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2005.03.19 06:11

강영미 조회 수:34 추천:3

버릇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강영미


바다는 모든 색을 수용하지만 유독 파란색을 거부하여 파란색을 띠게 되었고, 노랑꽃도 노랑이 아닌 다른 색은 받아들이나 노랑색을 거부하여 노랑꽃으로 보인다고 한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자신이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모습으로 규정지어져 나타난다니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사람에게도 그런 이치가 통하는 것 같다.
오랜 동안 되풀이되어 자신 안에 굳어진 버릇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물론 좋은 버릇도 있고 나쁜 버릇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릇은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여 일종의 강박증적 내면 요소들이 겉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정서불안이나 욕구불만의 표현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착되는 게 바로 버릇인 것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부의 몸짓이었는데 그것이 어느새 자신에게 그림자처럼 달라붙고 어느 순간 알게 되더라도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 말이다.


어렸을 적 내겐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는 잘 모르지만 꽤 오랜 기간동안 내게 따라붙던 행동이었다. 그것은 물체를 정면으로 주시하지 못하고 사선이나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물체를 바라보았었다. 특히 TV를 볼 때면 몸은 분명 정면에 있는데 고개는 옆으로 삐뚤어져 있고 시선은 TV를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사물을 째려보는 듯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곧잘 핀잔을 듣곤 했었다. 그런 행동은 무의식 상태에서 현상에 몰입할 때 나타나곤 했었다. 나중에는 내가 그런 행동 자체를 의식하게 되었고 고쳐 보려고 많은 노력도 했다. 그런 행동이 시력과 관련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점차로 시력이 나빠졌고 고등학교 때 안경을 쓴 이후로 그 버릇은 사그라졌다. 그리고 어른이 되자 잘 나타나지 않았다.



괴이한 것은 그 몹쓸 버릇을 내 아들이 지금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배냇버릇이라고 하여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태아 때부터 임산부가 정서적, 신체적으로 태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 것 같다. 또한 환경적으로 부모를 비롯하여 동거하는 이들에게서도 버릇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닮고, 모방심리에서 비롯되는 버릇도 있으니 말이다. "부모 닮아 그렇다." 는 말에는 성격이나 성향, 또한 버릇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엄마가 행했던, 더군다나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인 그 버릇을 아들이 반복하는 것은 어떤 과학적, 생체적 원리가 통하는 것일까. 거역할 수 없는 핏줄의 인연일까. 아무튼 아들의 그런 행동을 볼 때면 나는 쉽게 주의를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식 웃음마저 나오는 것은 나 자신이 원인제공을 한 것 같아서다.



사람의 버릇도 나이 따라 환경 따라 변하는 모양이다. 막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꾸리며 내겐 또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신접살림을 꾸미고 첫 아기를 출산한 뒤 남편의 박봉으로 생활하려니 없던 버릇 하나가 생긴 것이다. 그것은 돈을 환산하는 버릇이었다. 학창시절 수학공식 하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던 내 두뇌가 어찌나 바쁘게 계산을 해대는지, 나도 내가 그렇게 셈에 빠를 줄 몰랐다.

한 번은 서울 사는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서도 번화가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멀리 촌에서 상경한 나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었다. 깔끔한 일식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것까진 좋았다. 다음 차를 마시러 들어간 셀프커피전문점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커피 한 잔 값이야 원래 그러려니 했지만 커피만 마시기 싱거워 디저트로 시킨 빵 한 조각이 문제였다. 이름은 '티라미슈' 라는 조그만 케이크 조각이었는데, 그것은 둥근 케이크를 16조각 내지 32조각 낸 것처럼 정말 작아 보였다. 그런데 그 조그만 빵 한 조각이 무려 4,500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는 4,500원에 합당한 물건값을 환산하고 있었다. 돼지고기 한 근에 3,000원이니 1,500원이나 남겠고, 콩나물은 몇 봉지, 두부는 몇 모 등등…….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앞에서 궁상맞아 보일까봐 꾹꾹 눌러가며 그 비싼 빵 한 조각을 삼키긴 했지만 어찌나 그 때 그 상황에서 내 머릿속이 분주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그 때 그 기억은 한 푼이라도 아껴야만 했던 초보아줌마로서, 도장처럼 내 머릿속에 굳게 찍혀 있다. 조금은 궁색해 보이지만 그 시절의 버릇 때문에 나는 무엇을 사야 옳은 것인지, 어떻게 써야 합리적 소비인지를 스스로 배우게 되었다.



뚜렷한 버릇 하나 없던 시절은 싱겁고 재미없었던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걸 보니 버릇이 있어서 각박한 삶에 생기가 도는 게 아닐까. 하기야 허점 같은 버릇 하나 없이 깔끔하고 완벽한 것도 사람냄새가 나지 않아 재미없을 듯하다. 요즘 내 버릇을 쏙 빼 닮은 아들은 내게 잔소리하는 버릇 좀 고쳤으면 좋겠단다. 공부 좀 잘 해라, 정리정돈하며 살아라, 물건을 아껴 써라 등등 말이다. 그러고 보니 버릇도 선천적인 기운이 강한데, 내가 지금의 잔소리 대신 어린 시절 그런 버릇을 들여놨더라면 굳이 잔소리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돈다. 역시 내게서 발발한 문제이려니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