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
이월란(09/12/13)
당신 안에만 들어서면 길을 잃는다
분명히 정확한 주소가 손에 들려 있는데도
아라비아 숫자처럼 선명히 피어있는
꽃들로부터 아득해지고
이마에 뚜렷이 주소를 붙이고 사는
세상의 집들로부터 멀어진다
부딪치는 골목마다 로드뷰를 꺼내 들고도
길카리의 집을 생전 처음 찾아가는 낯선 얼굴처럼
길턱마다 주저앉은 가슴을 남겨 두고 떠나는 것처럼
길품 파는 고달픈 다리
훤한 대로 앞에서도 나의 가슴은 어두워 어두워
세상이 뒤집힌 듯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 듯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나무들
가슴 밑바닥에서 뽑힌 뿌리들이
산발한 머리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적막한 당신의 가슴 속에서
아, 나는 이제 어디로 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