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문
2005.08.14 09:28
굳게 닫힌 문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권영숙
'임시 휴업 중!' '여름휴가 중!'
시내를 걷다 보면 이런 문구와 함께 문 닫힌 가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생활수준이 나아지다 보니 남들 즐기는 휴일은 자신들도 즐겨야겠다는 생각들로 변한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먼 산행을 마치고 야들야들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며 남편과 함께 중앙시장 안 어느 음식점을 찾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그 곳까지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기대에 어긋나서일까. 돌아오는 길은 산행에서 쌓인 피로보다 몇 갑절 더 피곤하고 허기가 졌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비치는 불 꺼진 K의 가게 앞을 지나자니 가슴속에서 아릿한 아픔이 솟아났다.
K는 고향 친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학교를 진학할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했었다. 또한 K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다보니 맏이인 K는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기로 하였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길가에 서서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하였었다. 한 반년 정도 집에 있다가 어디론가 돈 벌러 떠났다는 이야기만 들렸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전주에 가게를 하나 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비록 시장 통 골목 안의 좁은 가게이지만 남의 집에 들어가 기술을 익히고 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가게를 차렸으니 K는 아마도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K의 가게 앞을 지날 때면 한 번씩 들르곤 하였다. 어두컴컴한 구석방에서 열심히 재봉틀을 밟으며 멋진 이불을 만들어내고 있는 친구가 마치 마술사 같았다. 예쁜 이불에 핑크빛 꿈을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일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K는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 셋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녀의 성실함 때문일까. 가게도 번창해 번듯한 가게를 차리더니 대로변의 몫 좋은 곳에 또 하나를 차렸다. 그러니까 큰 가게가 두 개로 불어난 셈이었다. 두 곳을 차리다 보니 친정 시댁 식구들이 다 동원되어도 그녀는 항상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도 빠지는 일이 잦아지고, 아침부터 밤늦도록 가게에 붙어있다 보니 친구들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수록 그 친구의 존재가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잘 살고 있고, 장사도 잘 되겠지 생각하며 생활한 지 그럭저럭 1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K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이 심해 어디론가 숨어버린 상태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는데 참 안 됐다는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툭하면 아내를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가둬놓고 장모님 시켜 딸 빼내오라는 일이 잦다 보니 몸과 맘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단다.
K의 성실함과 신용으로 단골이 늘어나고 일감이 많이 늘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풍요, 그것이 문제였다. 끊이지 않는 손님들로 인해 보이는 부는 불어났으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순박하고 성실했던 남편의 외출하는 횟수가 잦아졌단다. 며칠 씩 나가 있다가 잊을 만하면 들어와서 자기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누구를 만났느냐며 왼 종일 방에 가두고 때리고 부수고는 또 휑하니 나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K가 꼭꼭 숨어버렸단다.
혹시나 하고 친구의 가게 앞을 지나다가 닫혀 있는 문을 보면 가슴이 시렸다. 번듯한 가게를 차리기까지 K가 겪어야했던 세월의 아픈 흔적과 어깨에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알고 있는 나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렸다. 일감이 밀려 다리가 퉁퉁 부어있던 그녀를 여러 번 보았었다. 묵은 솜뭉치에서 떨어지는 먼지는 그녀의 폐를 잠식해버려 오랫동안 천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힘들었던 그녀의 지난 세월이었기에 꽃송이 피어나듯 사업이 번창하는 것도, 그녀의 주위에 항상 머물러 주는 행복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학업에 대한 열망도 식지 않아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을 했다며 참 좋아했었다. 자신의 가게를 중국으로 늘려볼 야무진 생각까지 하며 바쁜 틈에도 중국어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앞으로 다가올 날을 위해 준비하고 실천하는 K의 삶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K를 통해 성실함을 배우고 미래를 꿈꾸는 자의 행복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도 시내에 나가면 난 K의 가게 앞으로 발길을 돌린다. 혹시라도 가게문을 활짝 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어디에선가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다.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싶어 불쑥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번번이 쓸쓸함만 안고 가던 길을 되돌아 왔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그녀의 무사함만을 빌 뿐, 내가 K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의 닫힌 가게문을 보며 내 마음의 문을 생각해 보았다. 혹시 가까이 다가오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지는 않았을까. 굳게 닫혀버린 친구의 가게 앞에서 지난 세월의 덧없음과 보이지 않은 벽을 느끼며 돌아왔듯이, 닫혀 버린 내 마음의 문 앞에서 돌아서 버린 사람들은 있지 않았을까. 아픈 가슴 달래보기 위해 찾아왔던 이웃을 돌아서게 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보았다. 지치고 고단한 삶을 잠시 쉬고 싶어 찾았다가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지금부터라도 언제 어느 때 달려와도 내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어야겠다.
그리고 어딘가 꼭꼭 숨어 버린 K가 부디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은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믿음의 문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정의 행복을 되찾아 씩씩하고 성실하며 꿈을 담아 나르는 옛날의 K로 우리 앞에 다시 당당히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권영숙
'임시 휴업 중!' '여름휴가 중!'
시내를 걷다 보면 이런 문구와 함께 문 닫힌 가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생활수준이 나아지다 보니 남들 즐기는 휴일은 자신들도 즐겨야겠다는 생각들로 변한 것 같다. 며칠 전에는 먼 산행을 마치고 야들야들 잘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며 남편과 함께 중앙시장 안 어느 음식점을 찾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그 곳까지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기대에 어긋나서일까. 돌아오는 길은 산행에서 쌓인 피로보다 몇 갑절 더 피곤하고 허기가 졌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비치는 불 꺼진 K의 가게 앞을 지나자니 가슴속에서 아릿한 아픔이 솟아났다.
K는 고향 친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학교를 진학할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했었다. 또한 K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다보니 맏이인 K는 그들을 위하여 희생하기로 하였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길가에 서서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하였었다. 한 반년 정도 집에 있다가 어디론가 돈 벌러 떠났다는 이야기만 들렸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전주에 가게를 하나 차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비록 시장 통 골목 안의 좁은 가게이지만 남의 집에 들어가 기술을 익히고 받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가게를 차렸으니 K는 아마도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K의 가게 앞을 지날 때면 한 번씩 들르곤 하였다. 어두컴컴한 구석방에서 열심히 재봉틀을 밟으며 멋진 이불을 만들어내고 있는 친구가 마치 마술사 같았다. 예쁜 이불에 핑크빛 꿈을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일을 하는 그녀의 얼굴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K는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 셋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녀의 성실함 때문일까. 가게도 번창해 번듯한 가게를 차리더니 대로변의 몫 좋은 곳에 또 하나를 차렸다. 그러니까 큰 가게가 두 개로 불어난 셈이었다. 두 곳을 차리다 보니 친정 시댁 식구들이 다 동원되어도 그녀는 항상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두 달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도 빠지는 일이 잦아지고, 아침부터 밤늦도록 가게에 붙어있다 보니 친구들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수록 그 친구의 존재가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잘 살고 있고, 장사도 잘 되겠지 생각하며 생활한 지 그럭저럭 1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K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이 심해 어디론가 숨어버린 상태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는데 참 안 됐다는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툭하면 아내를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가둬놓고 장모님 시켜 딸 빼내오라는 일이 잦다 보니 몸과 맘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단다.
K의 성실함과 신용으로 단골이 늘어나고 일감이 많이 늘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풍요, 그것이 문제였다. 끊이지 않는 손님들로 인해 보이는 부는 불어났으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 순박하고 성실했던 남편의 외출하는 횟수가 잦아졌단다. 며칠 씩 나가 있다가 잊을 만하면 들어와서 자기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누구를 만났느냐며 왼 종일 방에 가두고 때리고 부수고는 또 휑하니 나가 버린다는 것이었다.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K가 꼭꼭 숨어버렸단다.
혹시나 하고 친구의 가게 앞을 지나다가 닫혀 있는 문을 보면 가슴이 시렸다. 번듯한 가게를 차리기까지 K가 겪어야했던 세월의 아픈 흔적과 어깨에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알고 있는 나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렸다. 일감이 밀려 다리가 퉁퉁 부어있던 그녀를 여러 번 보았었다. 묵은 솜뭉치에서 떨어지는 먼지는 그녀의 폐를 잠식해버려 오랫동안 천식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힘들었던 그녀의 지난 세월이었기에 꽃송이 피어나듯 사업이 번창하는 것도, 그녀의 주위에 항상 머물러 주는 행복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학업에 대한 열망도 식지 않아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을 했다며 참 좋아했었다. 자신의 가게를 중국으로 늘려볼 야무진 생각까지 하며 바쁜 틈에도 중국어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앞으로 다가올 날을 위해 준비하고 실천하는 K의 삶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K를 통해 성실함을 배우고 미래를 꿈꾸는 자의 행복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도 시내에 나가면 난 K의 가게 앞으로 발길을 돌린다. 혹시라도 가게문을 활짝 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해서다. 어디에선가 내 모습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기도 하였다.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싶어 불쑥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번번이 쓸쓸함만 안고 가던 길을 되돌아 왔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그녀의 무사함만을 빌 뿐, 내가 K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의 닫힌 가게문을 보며 내 마음의 문을 생각해 보았다. 혹시 가까이 다가오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지는 않았을까. 굳게 닫혀버린 친구의 가게 앞에서 지난 세월의 덧없음과 보이지 않은 벽을 느끼며 돌아왔듯이, 닫혀 버린 내 마음의 문 앞에서 돌아서 버린 사람들은 있지 않았을까. 아픈 가슴 달래보기 위해 찾아왔던 이웃을 돌아서게 한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보았다. 지치고 고단한 삶을 잠시 쉬고 싶어 찾았다가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지금부터라도 언제 어느 때 달려와도 내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삶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어야겠다.
그리고 어딘가 꼭꼭 숨어 버린 K가 부디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은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믿음의 문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정의 행복을 되찾아 씩씩하고 성실하며 꿈을 담아 나르는 옛날의 K로 우리 앞에 다시 당당히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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