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설거지
이월란(2011-5)
배불러 방치해 둔 식기처럼
목이 타고 구석구석 메말랐을지 몰라
굳어 딱딱해진 밥풀처럼 이젠 배불릴 수 없어
때 지난 양식처럼 먹다 흘린 것들이
철지난 옷가지처럼 구석구석 붙어 있는데
장맛비처럼, 폭포수처럼, 강물처럼 내리는
생의 수압을 그렇게라도 견뎌내고 싶었는지 몰라
얼마나 건전한 자해인지
철제 수세미로 깎아내는 치석 같은 싱크대의 치부로
칼끝으로 긁어내야만 하는 이음새 사이사이
변기로 갈 것들이 선입견처럼, 가식처럼 붙어
곡선과 직선의 중간선으로 구워낸 식기들은
현악기와 타악기의 중간음으로 파열의 경고음을
서툰 손이 닿을 때마다 암호처럼 보내오는지 몰라
알뜰히 기생 중인 앙금까지
유유히 부유 중인 기름때까지
철저히 수거 중인 분리의 달인이 되어
마른 식탁을 차리면 다시 젖은 것들을 올려 놓아야지
담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담아보지 않았던 과거로의
회귀전선, 앞으로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는
태초의 생산라인으로 되돌려 보내는
미지의 세계로 입장하는 순간, 쨍그랑
설거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