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2005.03.17 23:29

최선옥 조회 수:79 추천:7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고급반 최선옥


오늘이 경칩이란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와는 상관없이 계절은 오가고 있다. 석 달이나 게으름의 덫에 빠져 긴 겨울잠을 자던 내게 경칩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가끔은 어서어서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자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뿐, 내 육신과 영혼은 깊은 침체의 늪 속에 빠져 있었다.
싫었다. 아니 온통 기력이 쇠진해버렸다. 피곤에 젖은 내 육신은 모든 것을 멈추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참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셈이다. 그렇게 죽도록 아팠으니까 좀 쉬어도 된다고 어줍잖게 어리광을 부리며 긴 겨울잠을 잤다.

우리나라 3대 사망률 가운데 하나인 심근경색증을 어떻게 하든 약물 요법으로 치료하려고 했으나 수술을 해야만 했다. 정작 수술하기 전부터 나는 다시 되풀이될 고통으로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했던지 집도의(執刀醫)가 환자상태를 다시 체크하라고 할 정도였다. 내 온몸은 경련이 일 정도로 질려 있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난 그동안 해왔던 여러 종류의 기도를 쉬지 않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평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성경구절을 읊조렸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위험은 수술 후 지혈이 되지 않고 많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데 있었다. 당황한 병원 스탭들이 달려오고,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리다가, 난 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또 한번 신으로부터 목숨을 돌려 받고 서서히 깨어났다. 내 온 몸은 기력이 다 쇠진해 버린 것 같았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마저 깊은 수렁으로 빠진 것 같이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더불어 사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침묵과 외로움 안에서 칩거했다. 이렇게 꼬박 100일 동안 깊은 겨울잠을 잤다.

경칩이란 말이 마치 마술처럼 다가와서 나는 기지개를 켜고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경칩은 봄의 서곡일 텐데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려는지 아니면 못 다한 무슨 미련 때문인지, 겨울을 봄에게 넘겨주기 싫은 양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날씨였다. 그래도 어딘가 봄 기미가 있겠지 하고 양지바른 곳으로 찾아가서 마른 풀 포기를 뒤져보았으나 봄은 아직 기척도 없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흐린 날씨도 아니건만 우중충하고 얼음같이 차가웠다. 하기사 내 머리 위에 하늘이 있는지조차 잊고 산지가 퍽 오랜 것 같다. 마치 동화처럼 까마득하다. 어느 누가 이야기했던가. 하루에 하늘을 몇 번 쳐다보느냐에 따라 행복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면서 새삼 올려다 본 하늘이 낯설기 만하다.
너무 차가워서 가슴이 저려오는 하늘은 내 영혼처럼 떨고 있었다. 내 생명의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 마무리해야할 일들이 있건만 뜬구름 잡는 것 같아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제는  나머지 시간의 속도를 빨리 달리도록 해야 하는데.

내일이면 차가운 하늘 위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고, 또 다시 아지랑이 아롱대는 봄 하늘아래 새 생명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내 영혼도 생의 환희를 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조용히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