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노출죄
2005.08.01 09:15
알몸 노출죄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우리나라 동해안에도 내년이면 누드 해수욕장이 생길 전망이다. 강원도 환 동해 출장소는 16일 ‘누드 비치의 개설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올해 해수욕장 개장기간 중 피서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반응이 좋고 수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년에 강릉, 고성 두 곳에 누드해수욕장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등굣길 여중생들을 상대로 누드쇼(?)를 벌이던 50대 후반의 ‘바바리 맨’이 부산 지역에 시범 배치된 스쿨 폴리스에 붙잡혔다.”
“지난 30일 MBC '음악캠프' 생방송 중 그룹 럭스의 공연이 끝나기 전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화장한 두 명이 옷을 벗었고 카메라 화면에 약 몇 초간 이들의 알몸이 노출되었다."
요즘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온통 벗는 세상이 된 듯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홀딱 패션이 복고풍을 타고 전국을 강타한 모양이다.
나도 옷을 벗었었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지금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중복 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보신탕이나 삼계탕으로 복달임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 생각할 수 도 없었다. 저녁을 마치자 모든 하숙생들에게 급히 방으로 모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제일 맏형이 엄숙히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맏형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우리들이 비록 보신탕이나 삼계탕으로 복달임은 할 수 없지만 삼복더위를 무사히 넘기길 위하여 오늘밤에 참외서리를 감행하고자 하니 모두들 참여하기 바란다.” 사서는 먹을 수 없는 참외도 맘껏 먹을 수 있고, 더위도 식힐 수 있는 공포체험이었다. 맏형은 “첫째, 절대로 소리는 내지 말 것, 둘째, 몸을 낮추고 엉금엉금 기어 갈 것. 셋째, 들고 도망갈 수 없으니 너무 많이 따지 말 것. 마지막으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옷은 완전히 벗을 것.” 우리들은 밀가루자루 하나씩 가지고 비장한 각오로 전장으로 향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고, 개구리들이 악을 쓰며 군가를 부르듯 울어대고 있었다. 진북초등학교자리엔 건물은 없었고 전체가 참외와 오이, 배추와 무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한 바퀴 둘러본 후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멀찍이 서있는 나무 밑에서 모두 옷을 벗고 빈 자루만 들었다. 군대를 갔다 온 지금 같았으면 몸에서 많은 빛이 반사되므로 숯검정 등으로 위장을 하였을 텐데, 그저 옷만 다 벗으면 안 보이는 줄 알았었다. 발가벗고 자루 하나씩 들고 있는 우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 깔깔깔 웃다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각자 흩어져 자루가 적당히 차면 옷이 있는 나무 밑에 모이기로 했다. 나도 혼자서 슬금슬금 기어나갔다. 갑자기 옆에서 개구리가 펄쩍 뛰었다. 악! 소리가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에서 빙빙 돌고 있는 잠자리들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겨우 참외를 한 개 땄는데 너무 어두워서 잘 익었는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금방이라도 주인이 이놈! 하며 목덜미를 붙들 것만 같았다. 그냥 손에 닿는 대로 따고 또 따서 자루에 넣었다. 한 참을 따다 보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내가 너무 늦었구나. 일어서려고 자루를 들으니 너무 많이 따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욕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반절 정도는 버려야 했다. 옷들을 입고 뒤도 돌아보질 않고 힘껏 달려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이곳저곳 모기에 물리고 가시에 찔려서 영광의 상처들이 즐비했다. 자루에서 따온 것들을 모두 꺼내놓으니 제법 많이는 따왔는데 먹지 못할 정도로 익지 않은 것이 태반이었다. 우리들은 별들이 반짝이는 여름밤 까만 하늘을 쳐다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 날 복 달임은 아주 배불리 잘했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참외서리였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중복이 돌아오면 그 날을 생각하며 웃는다. 지금은 여유가 많아져 참외서리를 할 필요가 없고 복달임도 기름지게 하지만 옛날만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훨씬 지난 오늘에야 내가 참외절도죄와 알몸 노출죄를 범했던 사실을 자수한다.(2005. 8. 1)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우리나라 동해안에도 내년이면 누드 해수욕장이 생길 전망이다. 강원도 환 동해 출장소는 16일 ‘누드 비치의 개설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올해 해수욕장 개장기간 중 피서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반응이 좋고 수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년에 강릉, 고성 두 곳에 누드해수욕장을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등굣길 여중생들을 상대로 누드쇼(?)를 벌이던 50대 후반의 ‘바바리 맨’이 부산 지역에 시범 배치된 스쿨 폴리스에 붙잡혔다.”
“지난 30일 MBC '음악캠프' 생방송 중 그룹 럭스의 공연이 끝나기 전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화장한 두 명이 옷을 벗었고 카메라 화면에 약 몇 초간 이들의 알몸이 노출되었다."
요즘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온통 벗는 세상이 된 듯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홀딱 패션이 복고풍을 타고 전국을 강타한 모양이다.
나도 옷을 벗었었다. 지금부터 40여 년 전 지금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중복 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보신탕이나 삼계탕으로 복달임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 생각할 수 도 없었다. 저녁을 마치자 모든 하숙생들에게 급히 방으로 모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제일 맏형이 엄숙히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맏형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우리들이 비록 보신탕이나 삼계탕으로 복달임은 할 수 없지만 삼복더위를 무사히 넘기길 위하여 오늘밤에 참외서리를 감행하고자 하니 모두들 참여하기 바란다.” 사서는 먹을 수 없는 참외도 맘껏 먹을 수 있고, 더위도 식힐 수 있는 공포체험이었다. 맏형은 “첫째, 절대로 소리는 내지 말 것, 둘째, 몸을 낮추고 엉금엉금 기어 갈 것. 셋째, 들고 도망갈 수 없으니 너무 많이 따지 말 것. 마지막으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옷은 완전히 벗을 것.” 우리들은 밀가루자루 하나씩 가지고 비장한 각오로 전장으로 향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고 있었고, 개구리들이 악을 쓰며 군가를 부르듯 울어대고 있었다. 진북초등학교자리엔 건물은 없었고 전체가 참외와 오이, 배추와 무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한 바퀴 둘러본 후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멀찍이 서있는 나무 밑에서 모두 옷을 벗고 빈 자루만 들었다. 군대를 갔다 온 지금 같았으면 몸에서 많은 빛이 반사되므로 숯검정 등으로 위장을 하였을 텐데, 그저 옷만 다 벗으면 안 보이는 줄 알았었다. 발가벗고 자루 하나씩 들고 있는 우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 깔깔깔 웃다가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각자 흩어져 자루가 적당히 차면 옷이 있는 나무 밑에 모이기로 했다. 나도 혼자서 슬금슬금 기어나갔다. 갑자기 옆에서 개구리가 펄쩍 뛰었다. 악! 소리가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등줄기에선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에서 빙빙 돌고 있는 잠자리들이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겨우 참외를 한 개 땄는데 너무 어두워서 잘 익었는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금방이라도 주인이 이놈! 하며 목덜미를 붙들 것만 같았다. 그냥 손에 닿는 대로 따고 또 따서 자루에 넣었다. 한 참을 따다 보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내가 너무 늦었구나. 일어서려고 자루를 들으니 너무 많이 따서 도저히 들 수가 없었다. 욕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반절 정도는 버려야 했다. 옷들을 입고 뒤도 돌아보질 않고 힘껏 달려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이곳저곳 모기에 물리고 가시에 찔려서 영광의 상처들이 즐비했다. 자루에서 따온 것들을 모두 꺼내놓으니 제법 많이는 따왔는데 먹지 못할 정도로 익지 않은 것이 태반이었다. 우리들은 별들이 반짝이는 여름밤 까만 하늘을 쳐다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 날 복 달임은 아주 배불리 잘했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참외서리였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지금도 중복이 돌아오면 그 날을 생각하며 웃는다. 지금은 여유가 많아져 참외서리를 할 필요가 없고 복달임도 기름지게 하지만 옛날만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훨씬 지난 오늘에야 내가 참외절도죄와 알몸 노출죄를 범했던 사실을 자수한다.(200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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