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빛

2005.04.04 14:33

이양기 조회 수:37 추천:5

어둠속의 빛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이양기


마티즈의 뒤 유리창에 먹물보다 더 짙은 어둠이 고여 있다. 차 안의 거울을 통하여 힐끗 뒤쪽을 바라본다. 등골을 타고 싸하니 무섬증이 흘러내린다. 무섬증에서 벗어나려는 듯 가속기를 세게 밟았다. 그래도 그 시커먼 어둠은 사라지지 않고 쫒아 오고 있다. 다시 한 번 뒤쪽의 유리창을 응시한다. 완전한 어둠의 색깔은 검은색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돌린다. 그리고 계속 앞을 보면서 달린다. CD플레이어는 무서움에 질린 마음을 쓰다듬어 주듯 안단테 칸타빌레의 선율로 차 안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매주 목요일 밤 아홉시가 지난 시간에 호남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종종 부딪히는 정경이다. 짧게는 1-2 분이고 길게는 몇 분씩 깜깜한 어둠 속을 혼자서 달리기도 한다. 그러다 힐끗 뒷거울을 통하여 발견하는 빛과 반대편 차선에 맞부딪히는 빛은 반가움을 뛰어 넘어서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느끼는 안도감은 깊고 커다란 호흡으로 두려운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준다. ‘아! 그렇구나.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온전하게 설 수가 있는 것이구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던져주는 사람사이의 관계 확인이 가슴을 따스하게 적셔준다.

그동안 끊임없이 글쓰기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내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한 해가 시작되고 2월도 하순에 접어들 즈음이었다. 드디어 그런 욕심을 채울 것 같은 빛을 발견하였다. 한가하게 컴퓨터에서 여기저기로 방향 없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발견한 사이트가 수필쓰기 야간반이 개설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이었다. 다른 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날로 등록을 하였다. 청주에서 전주까지의 공간적 거리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만심과 무모함이 빚어 낸 용기였다. 오로지 한 줄기 빛을 찾아서.

지난 한 해 동안 1,2학기에 걸쳐 수필 쓰기를 사이버 공간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강의는 긴장감이 적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만 듣는 것으로는 무엇인지가 부족하였다. 강의실에 올린 작품에 대하여 첨삭지도를 들을 때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표정도 보고 싶고, 눈동자를 맞추고도 싶고, 제스처도 보고 싶었다. 즉 말이 주는 의미 이외의 언어들을 보고 싶고 알고 싶었다. 바로 그 길을 찾아 나선 곳이 지금 강의를 받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야간반이다.

강의를 시작하던 첫 주의 낯설음과 두려움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표 받는 곳을 지나 호남 제일문을 들어서면 여전히 가슴과 머리 속이 긴장감으로 팽팽해진다. ‘강의실을 잘 찾아 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 그러나 그런 긴장감보다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열정에 대한 기대감이 가슴을 충만하게 채워 준다. 2시간의 강의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으로 가득 찬다.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빛에 대한 갈증을 조금씩 채우고 오는 시간이 되고 있다.

늦은 밤 고속도로에서는 그냥 달릴 뿐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달리고 있는 차 속의 거울에 비춰지는 불빛은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빛이다. 그 빛은 세상과의 관계를 횡적으로 이어주는 불빛이다. 그리고 세상의 관계를 종적으로 이어주는 빛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 주는 소통의 빛이기 때문이다. 이 소통의 빛은 개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를 이어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역사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