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창작 -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 / 김영교

2018.08.08 14:05

kimyoungkyo 조회 수: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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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 / 김영

 

김영길선생이 쓴 누죽걸산* 이란 책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컸다. ‘강원도 오지에서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로 신토불이 치료법을 제시, 수많은 현대인의 난치병을 고쳐 냈다. 누죽걸산은 그 책 약식 표기다. 서울대를 나온 후 한의사적 깨달음으로 접근, 자연식 치료법으로 현대인의 불치병을 고쳐내고 있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걸어야 산다에서 이제는 걷는 게 좋아졌다. 이 동네 길 초입부터  메이플 나무들이 정연하게 쭉 서있어 시원하게 시야를 터준다. 무성한 잎사귀 사이에서 그늘과 하늘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여름을 보내면서 곱게 물들기 시작한 양지쪽 메이플 가로수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여름과 가을이 잎사귀 양면에 다 있다. 큰길 건너에 있는 넓은 윌슨공원은 늘 생동감 넘치는 초록으로 발길을 끌어당긴다. 응원 고함소리는 리들 리그 (Little League) 야구팀이다. 어린 자식들을 한없이 응원해도 모자라는 부모들 함성이다. 나는 이 산책길은 사랑한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 시야에 머물다 마음을 채우는 아름다운 조화, 조용히 다가와 나의 느낌 공장을 가동시킨다. 나는 걸으며 생각한다.


인간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늘 길이 나 있다. 사람은 길을 만들며 길과 함께 살아간다. 길이 없는 동네는 어느 세상에도 없다. 길을 따라 가다가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죽고... 인생이란 노상(路上)을 오가는 왕래 아닌가. 길은 생명이기에 산에도 들에도 특히 샘물가에는 사방으로 난 길이 있다. 인간의 두 다리는 길을 전제로 하고 이동하는 도구로 쓰여 왔던 것이다. 숨 가쁜 내 행보의 태엽을 늦추어 주면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 산책길은 그래서 뉘우침을 전제로 지적당하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길이 있다. 보이는 길, 보이지 않는 길, SNS, 스마트 사이버 왕래에 덮치는 정보의 길을 본다. 그저 놀랍고 경이롭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이다. 마음과 마음, 사람과 창조주, 우주공간 그리고 모든 만물끼리 연결해주는 길, 어찌 깊이나 넓이를 가늠할 수가 있으랴만 큰길, 샛길, 골목길 등 쉽게 파악되는 지상의 내 몫의 길을 나는 지나가고 있다.


속담에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도(正道)에 벗어나는 일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는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길이다. 스승의 길, 구도자의 길, 제자의 길, 사람의 길 등 과정이나 도리나 임무 또는 수단이나 방법 등을 의미하기에 더욱 어렵다란 생각이 든다. 부고선배 내외의 장례식을 다녀왔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부가 같은 시간에 세상을 떠났다. 쌍 관을 놓고 우리는 남은 자 자리에서 환송해드렸다. 선배 내외처럼 아주 급작스레 더러는 준비하는 도중 인간은 마지막 길을 간다. 후회나 미련 없이 뛰어내리는 사람낙엽의 길이 있을 순 없을까 생각에 잠긴다.


길이란 행복을 찾아 떠남이며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소의식이다. 살아있음이요, 왕래를 의미한다. 보다 나은 삶으로 발전되는 거래의 기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주에 길을 낸 인공위성, 길이 없는데 있는 길을 날아가는 철새, 사방팔방으로 헤엄치는 바닷물고기, 교통순경 없어도 잘 움직이고 있다. 우주의 길, 바로 질서라는 섭리를 따라 생멸의 리듬은 선과 악, 밤과 낮의 두 얼굴로 균형과 교체의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자연의 호흡인 것이다. 길은 바로 인류사의 발자취이며 역사의 흐름이기도 하다. 나는 의식 있는 그 역사의 개체,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나를 중요하게 인식시켜준다.


물드는 가을을 끼고 가로수 길을 걷는 1시간 동안의 가슴 적시는 감사를 나는 소중히 여긴다. 오늘도 걸을 수 있는 성한 두 다리가 고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두 눈도 감사하다. 살갗에 와 닿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감촉을 체감할 수 있어 그 또한 감사하다.


일찍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외친 어떤 목수 청년은 길 하나를 갈파하였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 나머지 실족 잘하고 남 탓하기 잘하고 내 중심의 지극히 이기적인 나를 세상에 두었고 그런 나를 위해 죽기까지 한 그리고 부활, 그 십자가 길, 그 유일한 구원의 길을 나에게 제시하였다.


가을 하늘은 은총처럼 내려와 투명한 빛으로 관조의 창문을 닦아준다. 뭉클함을 깨닫는다. 내가 무엇이기에, 무슨 섬김과 선행을 했다고, 내 삶에 이 극치의 아름다운 길, 생명의 길을 허락 해 주는가 말이다. 가로수 길 걸으며 늘 푸른 하늘 길을 묵상하는 주말 아침이다.

 *누죽걸산 -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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