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교복 입던 날

2005.04.07 00:00

권영숙 조회 수:39 추천:3

딸아이 교복 입던 날
전주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권영숙


오늘 아침은 해가 동쪽에서 뜰 일이다.
아침이면 집안이 들썩거릴 정도로 깨워야 일어나는 딸아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 거울 앞에 서 있다. 교복 입은 모습을 이리 비춰보고 저리 비춰보며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다른 중학생들은 입학하던 날 교복을 입고 등교했건만 딸아이네 학교는 공동구매를 하느라 3월이 거의 끝나가는 오늘부터 교복을 입는다. 먼지도 앉아 있을 것 같지 않은 옷을 털고 칼라 깃을 매만지던 아이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출근하는 나를 따라나선다. 시동을 걸고 있는 차 주변을 맴돌기에 “엄마가 가다가 내려줄까?”하니까 냉큼 차에 올라탄다. 학교가 10분도 채 안 걸리는 지척에 있는 지라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는 딸아이의 기분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기에 해본 소리인데 내심 그러기를 바랐나보다. 학교 앞에서 내려주고 손을 흔들며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30년 전 나의 중학생 모습이 떠올랐다.

위로 언니가 둘인 나는 항상 언니들이 입던 옷을 대물림해서 입었다. 철모르던 초등학교 때야 주는 대로 입고도 잘 다녔다. 중학생이 된 나에게 어머니는 언니가 입던 교복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내 놓았다. 다들 그러나 보다 하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나처럼 물려받은 교복을 입고 등교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윤기가 반질반질하고 재질이 다른 교복들을 입은 아이들도 있었다. 옷에 대해 투정 한 번 부리지 않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새 옷을 입고 싶었다.
집에 돌아온 그날부터 무언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을 내고 밥을 굶기 시작했다. 항상 명랑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던 내가 어느 날인가 변하기 시작한 걸 안 어머니는 꾸중을 하셨다. 아마 사춘기가 온 걸로 생각하셨는지 달래도 보고 눈물이 나게 혼을 내기도 하셨다. 그러나 새 교복에 대한 나의 열망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던 며칠 후 아버지가 내 불만을 눈치 채셨다.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분은 아버지이셨다. 그 날로 양장점에 가서 교복을 맞췄다.
지금처럼 유명 메이커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던 옷이 아니어서 시골에 있는 조그만 양장점에서 맞춰 입던 시절이었기에 빨라야 2-3일은 걸린다. 난 2-3일이 나에게는 2-3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교 길에 그 곳에 들러 소매도 달리지 않은 옷을 입어보고 시침핀이 여지 저기 꽂혀있는 옷을 내 몸에 끼어도 봤다. 양장점 주인아주머니가 꽤나 귀찮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새 교복이 내 손에 들어왔다.
옷이 날개라고 처음 새 교복을 입던 날은 내 몸에 날개를 단 날이었다. 금세 옛날의 그 싹싹하고 명랑한 소녀로 돌아갔다. 새 교복을 입고 교문에 들어서는 나는 모든 아이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듯 착각하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중학교 동창인 남편이 항상 풀을 먹여 빳빳하게 선 칼라와 반듯하게 다림질한 옷을 입고 등교하는 내 모습을 아침마다 보았다는 이야기를 가끔 한다. 중학교 시절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그때는 내가 멋을 꽤나 부렸나 보다. 그 뒤로 솜씨 좋으신 어머니는 언니들 옷이라도 예쁘게 손질해서 새 옷보다 더 멋지게 고쳐 주셨다.

요즘엔 모든 것이 넘쳐난다. 형제들의 옷을 받아 입던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다. 명절 때나 되어야 새 양말 새 옷을 얻어 입던 옛날과는 달리 시시때때로 새 옷을 사 입는다. 그러다 보니 옷장에는 항상 옷이 넘쳐난다. 일년이면 몇 차례씩 옷장을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지 않으면 유행이 지난 옷이든 입지 않는 옷들로 옷장 안이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헌옷 수집함이 있다. 가끔 들여다보면 새 옷이나 다름없는 옷들이 주인을 잃고 버려져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헌옷 수집함에 모여지는 옷들은 누군가가 입겠지 했는데 지나다 보니 쓰레기봉투에 담겨져 쓰레기 소각장으로 실려 가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입던 옷, 우리 아이들이 입던 옷은 다시 분류를 하여 깨끗하게 빨고 떨어진 단추와 터진 곳을 잘 꿰매어 친척들이나 근처 보호시설에 보내고 있다. 나 역시도 커 버린 언니, 오빠네 아이들 옷을 가져다 입히기도 한다. 다행이 우리 아이들이 잘 입어주어 고맙다.
옛날에는 옷을 사줘도 금방 클 거라며 몇 치수 큰 옷을 사 입었는데 요즘엔 몸에 꼭 맞는 옷을 고른다. 그뿐이랴. 어떤 이는 어렸을 때 꼭 맞는 신발을 신어 본 적이 없단다. 오랜만에 새 신발을 사주지만 조금 있으면 발이 커서 못 신게 된다며 헐렁헐렁한 신발을 사 주셨단다. 그런데 비포장도로를 다니고 길 주변에 있는 돌멩이에 채이다 보면 신발이 발에 꼭 맞기 전에 발가락이 나오고 만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은 적이 있다.

옛날에는 그랬지만 요즘엔 다르다. 옷에 따라 신발도 다르고, 디자인 따라 운동화도 몇 켤레씩이다.  교복은 또 어떻고. 3년을 입어야 한다며 항상 큼직하게 입고 다녔는데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에 따라 약간 넉넉한 옷을 고르되 몇 달이 안 되어 바지통은 좁아지고, 치마 길이는 짧아지며, 허리선은 잘록하게 들어간다. 저희들 몸에 맞게 스스로 고쳐 입는다. 오늘 아침에 만난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서 몇 학년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좀 어색하고 헐렁해 보이는 옷은 1학년이고, 멋을 한껏 부리고 몸에 착 달라붙게 입은 아이들은 2.3학년이다. 물론 몸이 크기도 했겠지만 치마 길이며 허리선이 성형수술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좀 길다 싶게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딸아이도 언제 고쳐 달라고 할지, 그러면 무슨 말로 거절해야 할지 고민이다.

어머니께 떼를 써서 새 옷을 얻어 입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이들이 떼를 쓰면 내가 사 줘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세월은 흘러가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되풀이된다. 지금은 입고 싶은 옷을 떼쓰지 않고 스스로 사서 입어 보지만 아마도 내가 처음 교복 입던 날의 그 기분은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다시는 느껴보지 못할 아련한 추억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