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의 항변
2005.08.24 12:15
호박꽃의 항변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세상 사람들이여! 우리들 호박의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해서 이렇게 넋두리라도 해야지 살 것 같습니다. 우리 호박들이 사람들에게 무얼 잘 못했습니까? 아니면 전생의 철천지원수라도 됩니까? 왜 우리 전체를 못생기고 형편없는 호박이라고 매도하는 겁니까? 후손들을 보기에 너무 민망합니다.
우리 호박은 멀리 동 인도에서 임진왜란이후 중국과 일본을 거쳐 들어왔고,‘오랑캐로부터 전해진 박과 비슷하다’고 해서 호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우리들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우량야채입니다.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공급원으로 우리밖에 없습니다. 특히 비타민 A, C, E가 많이 들어있어서 항 산화작용으로 암, 동맥경화, 노화를 예방합니다. 호박씨에는 아연과 망간이 많고, 호박죽은 중풍, 부인병, 위장질환 등 만병통치약입니다.
애호박, 단 호박, 늙은 호박, 약 호박(화초호박)등이 있지요. 호박잎에 된장을 넣어 국도 끓여 먹고, 어린 호박잎은 밥에 쪄서 된장이나 양념장을 찍어 먹는 맛은 말 그대로 고향을 대표하는 맛입니다. 명절 때마다 빠지지 않은 호박전,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는 호박떡, 호박 장아찌, 호박김치도 있고, 정월 대보름날에 호박 나물은 빠질 수 없는 나물이지요. 이렇듯 우리 호박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온몸을 바쳐 희생하는지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 공적 비를 세워달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호박을 비하하거나 못생긴 것의 대명사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면서 예쁘지 않은 여자를 부를 때 호박꽃이라고 하고, 심술궂고 못된 일을 할 때면 “호박에 말뚝 박기”라고도 합니다. 말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는“호박에 침주기”라고도 하고, 겉으로 얌전한 체하면서 은밀히 온갖 짓을 다하는 사람에게는“똥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호박 같은 내 얼굴 미웁기도 하지요.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도 삐뚤 삐뚤” 이런 노래를 만들어서 호박은 못생겼다고 대를 이어서 세뇌교육을 시킵니다.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또한 우리들은 평평한 밭은 언감생심 차지하질 못하고 늘 논두렁이나 밭 두렁, 산비탈 등에만 심기 때문에 서있기도 힘들어 넝쿨을 이용하여 엉금엉금 기어가며 모진 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흥부전에서 나오는 박같이 지붕 위에서 뒹구는 호강은 바라지 않지만, 이런 푸대접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또한 우리는 화분에 주는 좋은 비료는 원하지 않지만 다른 채소에게 주는 비료 정도는 줘야할 게 아닙니까? 인분(人糞)이 뭡니까, 인분이? 창피하고도 서글픈 일입니다.
우리 호박뿐만 아니라 억울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필요 없는 선입관을 많이 갖고 삽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그 선입관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미운 사람, 나쁜 사람, 무능한 사람, 좋은 사람 등등 사람들에게 자기들 입장에서 미리 이름표를 붙이곤 합니다. 뱀은 징그럽고, 돼지는 더럽고, 장미는 예쁘고, 호박꽃은 밉다고 가르칩니다. 그냥 뱀은 뱀이고, 호박은 호박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뱀과 돼지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지 않습니까? 장미는 꽃만 필요하지만 호박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용한 존재가 아닙니까? 사람들은 겉모양만으로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란 속담이 맞는지 아니면 “못생겨도 맛은 좋아”가 맞는지. 포장만 요란스런 세상, 꼴값하는 세상, 성능보다 디자인만을 앞세우는 세상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세상입니까.
하지만 요즘은 우리 호박들에게도 조금은 희망이 보입니다. 2005년 8월 전라남도 함평에서 호박축제가 열렸습니다. 함평미니단호박 작목반이 주관하여 80여종의 각종호박과 슈퍼호박, 호박분재 등을 전시하고 호박, 호박음식도 판매했습니다. 호박국수 빨리 먹기, 호박씨 멀리 뱉기, 호박조각품 만들기. 호박요리경연대회도 가졌습니다.
우리들에게 제일 설레게 했던 것은 호박왕선발대회였습니다. 이왕 우리들의 우수성을 인정하려면 서양의 할로윈 날처럼 전 국민이 호박가면을 쓰는 날을 만들던지 아니면 동짓날 팥죽 대신 호박죽을 먹었으면 하는 게 우리들의 소망입니다만 이건 너무 무리한 소망인가요? 그러면 이건 어때요? “호박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이렇게 노래를 하는 사람들만 맛있고 영양 만점인 호박제품을 먹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들면 어떨까요? (2005. 8. 25)
전북대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정현창
세상 사람들이여! 우리들 호박의 이야기 좀 들어 보세요.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해서 이렇게 넋두리라도 해야지 살 것 같습니다. 우리 호박들이 사람들에게 무얼 잘 못했습니까? 아니면 전생의 철천지원수라도 됩니까? 왜 우리 전체를 못생기고 형편없는 호박이라고 매도하는 겁니까? 후손들을 보기에 너무 민망합니다.
우리 호박은 멀리 동 인도에서 임진왜란이후 중국과 일본을 거쳐 들어왔고,‘오랑캐로부터 전해진 박과 비슷하다’고 해서 호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우리들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우량야채입니다.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공급원으로 우리밖에 없습니다. 특히 비타민 A, C, E가 많이 들어있어서 항 산화작용으로 암, 동맥경화, 노화를 예방합니다. 호박씨에는 아연과 망간이 많고, 호박죽은 중풍, 부인병, 위장질환 등 만병통치약입니다.
애호박, 단 호박, 늙은 호박, 약 호박(화초호박)등이 있지요. 호박잎에 된장을 넣어 국도 끓여 먹고, 어린 호박잎은 밥에 쪄서 된장이나 양념장을 찍어 먹는 맛은 말 그대로 고향을 대표하는 맛입니다. 명절 때마다 빠지지 않은 호박전,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는 호박떡, 호박 장아찌, 호박김치도 있고, 정월 대보름날에 호박 나물은 빠질 수 없는 나물이지요. 이렇듯 우리 호박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온몸을 바쳐 희생하는지 알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 공적 비를 세워달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호박을 비하하거나 못생긴 것의 대명사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면서 예쁘지 않은 여자를 부를 때 호박꽃이라고 하고, 심술궂고 못된 일을 할 때면 “호박에 말뚝 박기”라고도 합니다. 말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는“호박에 침주기”라고도 하고, 겉으로 얌전한 체하면서 은밀히 온갖 짓을 다하는 사람에게는“똥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 호박 같은 내 얼굴 미웁기도 하지요. 눈도 삐뚤 코도 삐뚤 입도 삐뚤 삐뚤” 이런 노래를 만들어서 호박은 못생겼다고 대를 이어서 세뇌교육을 시킵니다.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또한 우리들은 평평한 밭은 언감생심 차지하질 못하고 늘 논두렁이나 밭 두렁, 산비탈 등에만 심기 때문에 서있기도 힘들어 넝쿨을 이용하여 엉금엉금 기어가며 모진 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흥부전에서 나오는 박같이 지붕 위에서 뒹구는 호강은 바라지 않지만, 이런 푸대접은 너무한 것 아닙니까? 또한 우리는 화분에 주는 좋은 비료는 원하지 않지만 다른 채소에게 주는 비료 정도는 줘야할 게 아닙니까? 인분(人糞)이 뭡니까, 인분이? 창피하고도 서글픈 일입니다.
우리 호박뿐만 아니라 억울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필요 없는 선입관을 많이 갖고 삽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도 그 선입관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미운 사람, 나쁜 사람, 무능한 사람, 좋은 사람 등등 사람들에게 자기들 입장에서 미리 이름표를 붙이곤 합니다. 뱀은 징그럽고, 돼지는 더럽고, 장미는 예쁘고, 호박꽃은 밉다고 가르칩니다. 그냥 뱀은 뱀이고, 호박은 호박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뱀과 돼지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지 않습니까? 장미는 꽃만 필요하지만 호박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용한 존재가 아닙니까? 사람들은 겉모양만으로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란 속담이 맞는지 아니면 “못생겨도 맛은 좋아”가 맞는지. 포장만 요란스런 세상, 꼴값하는 세상, 성능보다 디자인만을 앞세우는 세상입니다. 다이어트를 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세상입니까.
하지만 요즘은 우리 호박들에게도 조금은 희망이 보입니다. 2005년 8월 전라남도 함평에서 호박축제가 열렸습니다. 함평미니단호박 작목반이 주관하여 80여종의 각종호박과 슈퍼호박, 호박분재 등을 전시하고 호박, 호박음식도 판매했습니다. 호박국수 빨리 먹기, 호박씨 멀리 뱉기, 호박조각품 만들기. 호박요리경연대회도 가졌습니다.
우리들에게 제일 설레게 했던 것은 호박왕선발대회였습니다. 이왕 우리들의 우수성을 인정하려면 서양의 할로윈 날처럼 전 국민이 호박가면을 쓰는 날을 만들던지 아니면 동짓날 팥죽 대신 호박죽을 먹었으면 하는 게 우리들의 소망입니다만 이건 너무 무리한 소망인가요? 그러면 이건 어때요? “호박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 반짝”이렇게 노래를 하는 사람들만 맛있고 영양 만점인 호박제품을 먹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들면 어떨까요? (200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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