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떼기---최승호
2004.01.17 17:28
2004년 1월 17일 토 중앙일보
시치미떼기
최승호
물그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철쭉꽃을 꺾어간다
그리고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의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주의 깊은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가래침들을 피해 길을 가고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 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 누는 걸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나를 바보멍청이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줍음은 사라졌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더불어 도처에서 번들거린다
그러나
장엄한 우주를 이루어놓고도
조물주는 창조의 수줍음으로 숨어 있느니
그분마저 뻔뻔스러워지면
온 우주가 한 덩어리 가래침이다
예년보다 목련이 필 때가 좀 늦다고 여겼는데 비가 잠깐 다녀간 뒤 앞뜰에 나가보니 자목련 한 송이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로 어제만 해도 금새 피워 낼 모습을 시치미떼고 나를 외면하고 있었는데, 아니 또 이것은 무엇? 어느 집 견공이 나보다 먼저 목련을 감상했던 흔적을 남겼다. 매일 아침 집 앞을 지나는 그 삽사리가 실례를 한 것이 틀림없는데 주인은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지난 것이다. 화단에 철쭉꽃이 피면 누군가 꺾어가고 또 시치미떼지 않을까 염려된다.
시치미라는 말은 매의 임자가 주인을 알게 하기 위하여 매의 꽁지 위 털 속에 매어 둔 주소를 적은 네모진 뿔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치미를 떼어 천연덕스럽게 하고도 안 한 체 하는 사람, 염치없는 사람은 어느 때나 있지만 오늘날은 시치미떼기를 못하는 사람은 고양이까지 업신여길 만큼 사람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민망스러움을 당하는 세상이다.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도의나 염치가 사라져 가고 죄인이나 도둑의 수줍음까지도 보기 드문 현실이다. 무한경쟁에서 당장 이겨 살아남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세태는 마치 가래침을 뱉는 사람이 가래침을 피해 가는 사람보다 오히려 기세 등등하게 길을 가는 참 뻔뻔스러운 모습이다. 도처에서 쓰레기와 배설물 같은 시치미떼기로 오염된 세상을 만난다. 가장 깨끗한 처세로 모본을 보여야 하는 지도자들은 오히려 시치미떼기의 명수들이 너무 많아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 가래침은 인체내부에서 생성되는 배설물이고 비닐은 물질만능 시대를 은유 하는 가장 적절한 쓰레기의 대명사다. 이 주의 깊은 보행자, 시인은 도처에서 번들거리는 쓰레기의 모습 곧 시치미떼기에 휩쓸리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분실된 가래침의 주인공을 찾아 주는 일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수줍음을 찾게 할 가 고뇌하고 있다.
시인은 감동의 화살을 쏘는 사람이다. 시인이 당긴 화살촉은 때로는 나비가 되고 꽃이 되고 새나 구름, 나무나 별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안긴다. 우리가 못 보는 소중한 사실들을 찾아내 주고 공명(共鳴)의 현(絃)을 퉁겨 준다. 하찮은 쓰레기가 좀 날린다 해도 창조주의 수줍음이 무한으로 배어있는 우주는 영원히 아름다움을.....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대설주의보ㆍ그로테스크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ㆍ아산문학상ㆍ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옥동<시인>
시치미떼기
최승호
물그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철쭉꽃을 꺾어간다
그리고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의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주의 깊은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가래침들을 피해 길을 가고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 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 누는 걸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나를 바보멍청이로 여긴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줍음은 사라졌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더불어 도처에서 번들거린다
그러나
장엄한 우주를 이루어놓고도
조물주는 창조의 수줍음으로 숨어 있느니
그분마저 뻔뻔스러워지면
온 우주가 한 덩어리 가래침이다
예년보다 목련이 필 때가 좀 늦다고 여겼는데 비가 잠깐 다녀간 뒤 앞뜰에 나가보니 자목련 한 송이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로 어제만 해도 금새 피워 낼 모습을 시치미떼고 나를 외면하고 있었는데, 아니 또 이것은 무엇? 어느 집 견공이 나보다 먼저 목련을 감상했던 흔적을 남겼다. 매일 아침 집 앞을 지나는 그 삽사리가 실례를 한 것이 틀림없는데 주인은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지난 것이다. 화단에 철쭉꽃이 피면 누군가 꺾어가고 또 시치미떼지 않을까 염려된다.
시치미라는 말은 매의 임자가 주인을 알게 하기 위하여 매의 꽁지 위 털 속에 매어 둔 주소를 적은 네모진 뿔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치미를 떼어 천연덕스럽게 하고도 안 한 체 하는 사람, 염치없는 사람은 어느 때나 있지만 오늘날은 시치미떼기를 못하는 사람은 고양이까지 업신여길 만큼 사람구실을 못하고 오히려 민망스러움을 당하는 세상이다.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도의나 염치가 사라져 가고 죄인이나 도둑의 수줍음까지도 보기 드문 현실이다. 무한경쟁에서 당장 이겨 살아남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세태는 마치 가래침을 뱉는 사람이 가래침을 피해 가는 사람보다 오히려 기세 등등하게 길을 가는 참 뻔뻔스러운 모습이다. 도처에서 쓰레기와 배설물 같은 시치미떼기로 오염된 세상을 만난다. 가장 깨끗한 처세로 모본을 보여야 하는 지도자들은 오히려 시치미떼기의 명수들이 너무 많아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다. 가래침은 인체내부에서 생성되는 배설물이고 비닐은 물질만능 시대를 은유 하는 가장 적절한 쓰레기의 대명사다. 이 주의 깊은 보행자, 시인은 도처에서 번들거리는 쓰레기의 모습 곧 시치미떼기에 휩쓸리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분실된 가래침의 주인공을 찾아 주는 일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수줍음을 찾게 할 가 고뇌하고 있다.
시인은 감동의 화살을 쏘는 사람이다. 시인이 당긴 화살촉은 때로는 나비가 되고 꽃이 되고 새나 구름, 나무나 별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안긴다. 우리가 못 보는 소중한 사실들을 찾아내 주고 공명(共鳴)의 현(絃)을 퉁겨 준다. 하찮은 쓰레기가 좀 날린다 해도 창조주의 수줍음이 무한으로 배어있는 우주는 영원히 아름다움을.....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대설주의보ㆍ그로테스크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ㆍ아산문학상ㆍ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조옥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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