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버릴 때
2005.07.27 09:15
명함을 버릴 때
행촌수필문학회 최화경
‘툭!’하고 명함 한 장이 떨어진다. 정리하던 핸드백에서 떨어진, 얼마 전 개업한 오리 정식 집 명함이었다. 명함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불쾌하여 눈살이 찌푸려지며 노엽기조차 했다. 망설이지 않고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멋진 실내 장식과 고급스런 식기, 거기다 입에 감기던 음식 맛이 생각나 잠시 섭섭했지만, 버린 명함을 다시 줍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 때, 그 명함이 없어지면 예약하는 데 불편할까 봐 신주단지 모시 듯 간직했던 생각이 나서 씁쓸했다. 저마다 음식코드가 달라 아이들과 노인까지 한 곳에서 식사할 수 있는 식당도 드문 요즘, 3대가 모여 그것도 몸에 좋다는 오리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식당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모임 때 애먹는 사람을 보면 그 식당을 추천하곤 했었다. 물론, 한동안 우리 가족 모임은 대부분 그 곳에서 가졌다.
문제는 여러 번 가다 보니 처음 같지 않다는 거였다. 코스 요리에서 양해도 없이 요리가 빠진다든지 사람 수에 따라 음식 양을 강요당했다. 무엇보다 종업원들의 불손한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다. 고객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랬잖아요? 여기 있잖아요?" 하는 식의 따지는 투의 언사가 많아 봉변당하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한결 같지 않다는 건 운영에 소신이 없다는 얘기고 뿌리가 없는 것과도 같아 먼 장래를 기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모든 원인은 종업원 잘못이란 투의 사과만을 반복하는 책임자의 태도 역시 못마땅했다. 친절 교육의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책임자가 더 실망스러웠다. 며칠 전 가족모임에서도 예의 불친절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불쾌해서 기분을 망치고 말았다. 난 이곳의 명함을 버려야 할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네는 모이면 서로들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건넨다. 호감을 가지고 명함을 받기도 하고 기대를 가지고 명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함과 실망, 혹은 불필요함을 느끼며 명함을 버리게 된다. 잘 찢어지지 않는 재질의 명함은 버려진 사진보다 더 혹독하게 짓밟히기도 한다. 버려진다는 건 어쨌든 쓸쓸한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손때 묻어 정들었던 물건을 버린다든가 하다 못해 맛이 변해버린 음식을 버리는 것조차 언짢게 다가오는 게 버릴 때의 감정이다. 생각해 보면 명함을 버린다는 건 명함에 얽힌 인연의 고리를 끊거나 포기하겠다는 행위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든가 혹은 포기한 존재가 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잊혀지지 않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또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런 고통스런 노력의 연속이 삶 그 자체가 아닐는지…….
오늘도 나는 고객들에게 검정 글씨로 또렷하게 내 이름이 새겨진, 되도록 오래 기억되고 간직하고 싶어지는 노란색의 명함을 건넨다. 언제든 필요할 때 긴요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물론 모두 다 간직할 거란 기대는 없다. 다만 실망으로 인해 불쾌해지는 마음으로 내 명함이 버려져 쓰레기통에 던져지거나 밟혀 더렵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행촌수필문학회 최화경
‘툭!’하고 명함 한 장이 떨어진다. 정리하던 핸드백에서 떨어진, 얼마 전 개업한 오리 정식 집 명함이었다. 명함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주 잠깐이었지만 불쾌하여 눈살이 찌푸려지며 노엽기조차 했다. 망설이지 않고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멋진 실내 장식과 고급스런 식기, 거기다 입에 감기던 음식 맛이 생각나 잠시 섭섭했지만, 버린 명함을 다시 줍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 때, 그 명함이 없어지면 예약하는 데 불편할까 봐 신주단지 모시 듯 간직했던 생각이 나서 씁쓸했다. 저마다 음식코드가 달라 아이들과 노인까지 한 곳에서 식사할 수 있는 식당도 드문 요즘, 3대가 모여 그것도 몸에 좋다는 오리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식당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모임 때 애먹는 사람을 보면 그 식당을 추천하곤 했었다. 물론, 한동안 우리 가족 모임은 대부분 그 곳에서 가졌다.
문제는 여러 번 가다 보니 처음 같지 않다는 거였다. 코스 요리에서 양해도 없이 요리가 빠진다든지 사람 수에 따라 음식 양을 강요당했다. 무엇보다 종업원들의 불손한 태도에 울화가 치밀었다. 고객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랬잖아요? 여기 있잖아요?" 하는 식의 따지는 투의 언사가 많아 봉변당하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한결 같지 않다는 건 운영에 소신이 없다는 얘기고 뿌리가 없는 것과도 같아 먼 장래를 기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모든 원인은 종업원 잘못이란 투의 사과만을 반복하는 책임자의 태도 역시 못마땅했다. 친절 교육의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책임자가 더 실망스러웠다. 며칠 전 가족모임에서도 예의 불친절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불쾌해서 기분을 망치고 말았다. 난 이곳의 명함을 버려야 할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우리네는 모이면 서로들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건넨다. 호감을 가지고 명함을 받기도 하고 기대를 가지고 명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함과 실망, 혹은 불필요함을 느끼며 명함을 버리게 된다. 잘 찢어지지 않는 재질의 명함은 버려진 사진보다 더 혹독하게 짓밟히기도 한다. 버려진다는 건 어쨌든 쓸쓸한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손때 묻어 정들었던 물건을 버린다든가 하다 못해 맛이 변해버린 음식을 버리는 것조차 언짢게 다가오는 게 버릴 때의 감정이다. 생각해 보면 명함을 버린다는 건 명함에 얽힌 인연의 고리를 끊거나 포기하겠다는 행위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딘가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든가 혹은 포기한 존재가 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잊혀지지 않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또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런 고통스런 노력의 연속이 삶 그 자체가 아닐는지…….
오늘도 나는 고객들에게 검정 글씨로 또렷하게 내 이름이 새겨진, 되도록 오래 기억되고 간직하고 싶어지는 노란색의 명함을 건넨다. 언제든 필요할 때 긴요하게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물론 모두 다 간직할 거란 기대는 없다. 다만 실망으로 인해 불쾌해지는 마음으로 내 명함이 버려져 쓰레기통에 던져지거나 밟혀 더렵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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