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
이월란(09/12/09)
하늘에선 깃털보다도 가벼웠던 눈이
땅으로 오더니
천근 같은 인간의 발목을 잡는다
허공에선 먼지보다도 가벼웠던 눈이
길에 닿더니
육중한 차들의 바퀴를 물고 늘어진다
저리 무심하게도 위에서 아래로 내릴 뿐인데
물에 빠지고
땅에 빠지고
바람에 빠지고
핸들에 붙들린 채로 갓길로 쳐박히고
눈의 흰자위 속에
약삭빠른 시선들이 조급하게 머물러 있는데
하얀 눈의 손아귀에서
지구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데
완성된 눈의 성 안에
발빠른 지상의 시간들이 갇혀 있는데
스노우체인을 감은 맥박이 겨우겨우 띄고 있는데
눈은 시답잖게도 내린다
눈은 무료하게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