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2005.03.18 15:29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어제 내린 비로 기운을 얻은 산수유 꽃망울이 색깔을 드러낸다. 누가 보아도 노란 꽃을 피울 거라는 걸 알아볼 만큼 산수유는 옆에서 보면 작고 가냘프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노란 꽃을 매단 가지가 흔들리는 게 마치 아지랑이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산수유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6교시 수업을 들으러 점심을 마친 학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대학 캠퍼스의 3월은 늘 활기차고 넘치는 젊음으로 출렁거린다. 여기저기 길목을 막고 신입생들을 자기 동아리로 유치하려는 선배들의 홍보가 뜨겁다. 간이 의자와 텐트를 마련하고 책상 위에는 음료수 커피 과자부스러기들이 널려있다.
음악으로, 미술로, 종교로, 사진으로, 갖가지 제목들이 그들 주위의 나무와 벽에 나부낀다. 해당사항 없는 나는 조용히 내 강의실을 찾아간다.
내가 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그래서 내 학번은 2002학번이다. 학교당국에서 지역주민과 학생이 함께 한다는데 뜻을 두고 명예학생이라는 타이틀로 50세 이상을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강의실 문을 활짝 열어준 덕에 나는 국문과에 들어가 마음놓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강의실을 들어섰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낮 익은 학생들도 늘어나고 교수님들의 따뜻한 배려도 있어서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다. 내 막내딸보다도 어린 학생들 틈에서 강의를 듣고 숙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면서 해가 갈수록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일정’이가 먼저 와 옆자리를 비워둔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이는 몇 년째 사귀는 내 짝꿍이다. 거의 같이 수강하는 과목이 많아서 학교에 가는 날은 거의 만날 수가 있다. 시골이 집이어서 동생들을 데리고 자취를 하지만, 언제나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다. ‘빼빼로 데이’'화이트 데이’를 잊지 않고 빼빼로와 사탕을 건네줄 줄 아는 예의 바른 여학생이다. 나도 늘 베풀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장래 희망은 대학 강단에서는 거란다. 일정이기 꿈을 이뤄 자신 있게 강의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빌어본다. 이번 시간은 한국문학 비평이다. 문학 비평을 잘 하려면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주변 환경과 출신 성분까지도 파악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강의를 열심히 필기하는데, 몸에 감기기운이 있는지 으슬으슬 한기가 찾아온다. 어제 친구들과 무창포에 가서 바닷바람을 쐬고 온 게 원인인 것 같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주변에 학교친구가 별로 없다. 그래서 늘 동창회에 간다는 주변사람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몇 년 전 우연히 동창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친구가 그리운 우리들은 수소문 끝에 선배 몇 명을 더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선후배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어제도 모임을 갖고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9인 승 친구 차를 타고 쭉 뻗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만에 무창포에 도착했다. 새삼 날로 발전하는 문명의 편리함에 감사할 뿐이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해보았다. 마음속의 묵은 찌꺼기를 모두 털어 내고 가슴 가득 새봄의 기운을 담아 가리라! 코로 스며드는 바람이 부드러운 걸 보니 봄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바닷가에 좌판을 펼치고 손님을 붙잡는 아주머니들 앞에 앉아 먹는 주꾸미, 멍게, 해삼의 싱싱한 맛이 감미롭다. 동창생이란, 철없고 꿈 많은 시절을 같이 공유해서인지 오랜만에 만나도 거리감이 없다. 우리의 우정은 시간이 더 흐를수록 점점 두께를 더해간다. 서해안까지 가서 봄맞이를 했으니 감기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내일은 산수유의 빛깔이 더 노랗게 될 것이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신영숙
어제 내린 비로 기운을 얻은 산수유 꽃망울이 색깔을 드러낸다. 누가 보아도 노란 꽃을 피울 거라는 걸 알아볼 만큼 산수유는 옆에서 보면 작고 가냘프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노란 꽃을 매단 가지가 흔들리는 게 마치 아지랑이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산수유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6교시 수업을 들으러 점심을 마친 학생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대학 캠퍼스의 3월은 늘 활기차고 넘치는 젊음으로 출렁거린다. 여기저기 길목을 막고 신입생들을 자기 동아리로 유치하려는 선배들의 홍보가 뜨겁다. 간이 의자와 텐트를 마련하고 책상 위에는 음료수 커피 과자부스러기들이 널려있다.
음악으로, 미술로, 종교로, 사진으로, 갖가지 제목들이 그들 주위의 나무와 벽에 나부낀다. 해당사항 없는 나는 조용히 내 강의실을 찾아간다.
내가 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다. 그래서 내 학번은 2002학번이다. 학교당국에서 지역주민과 학생이 함께 한다는데 뜻을 두고 명예학생이라는 타이틀로 50세 이상을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강의실 문을 활짝 열어준 덕에 나는 국문과에 들어가 마음놓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강의실을 들어섰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낮 익은 학생들도 늘어나고 교수님들의 따뜻한 배려도 있어서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다. 내 막내딸보다도 어린 학생들 틈에서 강의를 듣고 숙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면서 해가 갈수록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일정’이가 먼저 와 옆자리를 비워둔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이는 몇 년째 사귀는 내 짝꿍이다. 거의 같이 수강하는 과목이 많아서 학교에 가는 날은 거의 만날 수가 있다. 시골이 집이어서 동생들을 데리고 자취를 하지만, 언제나 장학금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다. ‘빼빼로 데이’'화이트 데이’를 잊지 않고 빼빼로와 사탕을 건네줄 줄 아는 예의 바른 여학생이다. 나도 늘 베풀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장래 희망은 대학 강단에서는 거란다. 일정이기 꿈을 이뤄 자신 있게 강의할 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빌어본다. 이번 시간은 한국문학 비평이다. 문학 비평을 잘 하려면 작품뿐 아니라 작가의 주변 환경과 출신 성분까지도 파악해야 한다는 교수님의 강의를 열심히 필기하는데, 몸에 감기기운이 있는지 으슬으슬 한기가 찾아온다. 어제 친구들과 무창포에 가서 바닷바람을 쐬고 온 게 원인인 것 같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닌 나는 주변에 학교친구가 별로 없다. 그래서 늘 동창회에 간다는 주변사람들을 부러워했었는데, 몇 년 전 우연히 동창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친구가 그리운 우리들은 수소문 끝에 선배 몇 명을 더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선후배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어제도 모임을 갖고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9인 승 친구 차를 타고 쭉 뻗은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만에 무창포에 도착했다. 새삼 날로 발전하는 문명의 편리함에 감사할 뿐이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해보았다. 마음속의 묵은 찌꺼기를 모두 털어 내고 가슴 가득 새봄의 기운을 담아 가리라! 코로 스며드는 바람이 부드러운 걸 보니 봄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바닷가에 좌판을 펼치고 손님을 붙잡는 아주머니들 앞에 앉아 먹는 주꾸미, 멍게, 해삼의 싱싱한 맛이 감미롭다. 동창생이란, 철없고 꿈 많은 시절을 같이 공유해서인지 오랜만에 만나도 거리감이 없다. 우리의 우정은 시간이 더 흐를수록 점점 두께를 더해간다. 서해안까지 가서 봄맞이를 했으니 감기쯤은 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내일은 산수유의 빛깔이 더 노랗게 될 것이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54 | 당신을 배웅하기 위하여-요한 바오로 2세 추모미사- | 박정순 | 2005.04.07 | 20 |
| 53 | 딸아이 교복 입던 날 | 권영숙 | 2005.04.07 | 39 |
| 52 | 기억의 퍼즐 찾기 | 유영희 | 2005.04.05 | 35 |
| 51 | 30년 넘은 바리깡 외 1편 | 김지중 | 2005.04.04 | 51 |
| 50 | 어둠 속의 빛 | 이양기 | 2005.04.04 | 37 |
| 49 | 꽃나무에 물주기 | 서영복 | 2005.04.04 | 40 |
| 48 | 무한보장 자유보험 | 고광영 | 2005.04.03 | 38 |
| 47 | 시작이 즐겁다 | 김정자 | 2005.04.02 | 39 |
| 46 | 색다른 결혼식 | 신영숙 | 2005.04.02 | 110 |
| 45 | 낭랑 18세 | 배윤숙 | 2005.04.01 | 54 |
| 44 | 또 하나의 울타리가 무너지던 날 | 남궁금자 | 2005.03.28 | 51 |
| 43 | 봄 이야기 | 김정자 | 2005.03.28 | 43 |
| 42 | 소중한 사랑 | 신영숙 | 2005.03.25 | 44 |
| 41 | 새들이 하늘을 나는 이유 | 유영희 | 2005.03.23 | 63 |
| 40 | 버릇 | 강영미 | 2005.03.19 | 34 |
| »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신영숙 | 2005.03.18 | 51 |
| 38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 최선옥 | 2005.03.17 | 79 |
| 37 | 한국수필문단의 교통정리는 누가 할 것인가 | 김학 | 2005.03.14 | 109 |
| 36 | 친절과 미소의 미 | 김영옥 | 2005.03.13 | 47 |
| 35 | 해마다 여름이 오면 | 김학 | 2005.03.12 |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