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랑 18세

2005.04.01 14:18

배윤숙 조회 수:54 추천:6

낭랑 18세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배윤숙



어제가 만우절이었는데 뉴스에 아무 얘기가 없는 것을 보니 별일 없이 지나간 모양이다. 다행이다. 신문조차도 진득하니 앉아서 볼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빠진 요즘 단거리 100m 달리기라도 하는 양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바쁜 것이 좋은 거라지만…….

"도대체 무엇이 그리 바빠서 이번 모임이 파토난 거야?" "글쎄 옳습니다요."  환갑을 넘긴 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젊음을 유지하고 항상 밝고 바쁘게 지내시는 K언니가 전화로 항의하시는데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C언니 때문이 아니던가요? 호호호."

어느 모임에서 처음 만난 우리 세 사람은 15년 동안 좋은 관계로 지내왔다. 나이 차이가 거의 10살 정도 되지만 맏언니인 K언니와 중간쯤인 C언니 그리고 나, 단 세 사람만의 모임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서로 하는 일들이 달라서 한 달에 한 번씩 정해진 날에 만나면 하는 이야기도 많다. 살아가는 얘기 속에서 서로의 공통점이 없어도 굳이 고집하는 일도 없고, 서로의 하는 일을 소중히 여겨주면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친자매들처럼 그리 지내자는 그런 사이다.
눈이 오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멋진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창 밖으로 펑펑 내리는 눈을 안주 삼아 맥주 잔을 부딪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는 덕진 연못 연꽃이 만발하면 그 꽃을 보자면서 작은 찻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전시회 같은 곳을 찾아다니며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각자 생일이 오면 아주 작은 케잌을 준비해서 조촐하지만 멋진 파티도 빠트리지 않는다.

오랜 세월의 만남이지만 만날 때만 회비를 낸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는 그때그때 해결하는 것으로 입을 맞췄기 때문에 회비에 대한 부담도 없다. 만날 때마다 여행을 가자고 하지만 한 번도 성사된 적이 없다. C언니는 손자들이 있어 가끔 할머니 노릇을 해줘야 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는 등 서로 시간들이 맞지 않다 보니 아주 간절한 소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갈 수 있다는 여유 있는 기다림이 있기에 좋다. 그만큼 우리 세 사람의 우정은 빨갛게 잘 익은 사과 같다.  빨갛게 물든 소녀의 뺨 같기도 하고, 한 입 깨물면 새콤달콤하고, 항상 소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자 서로 길들여져 가는 지도 모르겠다.

만나는 날을 정할 때의 일이었다. 만나고 싶을 때마다 언제든 만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공식적으로 날을 정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모임들이 많다보니 왜 그렇게도 걸리는 날이 많은 것인지. 매월 18일이 우리 아이들 아버지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그 날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OK였다. 모임 이름을 어떻게 지으면 좋겠냐고 언니들이 그러기에 ‘낭랑 18세'로 합시다 했더니 그렇게 명명이 된 것이다.

맥주 거품이 꺼질세라 K언니의 건배제의로 우린 외쳤다. K언니가 ‘낭랑!’ 하고 제의하면 우린 입을 맞춰서‘18세!’하니, 주변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서 쳐다보고, 우린 또 신나게 웃어 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