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하늘을 나는 이유

2005.03.23 05:47

유영희 조회 수:63 추천:6

새들이 하늘을 나는 이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누구도 전체 무리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길을 인도하며 총 지휘를 맡은 대장에게 물어 보아도 어림잡아 2-3천이라고 할 뿐 정확한 숫자 파악은 되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그 수를 헤아리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녀석은 하나도 없으니 그도 당연한 일이다. 내가 사는 곳은 김제에서 익산으로 가는 국도에서 꽤나 깊은 안쪽에 자리한 관망대 호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근처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는 한적한 곳이다. 우리는 추운 곳을 좋아하는지라 곧 시베리아로 길을 떠나야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찾아오던 관망대 호수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아기자기한 산과 김제평야의 넓은 들판이 에워싸고 있어서 정겨운 곳이다. 단풍이 질 무렵 이곳을 찾기 위해 우리는 참으로 고단한 비행을 하였다. 멀고 험한 비행을 견디질 못하고 중간에 낙오하였던 친구는 어찌 되었는지 그 생사가 참으로 궁금하다. 대장은 대열에서 낙오된 무리에 대한 아픔을 기억하는지 수시로 전체 비행훈련을 시킨다. 특히 올 겨울에 태어난 아기들이 그 길을 잘 견뎌 낼지 대장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걱정이 많다.

오늘은 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이다. 시베리아까지 가려면 이보다 더 드센 바람을 거스르며 비행해야 한다. 해가 질 무렵 잔잔하던 호수는 성난 듯이 으르렁거리며 바람은 깃털 사이를 사정없이 후비고 있었다. 대장은 바람 속 비행 연습을 강행하였다. 그가 먼저 물 위에서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 오르면 곁을 지키던 우리 참모들이 그 뒤를 따른다. 앞 대열에서부터 차례로 바람을 거스르는 비행을 시작한다. 하늘에 올라보니 겨울을 무사히 견뎌낸 아기들도 물 위를 가볍게 날아 올라 하늘로 치솟는다.

저 아래 땅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향해 선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의 비행훈련을 보며 그들은 탄성을 지른다. "야! 대단하다. 수천 마리는 되겠는데? 몇 번을 왔지만 저 많은 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 오르는 걸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야." 말하는 남자를 보니 아닌게 아니라 낯이 익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호수 옆 정비공장 마당에서 그를 자주 보았고, 가끔 이 호숫가 옆에 위치한 식당에 사람들을 데리고 왔던 남자이다. 남자의 팔을 붙들고 있는 여자는 부인인가 보다. "철아! 네 졸업 축하기념으로 새들이 분열을 하는 모양이다. 외삼촌이 동생이랑 조카 데리고 올 테니 멋진 모습 보여 달라고 미리 부탁했었다." 하늘을 향해 연신 탄성을 지르는 단발머리 여자가 남자의 동생인 모양이다. 그 곁에 서있는 튼실한 청년은 아마도 대학을 졸업한 남자의 조카이며 단발머리 여자의 아들인 모양이다.

"저도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는데……. 이젠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동기들이 가장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최고의 길잡이가 될래요." 아마도 청년은 우리가 하늘을 날 때 귀가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길을 방해하는 가장 두려운 존재인 비행기라는 괴물의 조종사를 꿈꾸었던 모양이다. 그 괴물의 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대장은 재빨리 기수를 돌려 자칫 무리들이 당할 처참한 사고를 피하였었다. 드물게 괴물의 소리를 감지하지 못한 다른 무리들이 괴물과 충돌하는 사고도 있었다. 괴물은 크고 단단한 등치에 비해 새들과의 충돌에선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괴물과 충돌한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몸이 갈가리 찢기는 최후를 맞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괴물이 무던히 무섭고 싫다. 괴물도 우리를 싫어하긴 마찬가지이다.

대장은 비행훈련에 이어 착륙을 위해 물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일제히 날아 오르는 것보다 착륙은 더 힘든다. 자칫 하강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물 속에 처박히기도 한다. 대열간의 일정거리 유지가 흐트러지면 충돌 사고가 나기도 한다. 겨우 내내 훈련으로 모든 무리가 뜨고 내리는데 이젠 별 어려움이 없다. 아기들도 드센 바람을 거스르며 비행을 하여도 대열이 크게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뒤쳐지는 몇 십 마리의 아기들 때문에 대장은 길고 지루하며 고된 훈련의 고삐를 늦추질 못한다. 그런 우리의 훈련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늘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수직과 회전을 반복하는 대열의 모습에서 그들은 물고기 모양이라고 했다가, 어느 때는 큰 새의 모양이라고도 하였다. 우리자신이 바로 새이건만 그들은 우리를 향해 새 모양이라니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이다.

바람을 맞서며 했던 오늘의 비행은 날개의 힘을 쏙 빠지게 하였다. 어둠이 내려서야 우리는 수면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를 땅위 철창에 갇힌 오리들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사람들이 던져준 먹이를 편안히 먹고 있다. 때론 그들의 편안함이 부럽다가 날개를 가지고도 나는 자유를 상실한 삶은 견딜 수 없음을 깨닫는다. 철창 속에서 던져진 먹이를 받아먹다가 깃털만 남기고 사라진 동료들을 생각하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참동안 우리를 지켜보던 가족들이 흥미를 잃었는지 타고 온 차의 시동을 건다. 단발머리 여자의 말이 들렸다.
"정말 멋있었어. 좋은 모습 보여 줘서 고마워! 너희들이 떠나기 전 친구랑 다시 보러 올께." 고맙다는 말이 기분 나쁘진 않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비행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보고 탄성을 질렀던 우리들의 비행은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사투임을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여자의 입에서는, 철창 안에 깃털만 남기고 사라진 동족의 몸 냄새가 역겹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다시 보고 싶다는 건 순전히 그녀의 마음일 뿐이다.(2005.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