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단상(斷想) / 김영교
2018.03.07 17:11
2018.03.08 01:01
간밤에 비가 왔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클로이 킴이 금메달을 딴 뉴스는 통쾌했다,
속 시원하게 내리는 비만큼이나... 병원에서 그 클로이 킴과 친척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기사 킴 모두와 친척이고 싶다. 금 매달 수상은 정겨운 관심사다. 미국이 이기면
기쁘다. 또 한국이 이기면 더 기쁘다. 자연스럽다.
퍼덕이던 이웃들이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는가 하면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이별을 여럿 경험한 지난겨울이었다. 모두들 싱싱한 아가미 벌렁벌렁 출렁 대해를 해엄치던 사람 생선 떼였다. 꿈 높은 싱싱한 청춘시절이 누구나에게 다 있었다. 지금은 돌아보는 때다. 그것이 지극히 ‘잠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 가까이 사는 나는 비치에 잘 간다. 푸른 바다에 가면 발랄한 젊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해풍 마주할 늠름한 기백은 어디갔나? 어느틈에 나는 맨발이기를 사절한다. 지난번 크루스도 젊음과 열정, 흥이 빠져나간 듯 버거웠다. 그 때 알았다. 식욕도 몸도 안 따라주는 것을. 왕성한 근육질 운동신경이 나를 떠나고 있었다.
은퇴삶이 안정과 쉼이 많아 무척 신 나고 즐거울 것이라 상상 했다. 그런 때도 있었다. 지나면서 보니 바쁜 일과의 연속이었다. 결혼식 보다 많은 주위 장례식을 다녀오면 더욱 그렇다. 속을 들여다본다. 그래도 웃는 날이 더 많았고 기뻐 노래 부른 적도 많았다. 외로운 밤보다 옆에 체온을 나누는 남편이 있어 고맙다고 느낀 적 또한 많았다.
살아온 세월보다 이제 남은 시간을 가늠하며 조심스레 가야 할 내리막 길이다. 두달 전 차사고로 나는 혼줄이 났었다. 천하와도 못바꾸는 목숨을, 만신창이 폐차가 저는 다치고 나를 살렸다. 그 사건이 가족이나 이웃, 입원이나 죽음, 닥치는 응급상황에 최선으로 다가가도록 마음 다잡아줬다. 어느날 새벽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의식은 정상이고 아프지도 열도 없었다. 또렷하게 세월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세월기차 라는 것이구나! 이어서 번개생각 하나, 그래 정리할 때가 온 것이야. 이렇게 조짐을 보이는구나 ! 심각하다. 동고동락 그 질긴 욕심을 털어 버려야 하기때문이다.
베풀기도 나누기도 하는 주위 사람들을 본다. 그들도 세월 가는 소리를 들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제 서둘러 정리할 일만 남았다는 판단이다. 정리 후 과연 생의 끝자락에 설 때 의연할 수 있울까? 모든 걸 자식에게 넘겨주는 게 잘하는 처사일까. 쌀알 한 알갱이로 남는 자아는 의식있는 살아있음일까?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나무로 서서 유익한 숲을 이루는 어머니 꿈* 하나 상기된다. 아낌없이 햇볕을 나누는 사람 나무, 선교의 나무이고 싶은. 함께 한 시간, 산새 소리 아름다웠던 추억들, 호흡 상쾌했고 누렸던 가슴 싱그러웠던 리트릿 순간들, 빛나서 이렇게 간직하고 있는데 말이다.
세월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케 하는 마음의 귀가 고맙다.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자기 몫이라는 절대고독 깨달음은 속사람의 귀한 체험이었다. 2018년 3월 2일 금요일은 계속 비오는 밤이었고 고즈녁해서 음악을 데리고 빠져들었다. 참 좋았다. 정원이 함초롬이 젖었으니 내일 새벽에는 자동 스프링클러 스위치를 꺼줘야겠다.
3월은 가방 메고 학교에 가서 자연의 이치를 배운적 없다. 아름답게 꽃 피우는 봄 3월은 진즉에 훤히 다 알고있지 않는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3월답게 움도 싹도 틔울 것을!
*장학재단
윗 작품/ 태영박사 봄소식
제주살던 친구 동연의 정원 꽃 작품-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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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8.03.0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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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3.0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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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
2018.03.08 12:08
밤새 내리는 비처럼, 세월이 가는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 나이인가 봅니다. 그 만큼 '3월 斷想'은 머리와
심장을 아리게 하는군요!
친구분 꽃밭은 '天上의 꽃잔치'이군요!
from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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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8.03.08 13:36
문소선생님:
발걸음 감사.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천상의 꽃집, 맞아요. 친구 동연이 별명은 살아있는 <식물도감>,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뜨락 귀탱이에 큰 항아리 단지 여러개를 묻어놓고 음식찌꺼지로
비료를 만들어요. 놀랐지요. 홍 디포에만 다니는 나에게는 신선한 풍경이었어요.
남편은 대체의학 교수및 의사. 주위 농사가 모두 무공해 친환경 먹걸이.
체소도 과일 특히 단감은 서울 친구들 모두 택배로 맛을 봤지요. 저는 곶감도 먹고
미국까지 가지고 왔지요. 처음 생긴 그 때 둘레길 산책도 인상적이 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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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3.08 21:10
Ode to joy.
성녀와 마녀 사이/ 김승희
엄마, 엄마
그대는 성모가 되어 주세요.
신사임당 엄마처럼 완벽한 여인이 되어
나에게 한 평생 변함없는 모성의 모유를 주셔야 해요.
여보, 여보
당신은 성녀가 되어 주오
간호부처럼 약을 주고 매춘부처럼 꽃을 주고
튼튼실실한 가정부가 되어
나에게 변함없이 행복한 안방을 보여주어야 하오.
여자는 액자가 되어 간다.
액자 속의 정물화처럼
액자 속의 가훈처럼
평화롭고 의젖하게
여자는 조용히 넋을 팔아넘기고 남자들의 꿈으로 미화되어
가화만사성 액자로 조용히 표구되어
안방의 벽에 희미하게 매달려있다.
그녀는 애매하다
성녀와 마녀 사이
엄마 만으로
아내 만으로
표구될 수 없는 정복될 수 없는
여인에게 사랑은 별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여인은 사랑을 통해 여신이 되도록 벌 받고 있는거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영원을 표구하면서
세상을 배경으로 거늘이고 늠름하게 서있지.
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
세상의 여자들은 날지를 못하는구나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착하신데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구나.
- 문학선집『흰 나무 아래의 즉흥』(나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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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표적 페미니스트 여성시인의 오래전 시다. 페미니즘이란 남녀는 평등하며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이념아래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법률적인 모든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를 지칭하는 말이다. 여성해방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시각 또는 이론 체계를 의미하며 ‘여성해방’ 혹은 ‘여성주의’로 번역해 읽기도 한다. ‘여성해방운동’은 대체로 시에서 열거된 ‘여성적인 것’의 탈피를 전제하기 때문에,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요구들과 필연적으로 마찰을 빚게 되어있다. ‘여성적’이란 말이 가부장적인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지배문화에 의해 타자화된 여성을 의미한다면 그렇다.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려할 때, 여성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 충돌과 분열을 불가피하게 경험한다. 현모양처 콤플렉스 또는 천사 콤플렉스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갈등이다. 남성이 주체인 사회에서 여성은 무조건 착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분고분 길들여지면 성녀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마녀가 되고 마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가부장적 가치관은 여성으로 하여금 아이들에게는 현모이기를, 남편에게는 성녀, 간호사,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최근 까발려지는 추문들도 그 의식과 무관치 않다.
그러므로 여성은 늘 사랑을 베푸는 입장이 되어 자신의 감정은 배제된 채 ‘가화만사성’이라는 붙박이 액자로 못 박혀 걸려있다. 필요하거나 생각날 때 그저 바라보아주면, 여성은 집안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언제나 ‘액자 속 모나리자의 미소’가 되어야 한다. 주체적인 삶은 온데간데없고 사랑이나 관습에 얽매여 사는 성녀로서의 삶이 온당한 여성적 삶이라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성녀의 삶이 옳은 것인지, 과연 마녀의 삶이 나쁘기만 한 건지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과 선택은 이 시가 처음 발표된 지 4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오늘의 화두가 되어 그들 스스로의 몫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불리어지며 그리 사는 걸 둘도 없는 행복이라고 여기는 여성들이 적지 않고, 남성들의 엄마와 아내에게 갖는 기대와 환상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의 편견에 싸여 마녀의 본능을 감춘 채, 어쩔 수 없이 성녀인 척 살아가는 여성들 또한 적지 않으리라. '애매하다' 5만원권 지폐의 여성인물로 신사임당이 최적격으로 거론될 때 남성의 여성판타지에 복무되는 것을 반대한 여성계의 의견을 환기한다면 오늘날 여성운동의 현주소와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실제 신사임당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남성들이 받들어 모실만한 성정과 행태를 가진 분은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하고도 오랫동안 친정에서 살면서 남편과 시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였고, 첩을 본 남편 이원수를 격렬히 질타하고 투기했음은 물론 가출을 감행하면서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의 기호에 맞게 박제된 사임당의 이미지 속엔 그 사실이 철저히 가려져 있다. 그럼에도 가부장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식 잘 키우고 그럭저럭 잘 살았다 해서 최종 낙점을 받았던 건 아닐까. 어제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미 투’ 지지와 연대가 성폭력 고발에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착하신데’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구나’라는 탄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전 방위로 뻗어나갈 조짐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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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8.03.09 04:58
아주 오랫만! Skeeter Davis, 들으니 또 좋으네요
nostalgic 향수마저!
함초롬이 젖어들었습니다.
당케
김승희선생님이 아주 힘든 시대를 쓰시네요.
어려운 시를 쓰시네요.
실력도 많고 강의도 잘하시고 아는 것도 많고 ....
권순진 시인의 평, 늘 배움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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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8.03.09 10:33
<3월의 단상> 다시 손질.
너무 노출한것 같아서 찜찜 했어요.
그래도 읽어주고 댓글 주신 발걸음!
늘 감사!
사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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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ck
2018.03.10 01:45
winter behind us spring joys ahead..
All for the Love of a Girl! 산도 강도 폭포도, 바위도 구름은 더 아름답네요. 품어주는 하늘! 정겹네요.
칸추리풍의 곡조가 감미롭습니다. 독후감 발길은 늘 음악 피스를 대동하고 출현하는
척척 박사님,
글 열심히 쓰도록 죽비!
감사.
네, We all shall be there!
fix하셨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