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근간 ‘공존지수’ 혹은 네트워크 지수(NQ/Network Quotient)라는 개념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요즘이 글로벌 네트워크의 시대라서 그런지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와는 별도로 생겨난 일종의 신종지수인데, 뜻인즉 “함께 사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운영할 수 있는가를 재는 능력지수“라고 한다.
따라서 그 수치가 높을수록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쉽고 또 그 소통으로 인해 얻은 것을 자원으로 해서 더 성공하기 쉽다는 개념이다. 물론 내가 속한 집단은 잘 되고 다른 집단은 소외시킨다는 ‘패거리’ 개념이 아니라 서로 잘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이타적(利他的)’ 개념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작년 후기인가, 서울대 하계 졸업식에서 장서희(25) 양이 휠체어를 탄 채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했다. 그녀는 첫돌도 안 돼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해온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몸의 불편은 장벽이 아니다…불가능 속에서 가능함을 증명해 보이는 삶으로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증거를 찾아가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만, 때로는 너무 힘겹고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도 있었다. 허나, 그런 때일수록 주변의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면 해결이 가능했지만, 반면 ’문제‘라고 혼자 고민하면 그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라는 요지의 연설을 해 참석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 날, 유럽 대륙을 지배하고 호령했던 나폴레옹은 생전에 고백하기를 "나는 내가 행복했던 날은 단 6일밖에는 없었다"고 했다. 반면, 삼중고의 불행한 여성이었던 헬렌 켈러 여사는 "나는 불행한 날을 꼽으라면 단 10일도 안됩니다. 나는 매일 매일이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앞서의 장서희 양의 말과 일맥상통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두 사람의 고백에서 두 가지의 교훈을 얻는다. 첫째, 인생에 있어서의 행복과 성공은 아이큐를 떠나서 감정지수인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 둘째, 헬렌 켈러나 장서희 양은 권력자로 여러 사람을 호령했던 나폴레옹보다는 자기의 성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주변과의 인간관계를 잘 맺음으로써 그 삶을 더 윤택하게 했다는 점이다.
한때 TV에 인기 방영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가까스로 권고사직 위기에서 벗어난 만년 과장이 자신을 도와 준 여직원에게 이렇게 고마움을 전한다. “혼자서는 못 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작은 바늘도 가고 큰 바늘도 가고 그렇게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그렇다. 예를 들어 물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물고기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은 물고기 하나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여럿이 한데 모여 움직이면 그 거대한 모습에 큰 고기들이 쉽게 근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역에 '이인동심(二人同心) 기리단금(其利斷金)‘이란 말이 있다. 두 사람이 한마음이면 단단한 쇠도 자른다‘란 말이다. 직장이든 조직이든 자신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는 사보타지(sabotage)가 아닌 긍정적으로 ’함께 나누는 마음‘ㅡ즉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바로 ‘공존’의 실체고 공존지수(NQ)다.
반면, 자신이 하는 업무를 팀원들과 공유하기를 꺼려하며 그저 불평만 일삼고 남에게 ‘너나 잘하라’며 앞에서 면박을 준다든가, 쓸데없이 뒤에서 헐뜯기나 하는 사람들은 성공도 어려울 뿐, 후일 꼭 본인도 ‘헐뜯음‘을 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이민을 와서 이국(異國)에 살더라도 더불어 잘 사는 이웃이 되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해 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며 칭찬해주는 자세를 갖는다면 사회적 공존지수(NQ)는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동서를 막론하고 ‘개인에 집착하기보다는 이웃을 도우며 함께 성공을 이끄는 더 큰 행복의 지름길이 된다’는 ’윈윈‘의 이치고, 바로 우리네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