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꽃
이월란(2011-4)
간밤에 눈 내렸다
올겨울 마지막 눈이리라
붉은 튤립이 태아 주먹만 한
흰 눈을 이고 있다
난데없이 겨울의 영토가 되어 준
저 붉은 봄
저런 역행을 꿈꾼 적이 있었다
혼잡한 무질서를 동경했으리라
그땐 진정, 봄 뒤에 겨울이 왔었다
그땐 진정, 눈을 머리에 이고서도
자꾸만 뜨거워졌었다
하늘과 땅이 아직 나뉘지 않았던
창세전의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리라
아직 파열되지 않은 태반 위에선
봄 뒤에 겨울이 오기도
겨울 뒤에 가을이 오기도 하는 것이어서
순서가 바뀌었어
눈 모자를 벗겨주고 들어가려다 그냥 두었다
순간의 반란조차
아침 해가 중천으로 옮겨가기도 전에
흔적 없이 녹아
봄의 수액이 되고 마는 땅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