐 보지만
못 알아들었는지
듣고도 날지 못하는 새끼들 때문인지
어미는 달리는 차 바퀴 밑에서 말 한마디 없이
파닥거리며 생을 마감합니다
허겁지겁 가던 길 되돌아
인도로 나온 병아리들
오리걸음으로 돌아보며 힐끔거리며
눈도장을 찍습니다
‘저건 사람도 아니야!’
‘요즘 사람들은 로봇보다 못한
감정도 느낌도 없는 쇠붙이일 뿐이야.’
도로 위에
제 어미의 주검으로 사인(sign) 해 놓았습니다만
잠시 후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인(死因)은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이고
세상은 여전히 질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