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즐겁다
2005.04.02 17:07
시작이 즐겁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김정자
가을단풍이 어우러진 아침 운해 속에 멀리 보이는 마이산을 찍은 사진이 거실에 걸려있다. 남편이 찍은 사진이다.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마다 너무 멋있고 신비롭다고 한마디씩 한다.
남편은 그 사진 하나를 얻기 위해 마이산 주변의 산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찍을 장소를 물색했었다. 새벽 네다섯 시면 집을 나서기 4,50번 만에 저 사진을 찍어 왔다. 그 사진을 찍은 날은 느낌이 좋았는지 “이번엔 된 거 같아. 근사할 것 같거든!” 하고 기뻐했었다. 그러더니 작년 전라북도 관광사진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여 그 상금으로 결혼 때도 못해주었던 다이아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나는 가끔 사진을 찍는 남편을 따라 나선다. 해뜨기 전까지 올라가야 하는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장면을 찍으려면 전주에서는 새벽 2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그것도 그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메고 산길을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는데, 한두 번 출사해서는 한 장의 사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의 그 허탈감은 나까지도 지치게 만든다.
언젠가 경주 바닷가 대왕암에서 바라보는 새벽 일출은, 특히 카메라 렌즈를 통해보는 구름과 어울린 아침 해의 황홀함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음력 정월 초사흘 날 바닷가의 새벽추위는 셔터 위에 올려놓은 손을 금방이라도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기세였다. 그런데 우리는 사진작품 속에서 아름다움만을 보지 그 작가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그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거니까. 물론 사진작가만이 그렇게 노력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이 많은 어느 수필가님은 한 편의 수필을 끝낸 뒤 맥주 컵으로 소주를 두 잔이나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셨다.
“나도 뭔가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 가질 뿐 행동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내게 가장 용기를 주는 사람은 남편이다. 운동신경이 부족해 절대로 못한다고 생각했던 자전거를 덜컥 사게 만들더니, 며칠을 공원 옆길로 데리고 가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부터 한 발을 페달에 올려놓고 중심을 잡아보고, 브레이크를 잡아 멈추는 연습을 시키더니, 기어이 동네를 한 바퀴씩 돌고,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두 발 달린 탈 것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다니 내 스스로도 얼마나 기쁘고 대견했는지 모른다.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자랑하곤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자. 내게 조금만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거라면 내 남아있는 노후를 위하여 해보자. 그러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도 가끔은 잘 안되어 좌절하고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마음이라도 보여주자. 그러면 저희들도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무언가 하려고 하겠지!”
딸아이의 집에 놀러온 직장동료들이 거실에 걸려진 그림에 관심을 보여 엄마의 작품이라고 넌지시 자랑했다는 전화가 왔다. 잘 그려진 작품이어서 자랑한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엄마가 그렸으니까 좋아했을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30년이 넘는 직장을 그만둔 뒤 재작년까지 그림을 배웠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딸들의 혼수품 속에 내가 그린 그림을 한 점씩 넣어 보냈다. 화가가 아니면 어떤가? 엄마가 그렸고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작년에 일이 생겨 쉬었던 그림 대신 올해는 무엇을 해볼까 생각하다가 수필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남보다 활자로 된 것은 무엇이든 잘 읽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쓰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하고 망설이자 남편은 “해봐, 작가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꼭 해서 진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해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면 그때 손 털고 나오면 되잖아? 잘 되면 작가가 되어 좋고.”
시작하기로 했다. 노후를 위한 시도를 내 딴엔 참 과감하게 해본 것이다. 미칠 정도로 하면 좋겠지만 언제 한 번 어떤 일에 미쳐 본 적이 있었던가. 점차 수필이 풍기는 멋을 알아 가면 그땐 밤잠을 설쳐도 좋으리라.
내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고 맞춤법이나 사투리 등을 사전을 찾아가며 고쳐주는 남편과,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며 저희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는 언제나 시작이 즐겁다.
“그래, 한 번 시작해보는 거야!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반 김정자
가을단풍이 어우러진 아침 운해 속에 멀리 보이는 마이산을 찍은 사진이 거실에 걸려있다. 남편이 찍은 사진이다.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마다 너무 멋있고 신비롭다고 한마디씩 한다.
남편은 그 사진 하나를 얻기 위해 마이산 주변의 산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찍을 장소를 물색했었다. 새벽 네다섯 시면 집을 나서기 4,50번 만에 저 사진을 찍어 왔다. 그 사진을 찍은 날은 느낌이 좋았는지 “이번엔 된 거 같아. 근사할 것 같거든!” 하고 기뻐했었다. 그러더니 작년 전라북도 관광사진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여 그 상금으로 결혼 때도 못해주었던 다이아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나는 가끔 사진을 찍는 남편을 따라 나선다. 해뜨기 전까지 올라가야 하는 지리산 노고단의 일출장면을 찍으려면 전주에서는 새벽 2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그것도 그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메고 산길을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는데, 한두 번 출사해서는 한 장의 사진도 못 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의 그 허탈감은 나까지도 지치게 만든다.
언젠가 경주 바닷가 대왕암에서 바라보는 새벽 일출은, 특히 카메라 렌즈를 통해보는 구름과 어울린 아침 해의 황홀함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음력 정월 초사흘 날 바닷가의 새벽추위는 셔터 위에 올려놓은 손을 금방이라도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기세였다. 그런데 우리는 사진작품 속에서 아름다움만을 보지 그 작가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그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거니까. 물론 사진작가만이 그렇게 노력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이 많은 어느 수필가님은 한 편의 수필을 끝낸 뒤 맥주 컵으로 소주를 두 잔이나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셨다.
“나도 뭔가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 가질 뿐 행동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내게 가장 용기를 주는 사람은 남편이다. 운동신경이 부족해 절대로 못한다고 생각했던 자전거를 덜컥 사게 만들더니, 며칠을 공원 옆길로 데리고 가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부터 한 발을 페달에 올려놓고 중심을 잡아보고, 브레이크를 잡아 멈추는 연습을 시키더니, 기어이 동네를 한 바퀴씩 돌고,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두 발 달린 탈 것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다니 내 스스로도 얼마나 기쁘고 대견했는지 모른다.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자랑하곤 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자. 내게 조금만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거라면 내 남아있는 노후를 위하여 해보자. 그러다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도 가끔은 잘 안되어 좌절하고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마음이라도 보여주자. 그러면 저희들도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무언가 하려고 하겠지!”
딸아이의 집에 놀러온 직장동료들이 거실에 걸려진 그림에 관심을 보여 엄마의 작품이라고 넌지시 자랑했다는 전화가 왔다. 잘 그려진 작품이어서 자랑한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엄마가 그렸으니까 좋아했을 딸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30년이 넘는 직장을 그만둔 뒤 재작년까지 그림을 배웠다. 잘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딸들의 혼수품 속에 내가 그린 그림을 한 점씩 넣어 보냈다. 화가가 아니면 어떤가? 엄마가 그렸고 내 아이들이 좋아하는데.
작년에 일이 생겨 쉬었던 그림 대신 올해는 무엇을 해볼까 생각하다가 수필공부를 해 보기로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남보다 활자로 된 것은 무엇이든 잘 읽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쓰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하고 망설이자 남편은 “해봐, 작가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꼭 해서 진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해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면 그때 손 털고 나오면 되잖아? 잘 되면 작가가 되어 좋고.”
시작하기로 했다. 노후를 위한 시도를 내 딴엔 참 과감하게 해본 것이다. 미칠 정도로 하면 좋겠지만 언제 한 번 어떤 일에 미쳐 본 적이 있었던가. 점차 수필이 풍기는 멋을 알아 가면 그땐 밤잠을 설쳐도 좋으리라.
내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고 맞춤법이나 사투리 등을 사전을 찾아가며 고쳐주는 남편과, 자기 생활을 열심히 하며 저희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는 언제나 시작이 즐겁다.
“그래, 한 번 시작해보는 거야!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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